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2) 그렇게 내 친구 동계스포츠를 만났다
나도 학창시절에 대해 정말 좋은것들만 추억하고 담고 싶었다. 하지만 어쩌다 휘말려 버린 학교폭력이라는 소용돌이 앞에 그렇게 초중고 생활 12년은 속절없이 흘러 버렸다. 그 시간 때문인지 내 마음은 차디찬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어 버렸다. 무언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고 자신감과 자존감은 바닥으로 곤두박칠 쳤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아직까지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거나 먼저 대화를 거는 것은 나한테 오지 여행을 떠나려고 마음 먹는것처럼 굉장히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던 내게 ‘따뜻한 친구’와 같은 존재가 아주 우연히 찾아왔다. 다름 아닌 때로는 은반 위에서 질주하고 때로는 예쁜 드레스를 입고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연기를 펼치는 동계스포츠였다. 때는 2002년, 온 나라가 붉은 악마가 돼 축구 국가대표를 응원하던 날이었다. 모든 집에는 항상 축구 중계가 시끄럽게 틀어져 있었고 골이 터졌다는 신호로 너나할 것 없이 “와~” 함성을 지르며 열광했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아도 말이다. 그런데 내가 2002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그 순간이 아니다, 한일월드컵이 열리기 몇 달 전 미국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그 대회가 바로 안톤오노의 헐리우드 액션으로 유명했던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이다.
이 때 우리나라에서 동계올림픽의 효자종목으로 꼽히는 쇼트트랙에게는 정말 악몽같은 대회였다. 다른 국가의 노골적인 반칙부터 시작해 김동성이 안톤오노의 속임수로 인해 다 잡았던 금메달을 놓쳤기 때문.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그 일이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난다. 추운 2월이었기에 나는 위아래 깔맞춤의 내복을 입고 있다가 정체모를 이상한 소리에 이끌려 거실로 나왔다. 눈앞에 펼쳐졌던 광경은 13살이란 어린 나이에 봤어도 아직까지도 너무나 선명하다.
TV 속 화면에는 김동성 선수가 얼음 위의 짧은 트랙을 치열하게 달린 끝에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이 나왔다. 우리나라 사람이 제일 먼저 들어오자 나는 방방 뛰며 너무나 기뻐했다. 그런데 불과 5분도 안돼 기쁨은 분노로 뒤덮혔다. 심판의 오심으로 인해 한국의 금메달은 날아갔고 미국에게 금메달이 선언된 것이다. 도무지 눈을 뜨고 믿을 수 없던 광공. 한동안 얼음이 됐던 나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말망아지처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왜~~ 왜~~”거리며 방방 뛰어다니며 분노를 주체하지 하던 모습... 그렇게 나는 학교에서 느꼈던 분노와는 또 다른 분노를 느꼈고 그것이 내 시작이 될 줄은 몰랐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또 다른 동계스포츠가 아주 우연히 나한테 찾아왔다. 바로 피겨스케이팅. 고3 입시 준비로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밤 10시가 넘어서 집에 오던 일 일상이 반복되던 2008년 3월이었다. 아마도 아침을 먹고 있을 때였던 듯 하다. 학교에 가기 위해 부랴부랴 졸린 눈을 겨우 뜨고 교복으로 갈아입던 때 중계 소리가 내게 들려왔다. “다음 선수는 대한민국의 김연아 선수입니다” “응? 한국선수라고?” 13살 때의 추억처럼 나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tv앞에 나왔고 그대로 쇼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얼굴이 퉁퉁부었던 김연아 선수의 연기에 홀연히 빠져들었다. 그녀는 은반 위를 너무나 쉽게 자유자재 왔다갔다하며 아찔하게 점프를 뛰다가 제자리에서 음악의 싱크로율을 그대로 표현하듯 스핀을 이어갔다. 그리고 온몸으로 음악의 내용을 표현하는 등 다채롭고 역동적인 동작이 내 시선에 꽂혔다. 그렇게 4분이 마치 마법처럼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박수가 터져 나왔고 그저 브라운관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이상한 낌새가 내 주위를 감돌았다. 해설진들의 목소리는 굳어갔고 김연아 선수의 표정 역시 허망함을 감추지 못하는 듯 보였다. 결국 1,2위와 소숫점 줄세우기로 3위. 나중에야 선수가 고관절 부상 속에 진통제를 맞고 서 있기조차 힘든 상태에서 이 대회에 출전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나는 알 수 없는 파도에 휩싸였다. 13살 때는 “왜”라며 분통을 터뜨렸다면 이번에는 말하기 힘든 감정에 침묵만을 이어갔을 뿐이다.
그리고 마음 속에 무언가가 치밀었다.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라고 어릴 때 지겹게 봤던 만화의 주인공처럼 마치 내가 정의의 용사라도 된 듯 “왜 이런 일이 생겼지?” “왜 우리나라 사람이 이렇게 부당하게 대우 받아야 하지?”라는 의문을 품으며 꼭 알아야겠다고 파헤치기 시작했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고 하는데 이 두 번의 분노가 치밀었던 그 우연은 그렇다면 내겐 필연이었을까. tv 속에 펼쳐지진 이 이야기들을 보며 나는 그렇게 뜨럽고 치열하게 동계스포츠를 알아가고 싶었고 그 길을 뚜벅뚜벅 따라갔다. 마음 속의 분노가 이끈 이 세계, 그것은 내게 20대의 거의 모든 순간을 함께 하게 됐다. 우연이 아니라면.. 그것은 어쩌면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겟다. 내가 2002년 2월 13살 때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그때 봤던 것이 하필 쇼트트랙이었고, 2008년에 또 한번 우연히 보던 것이 김연아 선수의 피겨스케이팅이었다. 두 가지가 모두 얼음 위에서 경기가 열리는 것, 어이없는 판정으로 인해 우리 선수들의 땀이 피눈물로 변해버렸던 그 순간... 그리고 내 마음에 끓었던 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