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내가 사랑했던 보들리안 도서관
일을 하다보면 누구와 함께 일하는지 참 중요한 것 같다. 이직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나는 나름 같이 일하는 사수와 잘 맞는 것 같았다. 나와 함께 일했던 나의 슈퍼바이저는 베트남계 영국인이신 민 청 (Minh Chung) 선생님과 주로 일했다.
면접 할 때 3명의 면접관 중 한분이셨는데 약간 공격적인 면접을 하신 두분과 달리 면접할 때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면서 면접을 진행했던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던 영국 레스터에서 옥스퍼드로 가려면 레스터에서 버밍험으로 올라가서, 버밍험에서 옥스퍼드로 다시 내려가야 했다. 그래서 그날 되게 피곤하지만 또 무척이나 긴장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영국은 채용 프로세스가 매우 느리기 때문에 5월에 지원해서 6월 초에 면접보고, 6월 중순에 합격전화를 받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나의 생일날 도서관에서 논문쓰다가 전화받았기 때문에 그때의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레퍼런스 체크를 하고 도서관에서 실제로 일을 시작한 것은 8월 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석사논문을 마무리하고 런던에서 박물관 인턴을 하고 있을 쯤 박물관의 배려로 옥스퍼드 업무과 병행해서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런던에서의 인턴십이 끝난 후 런던에서 옥스퍼드로 출퇴근 하는 것도 피곤해질 무렵 옥스퍼드로 이사할 결심을 했다. (지금 과거로 돌아간다면 나자신에게 가지 말라고 뜯어말리고 싶다. 왜냐하면 옥스퍼드로 이사하고 나서 약간의 우울증을 겪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조금 힘든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옥스퍼드의 모든 것이 새롭고 아기자기하고 예뻤으나, 아는 사람이 하나 없는 동네에 가서 다시 정착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었다. 내 얼굴에 우울이 느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민청 선생님은 항상 따뜻하게 나를 대해주셨다.
Osney One 빌딩 근처 피쉬마켓이 있었는데, 우리나라로 한다면 약간 초장집 같은 느낌이었다. 생선을 사고 나서 2층으로 올라가서 식당안에 앉아있으면 가게에서 생선을 요리해서 올려줬다. 어느 때는 연어구이, 어느 때는 생선 리조또 등 부산 자갈치 시장이나 포항 과메기집, 영덕 대게집이 생각나는 피쉬마켓이었다. 처음에는 같이 다니는 게 어색해서 무슨말을 해야할지 참 어려웠던 것 같다. 그리고 매번 밥을 사주시기만 하니 마음 속으로도 참 미안하고 고마웠다.
옥스퍼드 자체가 워낙 백인 중산층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동네일 뿐더러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백인 영국인이 많았다. 심지어 같이 일했던 할머니 Angela는 보들레언에서 약 40년 째 일하고 있었다고 했으니까 분위기 자체가 근속년수가 길고 서로서로 잘 알고 있는 분위기여서 입사하고 나서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리고 백인들이 절대 다수였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가끔씩 움츠려 들기도 하고, 나의 주위에 아시아인이 있는 것만으로도 가끔은 되게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 점에서 민 청 선생님이 나의 사수로 계셨던 것에 있어서 옥스퍼드 생활에 있어서 내가 많이 의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일을 그만두고 옥스퍼드를 떠날 때 선생님께서 옥스퍼드 잊지 말라며 본인이 집필한 책과 옥스퍼드의 거리가 담겨져 있는 책과 필기구를 선물해주셨을 때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찡했다. 다시 옥스퍼드에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선생님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뭔가 기약없는 인사였기에 더욱 마음 한켠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