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재희

말라버린 이름 2. 재희.

by 차혜원

강의실에 들어서니, 다들 무언가 상기되어 있다. 나의 전우들도 글을 쓰며 ‘나’를 찾은 걸까 생각해 본다.

여전히 맨 앞자리에서 손을 흔들며 나를 반기는 지수엄마가 보인다. 강아지처럼 나를 반기는 모습에 이제는 귀찮음보다는 귀여움을 느낀다. 앞자리로 걸어가 앉아, 가방 속에서 필통을 꺼낸다.

강사님이 눈웃음을 건네며 다가온다.

“어서 오세요. 처음 과제를 해보시니 어떠셨어요?”

평소의 나라면 ‘그냥 할만했어요.’라고 말했을 텐데, 내 입이 멋대로 움직인다.

“이름대로 나를 찾았어요.”

지수엄마가 나를 돌아본다. 뒤이어 강사님이 다시 묻는다.

“발견한 나는 어떠셨었어요?”

생각지 못한 질문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발견한 나’는 어땠던가. 내가 흘린 눈물은 슬픔이었나?

대답 없이 고민하는 내 모습에 강사님이 다시 말을 잇는다.

“발견하신 ‘나’에 대한 감상이 너무 궁금하네요. 그때의 감상을 조금 더 생각해 보시고, 괜찮으시면 오늘 과제 발표 부탁드려도 될까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모르는 내가 자꾸 나오는 것 같다.

강의가 시작되고, 자원자들의 발표를 들었다. 생각보다 적극적인 사람들이 많아, 저마다의 ‘행복’을 고르게 들을 수 있었다. 지수엄마의 당당하고 명랑한 발표를 끝으로 이제 내 차례가 왔다. 내가 발표하겠다고 동의했지만, 막상 강단에 오르려니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끝마저 떨리기 시작했다.

집에서 열심히 적은 과제를 두 손에 꼭 쥔 채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당연한 듯 모두가 힘 있는 박수로 화답한다.

나는 [나의 행복했던 순간]을 또박또박 읽어나간다. 내가 적은 ‘내 이야기’가 나의 목소리로 내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심장 부근이 아려오다가, 쇄골과 가슴 사이가 꽉 막힌 기분이 들었다가, 목의 울대가 잠긴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글을 읽었다.

발표를 마치자 시작 때보다 더 큰 박수가 들려온다. 내 두 뺨이 타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곧이어 가벼운 목례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강사가 나와, 나에게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재희 님의 글을 잘 들었습니다. 재희 님의 행복을 응원합니다. 끝으로 재희 님이 ‘나’를 마주했을 때의 소감이 궁금해요. 다시 여쭤봐도 될까요?”

나는 조용히 그 자리에 앉을 채로 답했다.

“무언가에 덮이고 가려져 있던, 잊힌 나를 발견한 기쁨과 반가움이었습니다.”


맞다. 그것은 연수에게 더 이상 내가 필요하지 않다는 공허함에서 오는 쓸쓸함도, 쓸모를 다한 서러움도 아니었다. 내가 느낀 감정은 기쁨과 반가움이었다. 잊어버린 나를 찾은 반가움.


끝나가는 강의시간에 내 머릿속에 자신감이 샘솟는다. 나의 쓸모를 누군가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존재’하기만 해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와 환경에 사로잡히지 말고 내가 하고픈 것을 찾아야겠다. 지난번 관심 있었지만 포기했던, 정리수납 전문가 과정을 다음 학기에 도전해 봐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마냥 열정 있는 지수엄마를 부러워만 했는데, 나도 나 자신을 위해 열정을 태워봐야겠다.


문득 연수에게 고마움이 들었다. 순수하게 나를 위해 한 말을 비꼬아 들은 것은 ‘나’ 자신이었다는 생각이 뒤늦게 밀려왔다. 연수가 좋아하는 잡채를 해 주어야겠다.


*** ***



다시, 그 꿈이다.

여전히 어둠 속을 부유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내 시선의 끝에는 말라버려 구겨진 무언가가 있다.

그것을 계속 바라본다. 나에게만 보이는 말라버린 그것.

잡고 싶다. 이제, 그것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을 잡을 것이다.

손을 뻗는다.

드디어 나의 손에 그것이 잡힌다.

너무 말라버려서 잡으면 바스러져 없어질 것 같았던 그것이 내 손에 있다.

어둠이 환한 빛으로 둘러싸인다. 그것을 잡은 손 안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솟아나 넘쳐흐른다.

말라버린 그것이 생기 있고 따뜻하게 살아난다.


그것은 ‘재희’. 다시 찾은 나의 이름이었다.






- 재희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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