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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ㅈluck Jul 26. 2021

자녀는 부모의 '방패'도 '친구'도 아니다

자녀는 부부 사이의 연결 다리가 아니다.

우리 부모님은 원래 자주 싸우셨다. 그런데 그만큼 애정도 넘치셨다. 기념일마다 아빠는 장미꽃 100송이를 사다 주셨고, 엄마는 돈 아깝다고 하면서도 항상 웃으며 받아주셨다. 큰 싸움은 없었고, 작은 싸움 후에는 언제나 더 서로를 위하셨다. 


내가 중3 때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도 두 분이 해외여행을 가셨고, 나는 그거에 별로 개의치 않아했다. 오히려 좋았다. 나는 부모님을 신뢰했고, 부모님은 나를 신뢰했다. 우리는 그런 관계였다.


그리고, 나는 엄마와 친구 같은 사이였다. 그 당시에는 이게 너무 좋은 소리라고 생각했고, 기뻤다. 다른 아주머니들은 뭔가 전형적인 '엄마'의 느낌이라면 우리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중3~고1로 넘어갈 때, 엄마는 40이 되었다. 그때 엄마가 엄청 우울해하며 우는 걸 난 봤다. 그런 일들과 내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 나에게 엄마는 안타깝고, 아이 같고 그런 존재였다. 그리고 아빠는 그런 엄마를 잘 토닥토닥해줄 수 있는 신뢰하는 존재였다. 우리는 그런 가족이었다.


그런데 아빠의 사업이 힘들어지며 (뭔가 전형적인 드라마 같지만;;) 부도의 위기가 찾아왔다. 엄마는 가진 것들을 지키고 싶어 했고, 그래서 서류 상 이혼을 하길 원했다. 여기서 가진 거라는 건 제일 먼저 자녀(나와 동생), 그리고 집, 차 그런 것들이었던 것 같다. (아! 우리 부모님은 정말 가난하게 결혼하셨었고, 열심히 일해서 조금씩 가진 것들을 늘린 분들이다) 아마 엄마는 그래서 더 지키고 싶었을 거다. 가난하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아니까! 


그 시점에 엄마가 나에게 물었다. 

아빠한테 엄마랑 이혼해줄 수 있는지 물어봐


사실 정확하게 문장이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뜻은 명확히 기억난다. 내가 마치 메신저처럼 엄마, 아빠 사이에서 이혼 의사를 확인해달라는 것. 그 당시에는 웃으면서 나는 그런 거 안 물어볼 거다 라고 했지만 그게 첫 충격이었던 것 같다. 원래 부모가 자녀를 통해 이런 걸 물어보나? 내가 이런 걸 물어봐야 하나? 여러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보면, 이건 부모가 부모 자녀에게 부탁할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혹시 아직도 이런 부모님들 있진 않겠지만, "너희 아빠한테 가서 ~~~ 거냐고 물어봐", "너희 엄마한테 가서 ~~~ 해달라고 해봐", "너는 엄마 말이 맞는 것 같아, 아빠 말이 맞는 것 같아?", "너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등. 특히나, 부부가 싸웠을 때 혹시 자녀를 메신저로 이용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야기하고 싶다. 정말 그러지 마시라고. 자녀의 의지, 신뢰가 부모 중 한 명에게 더 쏠릴 수는 있다. 그렇지만 부모는 부모다. 자녀에게 부모는 신뢰하고, 잘 따라야 하고, 의지하는 존재다. 그런데 그 중간에서 누구의 편을 드는 상황을 만드는 건 너무 잔인하다. 아무리 어려도 자녀는 안다. 내가 누구 편을 드는 순간, 누구의 부탁만 드는 순간, 한쪽은 실망할 수밖에 없다고. 부모의 실망을 바라는 자녀는 없다. 부모에게 자랑스러운 자녀가 되고 싶어 하지. 칭찬 듣고 싶어 하고. 별생각 없이 자녀에게 하는 말에 자녀들은 깊은 갈등에 빠진다. 장난으로라도 그런 거 절대 안 하셨으면 좋겠다.


자녀는 부모의 친구 아니다. 방패도 아니고, 메신저도 아니다. 

부모가 낳았다고 해서 함부로 다뤄도 되는 존재 아니다. 

어리다고 뭘 모르는 존재도 아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몰랐다. 그냥 엄마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는 게 미안했고, 아빠한테도 미안했다. 아무튼, 내 기억이 맞다면 엄마가 아빠랑 직접 이야기하여 경제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이혼을 이야기하셨던 것 같다. 나중 일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빠는 이렇게 엄마가 이야기하는 게 엄청 속상하셨던 것 같다. 버림받는 느낌이었을 거고.


이렇게 우리 가족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각자의 깊은 상처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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