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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이야기 Aug 25. 2023

예술가 토마스 만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 토마스 만 단편을 읽고

 토마스 만의 소설을 <마의 산>부터 시작해서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장편 소설을 읽고 나서야 단편을 접하게 됐네요.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에 나오는 등장인물 하노가 떠오르게 한다는 문장을 <마의 산>을 읽을 때 봤고 그다음에 하노를 알게 됐습니다. 이번에도 하노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어요. 이래서 한 작가의 책을 다 읽으면 매력을 알 수 있다는 사실에 공감하게 됐습니다.

(이번에 읽은 단편은 <토니오 크뢰거> <키 작은 프리데만 씨>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


1898년(23세), 키 작은 프리데만 씨

1903년(28세), 토니오 크뢰거

1903년(28세), 트리스탄 - 요양원

1912년(37세), 베니스에서의 죽음


다 가질 수 없다


 <토니오 크뢰거>에서 토니오를 통해 예술가가 되려면 다른 것을 가질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어요. 토니오는 예술을 사랑하고 그것을 나눌 친구가 없잖아요. 한스와 잉에를 바라보는 장면을 통해 토니오가 그런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지거든요.

 사랑하는 사람 안에 신이 있다는 문장과 작가의 행복이 완전한 감정이 될 수 있는 생각을 가지는 것, 완전한 생각이 될 수 있는 감정을 가진다는 문장을 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받는 사람보다 더 신적일 거라는 얘기였다. 그 이유는 사랑하는 자 안에는 신이 있지만 사랑받는 자 안에는 신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p.482
작가의 행복은 완전한 감정이 될 수 있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며, 완전한 생각이 될 수 있는 감정을 가지는 것이다. p.483


토마스 만이 원했던 것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그 느낌을 알기 때문에 저도 책을 읽는 친구가 너무 필요합니다. 그래서 헤르만 헤세와 토마스 만이 친구였나 봐요. 하지만 토마스 만은 어렸을 때 그런 친구를 찾을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지금 아이들을 만나다 보니 남다른 재능을 가진 친구를 주변에서 만나기가 힘듭니다.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만 만날 수 있는데 그동안의 고독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껴집니다.

 <토니오 크뢰거>의 토니오가 한스를 좋아하지만 서로 친구가 되지 못하는 상황을 그리면서 어린 시절 토마스 만을 떠올리게 합니다. 토니오의 여자친구 리자베타를 통해 원하는 예술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토마스 만의 소설은 등장인물 각자가 이야기하는데 마치 한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지게 만듭니다. 자문자답을 하는 꼴이라고나 할까요. 다른 작가들보다 특히 토마스 만이 더 두드러지게 그런 느낌을 받게 만드네요. 그 대화 속에서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아마도 인간의 모순적인 면을 잘 표현하는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토마스 만이 특징 중 하나가 '반어'라고 하는데 두 양극단의 세계 중에 하나를 택하지 않고 선호를 유보한다고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잖아요. 어떻게 하나의 면만 가지고 있을 수 있나요. 모두 다 두 가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상황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등장인물들이 토마스만 머릿속에 있는 가상인물들이고 그의 생각이 말을 한다는 그림을 책을 읽는 내내 하게 만들어요. 물론 모든 등장인물이 다 그런 건 아니고요.


한스는 '돈 카를로스'를 읽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 둘은 이머탈이나 다른 그 어느 누구도 감히 끼어들 수 없는 그 어떤 공동의 화제를 갖게 될 것이다! p.22
왜냐하면 행복이란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고 그는 자신에게 다짐했기 때문이었다.... 행복은 사랑하는 것이다. p.33


마의 산이 여기서 시작하다


 토마스 만이 살던 시대의 요양원은 도피의 장소로서 기능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트리스탄>이라는 작품뿐만 아니라 다른 책에서도 요양원에 대한 언급은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서도 요양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데 비슷하게 도피의 장소로 인식되거든요.


1952년 12월. 빈 출신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는 크리스마스 방학을 맞아 취리히를 떠나 그라우뷘덴의 아로자 산중턱 경사면에 우뚝 선 헤르빅 빌라로 간다. 이곳은 폐병 환자들을 위한 요양소다. 해발 1,850미터의 산 공기가 폐결핵의 고통을 완화시켜 주리라. 그는 작년과 재작년 크리스마스도 이곳에서 보냈는데, 그때는 아내와 함께 왔었다. 이번에는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함께 왔다. 빈에서 온 예전 여자 친구와 함께, 슈뢰딩거의 아내는 이런 일에 개의치 않았다. 그녀 역시 내연남이 여럿이고 그중 한 명은 수학자 헤르만 바일인데, 바일의 아내는 파울리의 친구인 물리학자 폴 셰러의 내연녀였다. p.196

<불확실성의 시대 | 토비아스 휘터> 중에서


냉소와 비판


 <키 작은 프리데만 씨>는 내용이 있는지 알 수 없게 냉소로 가득 차 있습니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는 병에 대한 집착이 저에겐 보였던 것 같아요. 예술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이면서도 타치오를 보면서도 치아의 상태가 고른지 확인하는 등 병에 집요하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에뒤아르는 이런 종류의 토론에는 신물이 났다. 바깥세상에서는 그들이 아무리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도 우스꽝스럽게 여길게 뻔하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정신병원에 틀어박혀, 아무런 위험도 무릅쓰지 않은 채 세상을 구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사람들 각자가 모든 문제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진실만이 옳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수다로 세월을 보냈다. 생각이 감당해야 하는 현실의 문제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은 채. 좋건 나쁘건, 생각은 그것을 실천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에만 존재하는 것인데도. p.213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 파울로 코엘료> 중에서


 독일 시민으로 어떤 상황에 처해있었는지 예술가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고민했고 독일 전반적인 분위기를 담아내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결국 전쟁에 반대하고 각자 자신의 생각을 알기를 바랐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마의 산>에서 아래 토마스 만의 생각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거든요.


토마스 만은 자기 자신을 포함한 예술가라는 유형 일반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빌헬름시대의 독일의 청교도적 군인정신 및 프로이센적 도덕주의가 지니고 있는 위험성까지도 아울러 비판함으로써, 은연중에 암시만 하는 정도이긴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독일사회의 분위기와 경직된 도덕기준에 대해서도 아울러 비판하고 있다. p.542

<트리스탄>에서의 슈피넬, 가브리엘레 인물을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서는 에뒤아르와 베로니카로 표현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파울로 코엘료가 토마스 만 소설을 읽고 떠오른 아이디어가 아닐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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