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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소년 Mar 27. 2021

무식함, 무모함 그리고 무한도전 두번째

(3장-2) 처음으로 만난 피겨여왕... 해야하던 취재는 안하던 그날.

허무하게 인터뷰를 마치고 선수 락커룸을 빠져나온 나. 그때 정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그 유명한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가 저 앞에 벤치에서 앉아 스케이트 정리를 하고 있던 것!!! 순간 “헙!!”하며 그대로 얼어붙었다. 말을 걸까 말까 어쩔 줄 모르다가 어디선가 나도모르게 용기가 샘솟아 겁도없이 그녀를 향해갔다. 


자세히보니 매니저와 발찜질을 하고있었다. ‘저 괜찮으세요??’ 김 선수는 응?하는 표정을 지으며 "네에 뭐ㅎㅎ 괜찮아요"라고 답했다. 스케이트를 타면 생각보다 발을 꽉조여서 꽤 아픈데도 그는 정말 태연하게 대처했다. 저게 말로만 듣던 내공이라는건가.. 그러다가 김 선수가 잠시 락커룸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매니저분이 대기하는데 뭔 또 배짱인지 이번엔 명함을 내밀었다.     


'저 xxx에 박영진입니다'라며 명함을 받던 그에게 나는 취재수첩을 건넸다. 그리고 혹시 김선수 사인을 받을 수있냐고 물었다. 결국 나는 그렇게 원하던 그것을 손에 쥐었다!! 그것도 모자라 선수와 사진까지!! 알고보면 정말 이날 나는 인터뷰가 아니라 사적으로 김연아를 만나러 간 것 같았다...ㅎㅎ

    

 2011년 태릉선수촌에서 당시 취재노트에 받았던 김연아 선수의 사인      

 

그로부터 약 두달 후 또 한번 같은 장소를 찾았다. 2012년 새해 벽두에 열린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 취재를 위해 인천에서부터 태릉까지 노트북이 들은 가방을 메고 낑낑거리며 찾았다. 조금 늦게 도착한 탓에 이미 경기는 시작했고 사진기자들의 틈을 비집고 겨우 자리를 잡아 촬영을 시작했다. 


이 때쯤 되면 무언가 눈썰미가 생기기도 마련인데 나는 눈치 코치도 없이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이 몸을 푸는 윔업공간에 들어갔다. 자신의 차례를 앞둔 터라 모두들 상당히 예민해 있을 때인데 거길 들어간 것이다! 인터뷰를 요청하려고 급하게 들어갔다가 결국 선수 매니저에게 “여기 윔업하는데에요! 들어오시면 안되요!”라는 소리와 함께 나는 쫓겨 나듯이 그 자리를 피해야만 했다.     


경기가 끝난 후 기자들이 어디론가 다급하게 이동하자 나도 뒤를 쫓았다. 경기에서 1,2,3위를 한 선수들의 기자회견이 열린 것이다. 엉겁결에 왔어도 지난번 첫 취재 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놓치지 않고 기사에 담을 수 있었다.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는 사이 모든 일정이 끝나고 기자들이 짐을 정리했다.  

    

이제 좀 숨을 돌릴 수 있으려나 싶었던 그 때 내 뒤로 곽민정(현 KBS 해설위원)이 아까 내게 호통친 선수 매니저와 함께 지나갔다, 당시 곽 선수는 부상 등의 여파로 후배들에게 밀려 6위에 그쳤지만 출전한 것만으로도 박수를 받았다. 그 때 뭔가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저 선수 인터뷰 해야겠다!!' 


당연히 메달을 딴 선수들에게 집중을 해야하는데 나는 엉뚱하게도 메달권 밖에 있던 선수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나는 프리랜서 기자 일을 할때도 그렇고 다른 여러 대외활동이나 평소 생활습관을 볼때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는 사람이나 순간보다는 빛에 가려져 있던 것들에 더 관심을 갖는 편이다. 이날 내게 그런 선수가 곽민정 선수였다. 부상 속에서도 최선을 다한 연기로 세계선수권 출전권을 따냈고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내게 너무나 선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매니저에게 다시 찾아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30여분간 인터뷰 하면서 나는 선수가 부상으로 인해 고생하던 때, '제2의 김연아'라는 수식어에 대한 생각 등등 여러 비하인드를 들을 수 있었다. 얘기를 들을 때마다 얼굴에 절로 미소와 찡그림이 그려졌는데 기자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표정을 드러내면 안된다는 것도 새까맣게 까먹었다.   


이 맘때 즈음에 김연아 선수의 아이스쇼도 취재를 할 수 있던 행운의 기회도 찾아왔다. 2012년 5월 올림픽공원에서 열렸던 아이스쇼였다. 피겨스케이팅 팬들에게 있어 아이스쇼는 전 세계 피겨 스타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상 이상의 짜릿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김연아 선수로 피겨에 푹빠진 나 역시 그러했다. 3일간 집에서부터 2시간이나 걸리던 그 먼 거리를 매일같이 왕복으로 오갔어도 그 설렘 덕분인지 힘이 전혀 들지 않았다.


김연아 선수가 2012년 아이스쇼에서 공연하던 모습을 직접 촬영한 사진 
김연아 선수가 2012년 아이스쇼에서 공연하던 모습을 직접 촬영한 사진


내가 이 때를 기억하는 것은 아이스쇼 후 기자회견에서 웃음 바다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지막날 공연이 끝난 직후 선수단 전원이 모여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연아 선수를 비롯해 3일간 이 쇼에 함께했던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부리나케 기자회견 스케줄을 챙긴 후 나는 쇼가 끝나자마자 그 자리로 이동해 맨 앞자리를 선점했다. 


보통 이런 자리에서 대부분의 기자들은 김연아 선수에게만 거의 질문을 던지는 편이다. 아무래도 피겨가 비인기종목이다보니 기자들이 타국 선수들을 잘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또한 김 선수가 메인 주인공이기에 그렇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이 때 다른 기자들과는 굉장히 다른 질문을 던졌다. 쇼에 함께 출연했던 남자 선수 세 명(패트릭챈, 스테판 랑비엘, 김진서)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이번 쇼 기간에서 남자 선수들에 대한 인기가 대단했는데 누가 가장 인기가 있었다고 생각하시나요??"


굉장히 독특한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무슨 배짱이 또 발동했던 것인지 나조차도 잘 몰랐지만 그냥 왠지 질문을 해보고 싶었다. 이윽고 세 선수가 질문에 답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때 패트릭 챈 선수가 답을 하던 도중 김진서 선수 이름 발음이 어려워 자꾸 '짐보', '짐보'라고 말해 인터뷰가 웃음바다가 됐다. 모든 선수들이 '짐보'를 외치면서 결국 기자회견은 그렇게 한바탕 축제처럼 끝이 났다. 


이렇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난 참 아무것도 모르던 그야말로 바보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하나를 더 배우게 하고 뭔가 한발짝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기자라는 타이틀에 심취해 그저 헤헤거리며 철없이 다녔던 그때가 지금도 자주 그립다. 그리고 그 속에는 그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주목받지 못하던 사람과 소식에 더 많이 귀를 기울이고 보고자 했던 내 마음도 들어가 있다.    


과거 예능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은 무모한도전이란 프로그램에서 출발했다. 그 때 그걸 처음봤을때 정말 아무생각 없이 만든 프로그램인가? 어떻게 기차와 달리기 시합을하고 목욕탕 물을 빨리 빼내는 내기를 하고 그럴까 하는... 근데 그것이 결국 무한도전이라는 국민 프로그램을 탄생시킨 씨앗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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