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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이야기 Nov 07. 2022

수용소 밖에서 존재하기

<숨그네>를 읽고

 전쟁이라는 큰 서사를 다루는 것보다 한 개인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책이 점점 좋아지고 있는 중입니다. 전쟁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이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사람에 대한 이해에 더 관심이 생긴 탓인지는 알 수 없어요.


전쟁이라는 큰 소용돌이 속 사람들


 전쟁이라는 큰 현상 안에는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군인이 있고 그들의 가족이 있겠죠. 크게 보면 적군이 있고 아군이 있을 텐데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사람들 바깥으로 그보다 더 많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개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만 보이는 것 같아요. 다수의 사람들 혹은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역사 안에서 부각되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것만이 역사의 전부라고 배우는 것이 과연 다수의 일반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요.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힘겨루기에 힘없이 결정권을 박탈당한 사람들 일상의 투쟁이 전쟁보다 덜 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큰 착각이라는 사실을 이런 책을 통해 전달되어야 합니다. 일상에서의 고군분투가 내용과 맥락만 다를 뿐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도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문학으로 읽히는 것이 좀 더 사람들에게 부드럽게 다가가는 것 같아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삶이 내 삶이 될 가능성에 대해 배제하지 않아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거든요.


수용소 밖에서 존재하기


 수용소에서의 삶은 이미 다른 작품을 통해서 읽은 바가 있기도 하지만 유독 마음에 남는 부분은 수용소에서 나와 일상을 보내야 하는 시기였어요. 수용소뿐만 아니라 가족과 장기간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는 경우, 다른 가족이 생겼다가 다시 원래 가족으로 돌아오게 될 때와 같이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생기게 됩니다.

 게다가 수용소에 갔던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후 가족들이 겪는 힘듬과 적응이 꽤나 현실적이고 안타까웠는데요. <수레바퀴 아래서>에서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와서 일을 하게 됐을 때와 비슷하기도 합니다. 실패했다는 표현이 좀 거칠 수 있는데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을 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입장이 잘 대변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사자도 힘들지만 그것을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할지 상대방도 배운 적이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잘 조율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과연 어떤 방법으로 어떤 방식으로 시작해야 할지 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마치 감옥에 3-5년 있다가 나오고 나서 적응하지 못해 생을 다했던 영화 <야쿠자와 가족>도 떠오릅니다. 다시 돌아온 사람에게 의도치 않게 폭력을 저지르게 되는 경우도 과연 한 사람만의 잘못인가 싶기도 해요. 결국 모두가 피해자가 되어버리거든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그렸던 <파친코>도 생각납니다. 나라를 떠도는 난민과 그 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는 안타까움이 있었어요.


고향에 돌아가 나는 무엇이 될 것인가. 귀향했답시고 산등성이를 헤매다가 기차처럼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앞서 갈 것이다. 나는 스스로 함정에 빠질 것이다. 끔찍한 친숙함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내 가족이에요, 하고 말하면서 떠올리는 건 수용소 사람들일 것이다. p.290


벽에서는 나의 숨그네가, 가슴에서는 심장삽이 똑딱 소리를 냈다. 심장삽이 그리웠다. p.296


나는 이미 몇 달째 발로는 집에 돌아와 있었다. 내가 무엇을 보고 왔는지 아무도 모르는 집에. 묻는 사람도 없었다. 이야기에는 신빙성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나는 아무도 묻지 않는 것이 기쁘면서도, 그 때문에 남모르는 상처를 받았다. 할아버지가 계셨다면 분명 뭔가 물어봤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이 년 전에 돌아가셨다. 평화가 찾아온 지 삼 년째 여름 신부전증으로 돌아가셨고, 나와는 다른 식으로 죽은 사람이 되었다. p.301


아버지가 말했다. 누가 알겠니, 너희 수용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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