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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빈틈을 매꿀 선물같은 책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by 태양이야기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와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두 권의 책을 나란히 읽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독서 모임을 하고 나니 왜 두 권을 같이 읽어야 하는지 이유가 명확해졌다. 어쩐지 처음부터 같이 읽고 싶었는데 첫 번째 책은 추상적인 개념이라고 하면 두 번째는 구체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적용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만 읽으면 조금 부족하다고 느낄 법하다. 개념만 있는 책의 한계이기도 하고 구체적인 사례만 나열된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두 책을 소개하며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이야기해 보겠다.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가장 먼저 증여의 특별함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선물이나 교환은 한 차례로 끝나지만 증여는 계속되는 특성이 있다. 누군가에게 받았을 때 상대방을 모를 경우 다른 사람에게 증여의 형태로 전달되는 마법과 같은 효과가 일어난다고 한다. 한마디로 증여는 어떤 면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만약 우리가 지금부터 이야기할 조건을 좀 더 깨닫고 알아차릴 수 있다면 증여로 가득 찬 세상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신뢰가 손상된 사회의 반창고 소재로 써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의 부제가 상당히 증여나 선물이 필요한 이유를 짚어주고 있다. 바로 '자본주의의 빈틈을 메우는 증여의 철학'이다. 언젠가부터 자본주의에 문제가 있지만 그 대안을 찾을 수 없기에 답답했는데 그 자본주의의 빈틈을 메운다는 설명에 당장 책을 집어 들게 만든다.


증여를 깨달을 수 있는 조건: 불합리성, 사랑, 수취인의 상상력, 언어놀이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홍콩에 사는 탄자니아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들은 돈벌이가 목적이기 때문에 선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냥 거리낌 없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민다.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문화에 있다고 봐야 할지 더 자세한 내용은 책을 꼭 봐야 한다.


이들이 대범하게 “그야 내가 청킹맨션의 보스이니까”라는 식으로 표명하며 많은 사람이 자신을 필요로 하고 사랑받고 있음을 곧이곧대로 드러내도 불쾌하지 않고 오만함도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아마 이들이 ‘보스가 되는 것’도, ‘사랑받는 것’도 목표로 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장사꾼이고, 공식적으로 표명한 목표는 어디까지나 '돈벌이'이며 보스가 되려 한다든가 선한 사람이 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좋아할 수 있게 된다.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중 p.248


합리적이라는 단어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역사적으로 근대 이후에 합리성이라는 상상의 산물이 공기처럼 우리의 생활에 스며들었다. 그때부터인지 합리적인 선택을 하거나 합리적인 행동을 해야 성공한 인생이거나 제대로 된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되지 않는 행동은 당연히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게 됐다. 그런데 돈이 안 되는 행동을 누군가 하지 않으면 사회는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다. 책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마치 지금 내 주변에 이루어지는 모든 것이 원래 있었던 상황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 사라진다면 다시는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어느새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마치 없다고 생각하게 된 걸까 질문이 생긴다.


나도 예전엔 눈에 보이지 않는 건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텔레비전에 나오던 가난한 외국의 아이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가깝게는 같은 한국에 사는데 밥을 못 먹고 학교를 못 간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학생 때부터 봉사활동을 통해 경험을 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을 눈에 보이게 했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모든 걸 다 경험해 볼 순 없기에 책을 읽으며 대체해 왔다. 하지만 그때도 합리성이라는 존재로부터 벗어나진 못했었다.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청킹맨션에서도 당연히 효율성을 추구한다. 왜냐하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뭐든 효율적이기만 해서는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러 상황을 통해 설명해주고 있다. 일이란 모름지기 사람이 하기에 경제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향하는 행동 또한 공존해야만 일이 된다.

‘효율성’을 추구하여 이들의 플랫폼을 시장 교환에 적합한 형태로 세련화 제도화해 나간다면, 본래의 목적이었던 ‘인심을 쓰는 기쁨’, ‘동료와의 공존’, ‘놀고 싶은 마음과 장난치고 싶은 마음’, ‘자영업의 자유로운 정신’의 가치보다 경제적 가치를 우선하게 만드는 모순을 낳는다.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중 p.176


사랑 덕분에 합리성에서 한 발 물러서다


회사를 다니면서 합리성은 더욱 강화됐다. 일을 처리하는데 더 효율적인 방법을 추구하게 된 결과다. 그렇지만 일이라는 게 사람이 하는 건데 효율성만 강조하다 보면 그 뒤에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된다. 자연스럽게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대체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지 그 목적 자체를 잊게 돼버렸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사랑으로 향한다고 하면 회사를 퇴사할 목적을 가진 이후부터 시작됐다. 거창하게 사랑까지는 아니지만 사람에 대한 애정이라고 해야 할까.


질문으로 언어놀이를 시작하다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사람에 대한 애정은 자연스럽게 궁금증으로 발전했고 직접 질문을 하며 언어놀이를 시작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자연스럽게 이 책에 나오는 과정을 충실히 따라갔었던 시기가 있기에 증여의 개념을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연한 기회에 누군가에게 호의를 받은 경우가 있는데 그때 '나중에 너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내가 해준 것처럼 해줘'라는 말을 들었다. 그 당시에 머리를 강타하는 충격이 있었다. 이후 나도 그런 호의를 베풀 수 있는 상황이 오면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 그 받은 호의만큼 베풀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렇게 증여가 계속 전달된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 책이 낯설지 않았다.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탄자니아 인들의 언어 놀이는 세세한 규칙이 없다. 그저 다른 사람이 무언가 필요할 때 도와줄 것이냐는 간단한 선택지만 존재할 뿐이다. 탄자니아 사람들을 이해하려면 그들의 언어놀이 세상으로 푹 빠져야 하는데 책을 쓴 저자가 인류학자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탄자니아에 무려 17년이나 있었고 이후 홍콩에 있는 탄자니아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홍콩의 탄자니아인들은 조합 활동에 대한 실질적인 공헌도나 궁지에 몰린 원인을 묻지 않고, 조합원 자격이나 타자를 도울 때에 관한 세세한 규칙을 명확히 만들지 않고, 그저 타자가 필요로 하는 지원에 응할 것인지 말 것인지만을 판단한다. 이 책에서 나는 '왜 나만 애쓰고 있는가', '왜 그 사람은 언제나 도움받는가'라는 멤버 사이의 공헌 불균형, 호수나 신뢰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배경으로 '겸사겸사'의 논리와 ICT를 이용한 교역 시스템의 연속성을 제시했다.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중


수취인의 상상력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누군가의 호의 혹은 증여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와 비슷하게 상상력이라는 단어를 요즘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때도 상상력이 필요하고 다른 사람의 상황을 이해하려 할 때도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나는 상상력이 정말 한참 부족했었다. 그걸 보완할 수 있었던 건 많은 사람들과 책들이다. 앞으로도 수취인으로서 상상을 더 잘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책을 읽는 건 줄이지 말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시 새겨본다.

교환은 한 차례로 끝나지만, 증여는 계속 전달됩니다.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중 p.35
우리는 불합리성을 통해 타인이 보내는 증여를 깨달을 수 있다.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중 p.112
사랑이라는 이유만이 그 불합리성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즉, 사랑은 오직 불합리로부터만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중 p.117
'어떻게 해야 증여를 건네받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입니다.... 수취인에게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증여는 발신인에게 윤리를 요구하고, 수취인에게는 지성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중 p.126
'아파!'라는 외침은 우리의 언어놀이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요? 바로 무언가 '대책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아파!'라는 발화에 대해 "그로써 언어놀이는 끝나지 않는다; 그로써 언어놀이는 시작된다."라고 비트겐슈타인은 적었습니다.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중 pp.146-147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누군가 도우면 누군가 날 도와줄 것이라는 상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화적인 배경인지 아니면 이런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게 된 건지 선후관계를 알 순 없지만 이 사례를 시작으로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널 도우면 누군가가 나를 도와줄 것이다'라는 원칙은 내가 홍콩 탄자니아인의 사회적 세계를 파악하기 위해 관심을 갖고 있는 원칙이다. 이는 증여 교환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세계 곳곳의 수렵채집민이 사냥하고 채집한 것들을 같이 나누던 행위, 일방적인 이양, 분배라고 불리며 연구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공유경제 시스템은 인류학자들이 수렵채집민 사례를 연구하며 밝혀온 '분배'보다 다소 '냉담'한 것처럼 보인다.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중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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