아파트 입구 앞에 있는 정육점에서 고객들에게 보내는 홍보 문자다. 생명을 오로지 '고깃덩어리'로만 표현하는 거 아닌가 싶어 불편할 때도 있지만 발신자가 정육점 주인이라는 걸 망각한 처사다. 꿈뻑꿈뻑 처연한 눈망울을 감았다 뜨는 소가 아니라 풍성한 식탁을 책임지는 사명을 갖고 태어난 '소고기'를 판매하는 사람 아니던가. 그의 사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매출 신장'이다.
따라서 그의 홍보문자는 오로지 매출을 위한 전략이다. 피식 웃음이 나오는 문자를 본 고객이 '오늘 저녁에 삼겹살이나 먹을까?'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기 위해 농을 던지는 것이다.
농담의 내용이 많은 소비자의 심기를 건드렸다면, 소위 코드가 맞지 않았다면 매출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나 주기적으로 이 문자를 보내는 것 보면 아직은 유효한 전략인가 보다.
지난주부터 용인교육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러닝 퍼실리테이션 기법'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다. 퍼실리테이션 전문강사가 3시간씩 3회에 걸쳐 교실 수업환경에 적용할만한 기법을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봉사자들의 요구에 따라 개설된 강의라서 기대가 컸다.
지난주 첫 시간은 줌으로 진행되었는데, 첫 만남이라 분위기를 띄우려고 그러셨던 건지, 비대면 강의의 특성상 소극적인 학습자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함이었던 건지, 강사님은 꽤... 활발, 명랑, 쾌활하셨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농담도 던지고 최근 유튜브로 뜬 개그맨의 느끼한 목소리 성대모사를 여러 번 하기도 했다. 학습자들의 반응이 영 시원찮다고 여겼는지 급기야 "제가 기분 좋아지면 춤도 춰드릴 수 있어요~ 저 춤 잘 춥니다~ 즐거운 수업을 위해 뭐든 할 수 있어요~"하며 격양되셨다. 강사님이 수년간 많은 강의 경험 끝에 찾아낸, 유효하다고 생각한 강의 전략이라고 믿으며 묵묵히 견뎌냈다.
정육점의 문자와 강사님의 농담에서는 일에 대한 치열함이 엿보인다. 고기를 많이 팔기 위해서, 강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그들에게 갈채를 보낸다. 하지만 그런 판에서 던지는 유머, 농담에는 전제조건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육점의 유머는 '신선하고 맛있는 고기'가 전제되어야 한다. 믿고 사 먹는 고기인데 홍보 문자까지 재미있다면 고객들은 외면하지 않는다. 고기 상태는 별로인데 홍보랍시고 농을 걸어온다면 '시시껄렁한 문자를 보내는 별 이상한 놈의 가게를 다 보겠네!'라는 야유를 보내며 발길을 돌리고 마는 게 소비자다.
강사의 유머는 '전문성과 실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학습자의 소중한 시간을 가져다 양질의 교육으로 채워주기 위해 왔는데 강의 내용과는 맞지 않는 농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정작 중요한 내용 전달에서는 힘이 빠져버리면 안 된다. 학습자가 기어이 웃을 때까지 자신의 유머를 고수한다거나 혼자서만 신나서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웃기려고 온 게 아니라는 걸 망각하고 학습자들의 씁쓸한 표정과 싸한 분위기를 잡아내지 못한 강사는 점점 선택받지 못할 테다.
"여보~ 내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당신 큰일 날까 봐 밍크코트 안 사주는 거야. 밍크코트 입었는데 사냥꾼이 곰인 줄 알고 쏘면 어떻게 해..."
몇 년 전 밍크코트 얘기가 나왔을 때 남편이 내게 던진 농담(?)이다. 간이 크다 크다 이렇게 큰 남편을 보셨는가. 아무리 아내가 통통, 뚱뚱하기로서니 어떻게...
난 동물권 수호 차원에서 밍크코트는 입지 않겠노라 선언했다. 절대 사냥꾼의 총에 맞을까 겁나서가 아니었다.
지난 일요일 남편과 함께 운동을 나갔다. 나는 걷고 남편은 달리기를 했다. 먼저 운동을 마친 남편이 집 앞 벤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를 흘끔 보더니 다시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가까이 다가가는 내 인기척을 느낀 남편은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 당신이었어? 난 다른 사람인 줄 알았지. 당신인가 하고 봤는데 실루엣이 생각보다 날씬한 거야. 그래서 잘못 봤구나 했지... 가까이서 보니..."
일단은 둘이 깔깔깔 웃고 넘어갔지만, 기분 좋아지라고 던진 농담이라고 생각하기에도 기분 나쁘고 진짜라고 생각해도 기분 나빴다.
부부간의 유머는 깊은 신뢰와 애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웃자고 던진 말에 죽자고 덤비지 않으려면 말이다. 신뢰와 애정이 전제되어도 허용될 수 있는 수위라는 게 있다. 상대에게 상처가 되거나 신경을 긁을만한 말은 삼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