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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ㅈluck Aug 05. 2021

엄마, 아빠도 부모는 처음이야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아니야. 너무 서둘렀던 내 1차 노력...

D-day가 지나고 아빠를 보지 않으니 내 상태도 아주 천천히 나아져갔다. 조금 안정이 되어간다고 할까? 그러면서 '나는 부모님(특히, 아빠)을 이해해야 해!'라는 강박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아빠를 완전히 마음에서 놓았다는 죄책감이 컸으니 그에 대한 반작용이랄까?


아빠는 그날 이후로 끊임없이 문자, 카톡을 했다. 아빠는 아마 모를 거다. 그걸 받을 때마다 내 마음이 지옥이라는 것을. 아빠의 연락은 대부분 이러하다. 보고 싶다나 사랑한다를 앞뒤에 쓰고 중간에 하고 싶은 말 쓰고. 모르겠다, 나는 부모가 된 적이 없어서 이해하지 못해서 그럴 수도. 그런데 나는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한테는 절대로 아빠처럼 행동하진 않을 것 같다. 한두 번이면 그럴 수도 그렇지만 지속적으로 봐온 아빠의 말과 행동은 이미 내 신뢰를 복구할 수 없는 정도로 잃었기 때문에 아빠의 그런 말들이 더 날 힘들게 했다. 이런 느낌이었다.


나는 너를 이만큼 사랑하고 아끼는데, 너는 그런 식으로 행동해?


연락이 오면 아빠를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옥 같은 마음을 부여잡고 연락을 했다. 자주는 아니어도 주기적으로 만나서 점심, 저녁을 먹었다. 아빠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고, 나도 그러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이렇게 연락하고 만나면 내 마음도 좋아지겠거니, 내 죄책감도 좀 줄어들겠거니... 그런 생각이었다. 누군가 보기엔 만나서 맛있는 거 먹고 종종 용돈도 받고 좋겠네...라고 할 테지만 나는 엄청 노력한 거였다. 거부감이 가득한 내 마음을 지우고 머릿속으로 '괜찮아, 나아질 거야, 내가 잘못한 거니까 내가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해' 수백 번, 수만 번 외치면서 그렇게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다. 


그 와중에 우리 엄마, '너희 아빠 여자 생겼니?'를 나에게 물어보셨다. 아빠 만날 때 엄마가 불편해하는 건 알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나갔었는데 변한 게 없었다. '아빠한테 나랑 이혼할지 물어봐'라고 하는 엄마와 달라진 게 없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나는 부모님을 머릿속으로는 거의 70~80%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예전에는 '엄마, 아빠가 왜 이래?'란 생각뿐이었는데 '맞아, 부모님도 부모가 처음인데 그럴 수 있지', '부모님은 나를 사랑하는데 그냥 표현방식이 나랑 좀 안 맞는 것뿐이야'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모르겠다. 이건 사실이기도 하고, 내가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기도 한 것 같다. 


근데 내 이 작은 노력에도 머리와 마음의 속도가 많이 차이가 났던 것 같다. 머리로는 많이 이해했고 받아들였는데 마음이 곪아가기 시작했다. 아빠 연락만 오면 두근두근하고 죄책감에 사로 잡히기 시작했다. 아빠를 만날 때도 그렇게 불편하고 '아... 이번에는 무사히 지나갔구나 한동안은 연락 안 오겠지'란 안도감이 들고. 


첫 글에도 썼지만, 우리 가족은 매우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우리 부모님도 그렇고. 마음이 곪아가면서 길을 지나가는 네 가족(부부, 딸 하나, 아들 하나 있는 우리 집 같은 가족)이 지나가면 눈물부터 났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었고, 그냥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머리로는 알지만, 나는 더 이상 내 마음이 곪아가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아빠와의 연락을 끊었다. 사실 차단하고 싶었지만, 또 애매하게 못된 나는 그건 못하고 연락에 회신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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