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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ㅈluck Jul 31. 2021

K장녀는 슈퍼맨이 아닙니다

무기력한 장녀가 아닌 나만 생각하는 미친 장녀였다면 좀 더 나았을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부모님, 나 누구 하나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셋 다 꾸역꾸역 집에 돌아왔고, 부모님은 매 번 싸우고, 나는 방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울거나 답답해하거나 그렇게 지냈다. 셋 다 자기 발로 매일매일 지옥에 들어오는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뭘 그렇게 지키고 싶고, 뭐가 남아있다고 생각했을까? 


그 당시 친척들 중 일부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네가 장녀이니, 좀 이야기해서 해결해봐라


친척들하고 가깝게 지내진 않았기에 잘 모르는 친척들이 이렇게 말하면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신뢰하고 좋아하는 친척들 중 일부도 그렇게 말하니 조금 충격을 받았다. 그렇지만 속으로는 나도 내가 장녀로 부모님의 관계를 조금 더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 혹은 나 때문에 이 관계가 더 심해진 건 아닐까? 란 생각이 항상 있었기 때문에 나름은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괴로웠다. 나는 애교는 1도 없고, 책임감과 버티기 하나로 괴로운 순간들은 하나씩 참아왔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도 괴로웠고, 내가 원하지 않는 걸 해야 한다는 것도 싫었고, 그걸 싫어하는 내 모습이 또 싫었고 모든 상황과 나 자신이 매우 싫었다. 매일매일 내 마음을 스스로 칼로 찌르고 또 찔렀다. 답도 없으면서.


그땐 그랬다. 내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철저히 부부의 일이라 생각한다. 물론 내가 막 사랑스럽고, 애교가 많고 그런 스타일의 사람이었다면 뭐...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설사 그런 사람이었다고 해도 이건 자녀인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지금은 확실히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아니었다. 엄청나게 죄책감이 들었다. 


글쎄... 나는 이제 나와 부모님 모두가 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살 방법을 찾아야 했다. 더 이상 그 지옥에서 셋이 살았다간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아빠에게 말했다.


집에서 나가줘 


와...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 싸가지 없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내 집도 아니고 아빠한테 그렇게 말하는 딸이 있을까? 근데 모르겠다. 그 당시 나는 우리 셋이 모여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지금의 나라면 내가 나갈 텐데 이유는 나도 모르겠으나 그 당시 나는 아빠한테 나가 달라고 했다. 두근거리고 죄책감 가득한 마음으로 나는 아빠한테 최대한 냉철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아빠의 표정은 기억이 안 난다. 분명 충격과 원망이 가득한 눈빛이었겠지.


정말 나도 왕싸가지에 미쳤고 제정신이 아니었구나란 생각이 든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그렇게 아빠가 집에서 나갔고, 클라이맥스에 지쳐가던 부모님과 나는 살기 위해 잠시 멈췄다. 해결된 건 하나도 없는 그 정점에서, 정상에서 아주 잠시 살기 위해 멈췄다. 아니 어쩌면 아빠를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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