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는 나의 우상이었다.
성품이 인자하고 섬세하셨고 평생 문학을 공부하신 분답게 감성이 풍부하셨으며 사려 깊으신 분이었다.
같이 식사를 할 때에도 조용하고 찬찬히 음식을 드시면서 절대로 음식을 남기지 않으셨다. 어느 날은 카레를 먹고 밥 한 톨 남아있지 않은 내 접시를 보시곤 음식을 깨끗이 먹어야 한다고 지적을 하신 적도 있다. 소스를 남기는 것도 낭비라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그런 밥상머리 교육 탓에 어려서 친구들 집에 놀러 가 식사를 할 때면 늘 식사예절이 바르다는 칭찬을 들었다.
어릴 적 찾아뵙고 큰절로 인사를 드리면 늘 들고 다니시던 낡은 책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깨끗한 지폐 한 장을 꺼내 용돈을 주시곤 했다. 어린 손자가 할아버지를 찾아와 인사를 드리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재롱을 떠는 모습이 신통하다고 느끼셨던 모양이다.
군대에서 제대를 하고 인사를 드리러 찾아뵈었을 때 할아버지는 내게 여자 친구가 생기면 삼청공원을 놀러 가 보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어른들에게 삼청공원보다 더 인상적인 데이트 코스는 없었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강남이라는 지역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고 서울 시내에서는 명동과 종로 정도가 혼잡한 거리였고 유명한 상업 지역이었다. 그런 까닭에 경복궁과 덕수궁, 그리고 북촌 부근 정도가 잔잔하게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었으니 삼청공원을 권하신 모양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군대까지 다녀왔으니 이제 여자 친구를 사귀어도 좋은 나이라고 판단하신 모양이다.
그때 말씀이 오랫동안 기억이 되어 나는 해마다 꽃잎이 싱그러운 봄철이나 한겨울 눈이 내려 쌓인 공원을 돌아보는 재미에 취해 일 년에도 몇 차례씩 삼청공원을 들르곤 한다. 그러다가 북한산 한양도성 탐방로를 따라 걷거나 와룡공원 담 길을 따라 동대문 외곽으로 나와 광장시장에 들러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한 시장 안 모습을 본다. 시장 안에서는 고소한 모듬전에 막걸리를 한잔 마시고 청계천변을 따라 광화문 앞까지 걸음을 옮기곤 했다.
그러나 내게 삼청공원이 주는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요즘 같은 가을이다.
단풍이 들고 바람은 제법 서늘하지만 해질 무렵의 풍경은 고요하고 잔잔하며 그 아름다움과 매력으로 인해 정신을 빼앗아가 버리곤 한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는 단풍 색깔이 햇볕에 반사되어 낙엽의 무지개가 눈앞에 펼쳐진 듯 황홀하기까지 하다.
가을 산책길에 나는 가방에 레드와인 한 병을 담아 삼청공원을 찾는다. 그리곤 해 질 녘에 나무벤치에 앉아 앞에 제법 붉어졌거나 혹은 아직 덜 붉은, 또는 노랗거나 빛바랜 초록 형형색색의 나뭇잎들이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와인을 한잔씩 마신다. 숲 속에 잔잔한 바람이 불 때면 나뭇잎들이 흩어져 내리는 모습이 고혹적으로 변하고, 고요하면 간혹 톡톡 떨어지는 낙엽의 소리조차 청순한 듯 사랑스럽다.
고요 속에 머물던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주변이 어둑어둑해진다.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가벼워지고 폐 속은 차갑고 맑은 공기로 정화되어 시골 깊은 산속의 산사에서 내려오는 기분이 된다. 그런 기간은 일 년에 몇 시간 되지 않지만 자연이 준 그 선물이 오랜 시간을 맑은 머리로 살아가게 하는 자양분이 된다.
엊그제 삼청동을 둘러보았다. 아직 단풍이 설들었다.
한 일주일 여가 지나면 제대로 모습이 드러날 모양이다.
오래전 연희전문 학생일 적에 할아버지는 신촌에서 금화터널 길을 지나 독립문을 거쳐 사직동과 경복궁 앞길을 걸어 삼청공원을 산책하며 호연지기를 키우셨을 거다. 시대가 변해 일제 강점기에 눈빛 형형한 대학생이었던 할아버지가 거닐던 그 길을 손자인 내가 걷고 있다.
종종 뵈었다고 하긴 해도 어렸던 손자에게는 할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있다. 살아 계시던 시대에 대해, 또 살아오신 모습에 대해 여전히 궁금한 게 많은데 오래전 할아버지와도 대화를 했을법한 공원 안에 우직하게 서 있는 나무들은 그 답을 알까?
철없는 손자의 궁금증에 잔잔하게 떨어지는 가을 낙엽들이 대답을 해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