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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Oct 06. 2021

꿈을 짓밟은 자

며칠 째 마음이 무겁다. 

2학기 봉사를 앞두고 마을교사들과의 수업 준비가 척척 잘 진행되고 있으니 그 때문은 아니다. 

아이는 자신의 페이스를 찾아 열공하고 있으니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중간고사 때문도 아니다. 

입대한 지 어언 석 달째 되는 아이는 소식도 자주 전해오고 힘든 훈련도 잘 이겨내고 있다 하니 그 아이 때문도 아니다. 

남편은, 잘 먹고 잘 자고 있으니 그 때문도 아니다. 


내 무거운 마음은...

무심결에 똑 부러뜨려버린, 몬스테라 새싹 때문이다. 


4년 전쯤인가. 집에 빈 화분을 놔두면 안 좋은 기운이 생긴다는 말에 월요일마다 아파트 광장에 들어오는 화분 아저씨를 찾았다. 

"가장 오래오래 잘 사는 식물이 뭐예요?"라는 나의 질문에 사장님이 심어주신 식물은 '몬스테라'였다. 

생소했던 그 녀석은 이름처럼 괴물 같은 생장을 보여줬다. 끝도 없이 새싹이 돋고 줄기가 뻗쳐 오르더니 이내 손바닥만 한 잎으로 자라났다. 그러기를 수시로 반복해서 잎은 금세 무성해졌다. 그러면 식물을 잘 아는 친구가 와서 물꽂이를 한다고 몇 번씩 밑동을 잘라갔다. 섭섭한 내 마음과는 달리, 그렇게 매정하게 제 새끼들을 잘라내도 아랑곳 않는 녀석이었다. 식물계의 화수분이랄까. 이쪽에서 삐쭉 저쪽에서 삐쭉 새싹을 계속 뿜어냈고 콩나물시루에서 자라나는 콩나물보다 더 쑥쑥 자랐다. 


세상 사 영원한 것은 없다고 믿으면서 그 녀석만 영원할 줄 알았던 건 왜 였을까.

그 아이도 어느 순간 새잎을 내놓지 못하기 시작했다. 지친 걸까, 늙은 걸까. 천년만년 같은 속도를 기대한 내가 미련했던 걸까. 멈춰버린 녀석에게 미안함이 올라왔다. 

봄이 오면 달라지려나 기대했지만 계절의 문제가 아니었다. 영양제를 두 개나 꽂아주었는데도 소용없었다. 죽지 않는 것만도 고맙게 여기며 더운 여름을 보냈다. 


날이 선선해졌다. 새 잎이 자라지 않는 몬스테라를 매일 들여다보며 나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너무 많은 잎이 나 있기 때문에 새 잎이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품은 나는 가위를 들고 세심한 집도를 했다. 잎이 갈라져 나오는 밑동을 두 군데 잘라주고 잘라낸 녀석들은 물꽂이를 했다. 몬스테라 모체에는 이제 잎이 3개 남았다. 한창때 15장까지 거느리던 녀석이 초라해 보였지만,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생각하자며 달래주었다. 


두 군데를 잘라내 버린 후 한 달이 지났을까. 신기하게도 몬스테라에서 새싹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세 군데에서 말이다. 

'역시, 내 판단이 옳았어. 원래 있던 헌식구들에게 영양이 많이 갔던 게야... 새 식구를 받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거지. '

새싹들이 반가웠던 나는 원예 가위를 들고 이곳저곳 볼품없이 말라버린 공중 뿌리들을 정리해주었다. 온 영양과 에너지가 새싹들에게 쏠리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다가 그만.... 5cm는 족히 자란 새싹을... 건드려...

똑 부러뜨리고 만 것이다. 


'그냥 식물이야. 또 나올 거야. 그리 맘 쓸 필요 없어. 저 아이의 명이 저 정도밖에 안되었던 거지. 너무 자책하지 마.'

라고 하는 마음 한편에서는, 

'와... 겨우 겨우 새 잎을 내보냈는데, 그걸 똑 뿌러뜨리냐? 진짜 너무했다. 좀 조심 좀 하지!'

라는 마음이 나를 흠씬 나무랐다. 

금방 사그라들 줄 알았던 마음이 며칠째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가는 베란다에서 그 아이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을 걸었다.

"미안해... 진짜 미안해... 세상 맛도 못 보고, 꿈도 못 펼쳤는데 그렇게 꺾어서 미안해... 네가 사람이라면 당장 나를 고소, 고발하라고 하고 싶다... 배상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든 해주고 싶어."


불현듯...

'꽃다운 나이에...'

'세상 빛도 보지 못하고...'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라는 타이틀을 달고 사라져 간 이들이 생각날게 뭐람... 

몬스테라 새싹 하나를 꺾었을 뿐인데 세상 모든 시작을 베어버린 것 같은 이 죄책감은 뭐람... 

잘해주려 했던 의도 따위도 꺾여버린 새싹 앞에서는 그저 나쁜 몸짓에 불과하다.

다시 마음이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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