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ㅇㅈluck Aug 02. 2021

그냥 다 죽여버리고 싶어요 by. 아빠

그 순간, 나는 내 인생에서 아빠를 놓았다.

아빠를 내 손으로 밀어내고, 부모님과 나 모두 셋이 잠시 멈추고 나서야 나도 조금씩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물론... 제정신 아니었지만, 머리와 가슴이 질기디 질긴 고무 안에서 터지지도 못하고 부풀어 오르고 있었는데 그 답답함과 괴로움이 아주 조금, 조금 나아졌다. 


TMI일 수 있지만, 내가 이 순간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건 동생이 집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유일한 사람이 있다면 내 동생이다. 그래서 너무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동생이 휴가를 나왔는데 부모님과 나, 동생까지 외갓집에 간다는 거 아닌가? 그날 오후에 아르바이트도 예정되어있었는데 꼭 가야 한다고 해서 우리 네 가족은 아빠 차를 타고 외갓집에 갔다. 왜 갔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꼭 가야 한다고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아! 혹시 이혼을 고려하고 있는 부부 분이 이 글을 본다면 자녀한테 최대한 정확하고 솔직하게 정보를 공유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어리다고, 상처 받을 것 같다고 이야기 안 하고 어물쩍 넘어가면 자녀는 엄청 오해하고 상황에 대해 이해하기 더 어렵다. 차라리 상처 받을 거 좀 받고 정확하게 알고 넘어가는 게 낫다. 나중에 더 상처 받으니...


우리는 그렇게 외갓집에 갔고, 그 당시 아빠는 네 가족이 있는 앞에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앞에서 펑펑 울면서 '다 죽여버리고 싶다'라고 했다. 음... 그 말 자체가 그 당시에는 충격이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아빠 입장에서 가족한테 버림받은 것 같고, 하나뿐인 딸(나)은 집에서 나가라고 했고 여러 가지로 힘드셨을 거라 생각한다. 아무튼 내가 충격받은 건 그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온 가족 다 울며 외갓집에서 뭐 하고 온지는 모르겠는데 올라오는 차 안에서 아빠는 엄청 졸았다. 이상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나는 이 모습을 보면서 정말 멍했고, 이때 내 마음속에서 아빠와 완전히 이별했다. 이별했다기보다는 '아... 난 다시는 아빠와 관계를 회복할 수 없겠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에게 다 퍼붓고 네 가족이 올라오는 그 길에 조는 아빠. 나는 이미 마음이 지옥 같았기 때문에 퉁퉁 부운 눈으로 앞으로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 순간에 아빠는 졸드라. 정말 꾸벅꾸벅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지키고 싶었던 휴가 나온 동생까지 굳이 굳이 불러서 외갓집에 가서 그렇게 자기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후련하다는 듯이 조는 모습에 나는 정말 누구한테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내 인생에 이제 아빠는 더 이상 신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구나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 했기 때문에 중간에 차에서 내렸는데 또 아무렇지도 않게 잘 다녀오라는 아빠의 모습에 기가 찼던 것 같다. 내가 민감한 건가? 이상한 건가? 나는 멍하게 아르바이트에 갔다. 그렇게 내가 아빠를 마음에서 완전히 놓은 D-day가 지났다. 

이전 04화 K장녀는 슈퍼맨이 아닙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