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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소년 Mar 01. 2021

무식함, 무모함 그리고 무한도전 첫번째

(3장-1) 첫 취재도전, 태릉선수촌을 찾아가다 

아마 여러분들도 ‘취재기자’라는 단어를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 직함을 들으면 혹시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나는 이 단어를 처음 쓰기 시작했던 건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마도 중학교 때 신문부 활동을 했을 때인 것 같다. 그 때 처음으로 밖에서 정말 그것을 해봤으니깐! 그때 만해도 취재는 내가 무언가를 알아내기 위해 밖으로 나가 즐겁게 찾아낸다는 일종의 소풍과도 같은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기자라는 직함을 달고 그 취재를 하러 나가야만 한다. 무언가 이건 학생때와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느낌. 코딱지만한 무명 신문사에서 소속으로 스포츠 경기를 나가야만 하다니... 어찌 됐껀 해야만 한다. 약간은 등 떠밀리듯이 그렇게 신발 끈을 동여매고 나갔다.     


첫 취재를 나갔던 건 아마도 2011년 여름이었다. 국가대표 성지라 불리는 태릉선수촌의 쇼트트랙, 피겨 선수가 전용으로 쓰는 작은 빙상장에서 꼬꼬마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과도 같은 선발전 경기였다. 나는 그 당시 함께 일하던 사진기자분의 도움으로 경기장에 찾아갔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태릉 빙상장으로 들어가는 길에 서보니 매미소리가 우렁차게 들릴 뿐 아무런 건물이 보이지 않았다. 인터넷 지도를 보며 따라 가보니 한 60도쯤 되는 급경사를 낑낑거리며 올라가야 목적지가 보였다. ‘무슨 보물을 숨겨놓듯 이렇게 외진 곳에 있나.. ‘땀을 한 번 쏟고 난 후 도착한 그곳은 오륜기가 붙어있었다. “여기가 TV로만 보던 곳이구나”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난 후 미리 기자분의 얘길 들은 대로 2층 출입구로 들어갔다.     


내가 처음으로 취재를 나갔던 2011년 여름에 열린 피겨 주니어 그랑프리 파견선수 선발전의 모습 


문을 연 순간 매우 차가운 공기가 내 몸을 감쌌다. 그 때 나는 무언가 알 수 없는 냄새를 맡았다. 아이스링크장에 가면 나는 특유의 냄새인데 그것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때 그 문을 연 순간 공기와 피부에 닿던 온도, 냄새는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내가 그것을 무려 7년간 느끼게 될줄은 그 땐 몰랐다. 


바깥과 심한 온도차이로 인해 안구에 습기가 가득해 그야말로 '안습'한 상태로 들어오니 정체 모를 음악소리가 들린다. ’아 어느 선수가 경기중이구나!!‘라고 직감했다.  관계자들만 조용히 있는 그곳에서 흔히 사진기자들이 취재하는 전용구역(프레스구역)에 도착했다. 주변에는 말 한마디 없이 3~4명의 사람들이 그저 셔터소리만 내며 촬영만 할 뿐이었고,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것이 이상하게 보였는지 옆에서 촬영하던 사람이 나를 뻔히 쳐다보다가 괜시리 쫄리는 마음에 급하게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약 3~4시간 동안 촬영을 했나? 난 다시 2시간이나 떨어진 집으로 가야했다. 생각보다 첫 취재는 뭔가 아무런 감흥없이 그리고 예상보다 매우 지루했던 것 같다. 뭔가 취재하면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인터뷰도 따내고 해해야 하는데, 그때 나는 그런 경황도 생각도 없었다. 그저 카메라 렌즈 속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바빴던데다가 몇시간 동안 추운 빙상장에 서서 사진 찰영을 하다보니 몸이 얼고 매우 추웠다. '아오 취재고 뭐고 모르겠고 그냥 빨리 나가자!!'하는 마음으로 그냥 그 곳을 떠났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경기직후 선수 기자회견도  있었는데 처음 가본데다가 온통 머릿속에 빨리 집에가고 싶단 생각 뿐이었으니 그걸 알 턱이 없었다.  

     

첫 취재를 마치고 난 후 3개월 가량이 흘렀던 11월 초. 나는 다시 태릉선수촌에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당시 나는 학교에서 언론정보학 부전공을 신청한 후 취재보도론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 수업을 가르치시던 교수님이 주제와 분야에 상관없이 직접 취재하는 것을 과제로 내주셨고 순간 번뜩이던 아이디어로 태릉에 다시 방문하기로 한 것이다. 방문하기 얼마 전 미리 선수와 해당 코치진분께 인터뷰 제안을 했다. 코치 분들의 연락처를 수집하고 인터뷰 제안을 하는 것은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느꼈던 것은 그냥 인터뷰라는 것을 너무나 하고 싶었고 기자가 가장 멋있어 보이는 순간이었기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도 나는 기자가 가장 빛나보이는 순간 중 하나로 인터뷰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종목은 한 가지 특징이 있다. 피겨는 특성상 선수들의 연령대가 굉장히 어리고 전성기도 여자선수들은 10대 후반에 찾아와 선수 생명이 꽤 짧다. 그렇다보니 국가대표 선수들의 연령대 가운데 피겨는 최연소라고 할 정도다. 나는 나보다 나이가 최소 4~5살 많게는 띠동갑 이상으로 어린 친구들을 인터뷰를 해야 했다.

      

오른쪽 줄부터 시계방향으로 2011~2012년 인터뷰했던 피겨 박소연, 이준형, 김해진, 조경아, 최다빈, 곽민정, 감강찬-감강인 선수 


이렇게 선수들이 어리다 보니 대부분은 언론 인터뷰를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대부분 질문을 던지면 긴장해서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거나 웃거나 또는 단답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매우 많다. 나중에 연차가 쌓이고 나서는 내가 어느정도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겨 리드할 수 있는 힘이 생겼지만, 그 당시에 나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앞서 1~2장에 걸쳐 내 학창시절에 대해 소개했지만 나는 굉장히 내성적이었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기자 생활을 거치면서 외향적인 성격으로 많이 변화했지만, 이 일을 처음 했을때만해도 처음 본 사람한테 말을걸고 대화를 이끌고 하는 능력은 전혀 없었다. 심지어 어느 인터뷰를 하러 가던 날에는 너무 떨려서 청심환을 2~3개씩 먹고 갔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인터뷰를 코치분께 요청해서 잡았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무식함과 무모함의 끝을 달렸다고 밖엔 설명 하지 못할 것 같다.


하여튼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 때 만난 선수는 아쉽게도 빛을 크게 보진 못했지만 김연아 키즈 1세대격인 1997년생 선수들 가운데 한 명이었던 조경아 선수였다. 예쁘장한 외모로 중국의 와호장룡을 온몸으로 그려내는 모습이 보통 예사롭지 않았다. 훈련을 마치고 볼이 빨개져 온 선수에게 참으로 어설프게도 말을 걸었다. “저... 인터뷰...” 안 그래도 긴장 잘하는 성격에 거짓으로 뭔가를 포장해서 말 하는건 더 못했던 나인데 30분간 아마도 선수 눈도 못 마주치고 어버버버 거리면서 모니터만 보다가 끝난던 것 같다.    


너무나 허무하게 인터뷰가 끝나 버렸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뜨거웠던 여름날에 처음으로 이 곳을 찾았을때와 마찬가지로 느꼈던 심정이었다. '뭐가 이리 허무하지..' 라는 생각이 머릿 속을 떠나가질 못했다. 첫 취재가 그랬던것처럼 첫 인터뷰도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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