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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Mar 16. 2023

거울 속의 거울 속의 거울 속의 나

< 보글보글 글놀이 - 거울 ->

"언니~ 뒷머리 보여드릴까요?"

"아니에요~ 알아서 잘해주셨겠지요~"

머리를 할 때마다 미용실 실장님은 묻습니다. 18년째 한결같이 괜찮다고 했지만 18년째 한결같이 물어주십니다. '이제는 쟤도 궁금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으신가 봅니다.

뒷머리를 보여달라는 건 다른 사람의 눈에 내 뒷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 궁금해서일 텐데 저는 별로 궁금하지 않습니다. 잘 다듬어진 머리 하나가 저를 설명할 리 없다고 생각해서입니다.


평소 거울을 즐겨 보지 않는 이유도 그러할 것입니다. 얼굴에 점이 몇 개인지, 주름이 어제보다 어디에 몇 개 늘었는지는 제 관심대상이 아닙니다. 미간 사이에 보톡스를 맞으러 가자고 하는 친구의 제안에 씩 웃어주었습니다. 그걸 맞는다고 해서 마음씀까지 탄력 있고 반들반들해질 것은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평면거울에 비친 맹숭맹숭한 저의 모습은 저라는 사람을 전부 담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엘리베이터 속 마주 보는 거울 사이에 서는 것이 가끔 무섭습니다. 늦은 밤 홀로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양 옆에 붙어있는 거울은 서로를 비추며 거울 속의 거울 속의 거울 속의 끝없는 거울을 비춥니다. 마치 제 안에 있는 수많은, 나만 알고 있는 나를 비추는 것 같습니다. 영화 <링>에서 TV화면을 뚫고 나오던 귀신 사다코처럼 거울을 뚫고 유정 1, 유정 2, 유정 3, 유정 4....... 가 어기적어기적 기어 나올 것만 같습니다. 호기심이 생겨 제대로 보려고 애써보지만 절대 제 모습을 제대로 볼 수는 없습니다. 정면으로 응시하는 내 너머의 모습은 나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거울 속의 나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면 잠깐이라도 훔쳐볼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상대도 호락호락한 놈은 아니라서 웬만해서는 시간차공격이 먹히지 않습니다.


몇 년 전, 르네 마그리트 전시회 < INSIDE MAGRITTE >에서 본 문구 하나.

"우주에는 달이 한 개뿐이지만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달을 본다."

우주에 OOO이라는 사람은 한 명뿐이지만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시선, 입장에서 'OOO'을 볼 것입니다. OOO 당사자 역시 어쩌면 자신이 보고자 하는 딱 하나의 'OOO'만을 보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정면을 비추는 거울에 보이는 딱 하나의 모습을 보며 도취되거나 비난하며 살 수밖에 없겠지요.


전시회에서 인상 깊었던 작품 하나.

거울 속의 거울 속의 거울 속의 나를 비추는 거울.

'나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나'를 얼마든지 제대로 볼 수 있는 거울 앞에 한참이나 머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대로 본 적 없고 보려 하지 않았던 나의 낯선 뒷모습과 친해지는 시간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도 엘리베이터에 탑니다.

제 옆으로 늘어선 '나'들을 흘끔 곁눈질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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