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고군분투기(7)
어떤 선택이든 완벽할 수 없습니다. 저 또한 완벽하지 않고 아이도 그렇잖아요. 단지 좋은 선택으로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유치원을 다니는 동안 아이와 최대한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그저 듣기만 하는 자세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질문을 했어요. 처음에는 잘 이야기하지 않더니 먼저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유치원에 안 가는 주말이 오면 유치원에 가고 싶다고 하기도 했어요. 주말에 유치원 근처에 가게 되면 인사도 하고 월요일에 보자고 이야기도 했습니다.
유치원에서 속상했던 일도 있었겠지만 잘 지내주고 있어서 칭찬해 주는 것을 자주 해줬습니다. 누구나 항상 기쁜 일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어리더라도 생각이 있고 감정이 있으니까요. 덕분에 유치원 첫여름방학 기간에 둘만 여행을 갔다가 속마음을 듣게 되는 소중한 경험도 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그동안 친하게 지내고 싶은 친구가 있었는데 같이 놀자고 이야기를 못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먼저 가서 같이 놀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혹시 이야기하는 게 어려우면 편지를 써서 전해주면 어떨까 했더니 그것도 좋은 생각이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다음 방학 때는 그 친구와 같이 놀고 싶다고 하는데 그동안 마음이 바뀔지 안 바뀔지 모르겠지만 말이죠.
유치원 등원부터 하원까지 만나는 사람들이 생각해 보면 굉장히 많아요. 유치원 등원버스에서 만나는 기사님, 선생님, 친구들과 언니오빠들이 있어요. 유치원 도착해서 선생님들과 친구들을 만나게 됩니다. 같은 반 친구들은 아이를 제외하고 19명이나 되기 때문에 사회생활이라고 하기에 충분한 사람들을 만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 이외에 어떤 그룹에 속하는 것이 주는 소속감이나 애착을 경험해 보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다만 가족 외에 그런 그룹이 하나만 존재하는 것은 살아가는데 선택가능성을 제한하는 결과를 만들어요. 우리도 그렇잖아요. 가족 외에 회사생활만 하게 되면 회사생활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거나 회사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고 다양한 생각을 할 기회가 없어요.
아이에게도 다양한 사회를 체험할 기회를 주고 싶은데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단지 부모님의 여력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부터 문제라고 생각해요. 사회적으로 부모님의 여력에 기대지 않고 다양한 사회 경험을 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죠. 제가 태어났던 스웨덴과 일대일 비교를 할 순 없지만 그리고 독일의 보육과 교육 시스템이 궁금해서 살펴본 것과도 당연히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참고만 했었어요. 상대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조금씩이라도 만들어지는 상황이 있길 바라봅니다.
유치원에서 상반기 동요 발표회를 했습니다. 학부모를 초청해서 강당에 한 명씩 정해진 동요를 부르는 발표회였어요. 20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한 명씩 나와서 자기소개를 하고 노래를 부르게 됐는데 아이들의 몸집에 비해 큰 무대가 내 관점에서는 버거워 보이기도 했죠. 그래서인지 가장 먼저 입장하는 어린이를 보고 대견하고 멋지다는 감정 때문인지 울컥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후에 너무 부담스럽고 긴장돼서 그런지 발표를 제대로 하지 못한 어린이도 있었어요. 조금 떨리지만 발표를 멋지게 마무리한 아이를 보니 한 뼘 커져버린 느낌을 받게 되더라고요.
동요발표회를 하기 전에 집에서 연습하던 모습도 너무 귀엽고 멋졌어요. 아이에게 유치원이 지금 자신의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겠어요. 잘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처음이라 떨리는 마음이라고 저에게 얘기했을 때 솔직하게 얘기해 줘서 고마운 감정과 자신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이야기해 주는 모습을 보여줘서 좋았어요.
만약 보육 위주의 어린이집을 다녔더라면 경험하지 못했을 큰 발표회를 하고 나니 교육과의 차이점을 절실하게 깨닫게 됐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경험해 봐야 자신의 감정을 알게 될 수도 있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알 수 있잖아요. 물론 보육만 한다고 해서 나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저 어린이집과 다르게 많은 아이들이 함께 유치원에 다니고 좀 더 커졌고 경험을 새롭게 하다 보니 차이점이 보이는 거예요.
아이들마다 성장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보육과 교육 중에 어떤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에 따른 선택이 더 필요할 수 있죠. 제 아이의 경우에는 교육이 더 필요한 아이였어요. 스스로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보육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거든요. 교육이 더 필요하다고 느꼈던 단서는 이거였어요. 예전에 영어유치원을 조커 카드로 준비했을 때 봤던 면접이 좋았는지 틈만 나면 영어공부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거든요. 혼자 한글 쓰는 것도 좋아해서 공부책을 사달라고 하고 아침마다 공부를 하기도 하고요. 책도 좋아해서 책을 굉장히 많이 봤어요. 덕분에 교육이 중심이 된 유치원을 선택하게 됐고 그 선택에 후회하지 않습니다. 다행히도 전 운이 좋아서 교육을 하는 유치원에 경쟁률을 뚫고 선발이 됐지만 보육자가 보육인지 교육인지 선택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대로 관찰하는 것이 어려운 일인데 온전히 각 개인에게 맡겨버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묻고 싶어요.
유치원에서 방과 후 과정으로 영어를 일주일에 세 번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공부일 수 있지만 아이는 재미있게 영어를 노래로 게임으로 즐기고 있었어요. 영어유치원에 대한 이야기를 이미 전에 언급하긴 했지만 영어유치원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유치원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가 많이 없는 것 같아 조금 써봅니다.
제가 태어난 스웨덴에서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영어를 배우지 않았어요. 모국어를 먼저 배우고 나서 영어를 접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그 이후에 영어를 잘하지 못하느냐라고 물어본다면 누구보다도 영어를 잘하는 아이들이 스웨덴에 많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알파벳을 사용하는 것의 친숙함도 있기 때문에 한국과 바로 비교할 순 없지만 모국어가 제대로 토대가 잡혀야 제2외국어를 잘할 수 있다는 가설을 증명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스웨덴에 초등학교 전까지 있었는데 한국어를 모국어로 썼기 때문에 집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라고 유치원에서 부모님께 이야기해 줬다고 합니다.
지금 반포동 생각의 탄생 리터러시 학습센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영어유치원에 대한 질문을 몇 번 해봤어요. 사실 궁금하잖아요. 저는 영어유치원을 굳이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실천하지만 그 결정이 나중에 아이에게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안길 수 있다는 공포 마케팅이 잔뜩 도배되어 있으니까요. 아이들의 대답은 영어는 의지를 가지고 하겠다고만 하면 초등학교 들어가서 나중에 해도 된다는 의견이었어요. 주변에 영어유치원 다녔다고 해서 영어를 잘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영어유치원을 안 다녔다고 해서 무조건 영어를 못하는 것도 아니라고요.
(사실 영어유치원이나 교육에 대한 부분은 기회가 나면 좀 자세히 쓰고 싶은데.. 이건 핑계인가요 아직 시간이 안 나서 책 몇 권 읽어보고 써보도록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