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선정 100대 명산 산행기 18화 치악산
겨울이면 늘상 하는 고민.
수도권에서 늦게 출발해서 갈 수 있는 겨울산은 없을까?
태백산,소백산,덕유산,계방산,선자령,제왕산,백덕산...
항상 겨울 산행지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들이다.
그렇듯 겨울산행으로 유명한 산들이 여럿 있지만 사실 접근성이 좋은 곳은 별로 없다.
겨울 산행지는 대부분 오지에 있기도 하지만 겨울이라서 눈길 위험이 있어서 자가용으로는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유명 겨울 산행지는 아니지만 비교적 접근성이 좋은 치악산으로 향했다.
수도권에서 치악산의 대표적 산행 기점인 구룡사까지는 승용차로 2시간여면 다다를 수 있다.
구룡사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등산로 초입인 구룡사 진입로에 들어서자 멋진 금강송길이 반갑게 맞아준다.
아름드리 금강송길의 겨울 운치를 즐기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행을 시작 한다.
금강송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 천년고찰 구룡사가 있다.
그러나 구룡사는 여러번 왔었기 때문에 시간 절약을 위해서 그냥 패스를 하고 바로 본격적인 산길로 들어섰다.
본격적인 등산로 초입에는 구룡폭포가 있다.
구룡폭포를 지나서도 얼마동안은 계곡과 함께하는 걷기좋은 평지 길이 계속된다.
그리고도 계속되는 계곡길을 1시간쯤 오르면 세렴폭포 삼거리가 나온다.
사다리병창으로 가는 계단.
세렴폭포 삼거리에서는 계곡길과 사다리병창길로 나뉜다.
어느쪽을 택하든 거리가 2.7~2.8km로 비슷하고 난이도도 비슷하다.
그중에서 나는 계단으로 악명 높은 사다리병창길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작부터 끝없는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불구불 돌아가는 계단, 수직에 가까운 가파른 계단,계단의 연속인 사다리병창길이다.
사다리병창길은
거대한 암벽군이 마치 사다리꼴 모양으로 되어있고 그 암벽 사이사이에 자라난 나무들과 어우러진 모습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고 하여 '사다리병창길'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병창은 벼랑,절벽을 뜻하는 사투리란다.
유명한 사다리병창길의 진수를 보여주는 구간이다.
원래는 가파른 바윗길인데 양쪽에 난간을 설치하고 바닥에는 계단을 보강해서 스릴은 없어졌지만 덕분에 안전한 길이 되었다.
끝없는 계단.
잊혀질만 하면 어김없이 나오는 계단.
정상은 가까워지고 있으나 그만큼 계단은 더 가파라지고 있었다.
이제 계단이 지겨워지고 체력이 고갈되어간다.
첫 조망.
산행시작 3시간 반만에 첫 조망을 본다.
치악산 구룡사 코스는 어느쪽으로 오르든지 정상 부근이 가까워지기 전에는 조망이 없다.
역시 조망은 산행에서 힘듦을 많이 상쇄시켜준다.
지금부터 정상까지가 사다리병창 코스의 별미다.
원래는 스릴넘치는 험한 길이었는데 지금은 계단과 철난간을 설치해서 안전하게 오를수 있다.
휴~아직도 1.1km가 남았다.
이제부터는 젖먹던 힘으로 올라야 할 시간이다.
그렇게 오르고 또 오르다보니 마지막 계단앞에 섰다.
바닥난 체력으로 저걸 오르려니 앞이 캄캄하다.
히말라야라도 오르는 기분으로 거의 기다시피 정상부에 올라섰다.
그러나 기진맥진한 몸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겨울 산그림에 감격하고 감탄했다.
정말 한마디로 장관이라는 말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겨울 산그리메.
이래서 우리는 겨울산에 오르는지 모른다.
물론 상고대나 설화를 보기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이렇듯 멋진 겨울 산그리메야말로 겨울 산의 최고의 멋이 아닐까?
4시간만에 정상에 섰다.
높이 1,288m.
치악산 정상인 비로봉에는 꽤 여러번 올랐는데 역시 겨울 산행이 힘들다.
한가지 다행인건 사다리병창길이 전에는 겨울산행으로는 조금 위험했는데 이제는 안전하게 오를수 있다는 것이다.
치악산은 원래 단풍이 아름다워서 적악산(赤岳山)이라 했다고 한다.
그러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한 나그네가 이 곳을 지나다 꿩을 잡아먹으려는 구렁이를 발견하고 꿩을 구해 주었고,이 꿩도 구렁이가 나그네를 해치려는 것을 구해 주었다고 한다.
나그네를 휘어감은 구렁이가 상원사에서 종이 세 번 울리면 살려 주겠다고 하자 꿩 세마리가 머리로 종을 세 번 치고 죽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꿩치(雉)자를 써서 치악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비로봉 미륵탑
치악산 비로봉에 세워진 돌탑은 원주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던 용창중이라는 사람이 꿈에 비로봉 정상에 3년 안에 3기의 돌탑을 쌓으라는 신의 계시를 받아 1962년 처음 쌓기 시작하여 1964년 5층으로된 돌탑을 모두 쌓았다고 한다.
그중 남쪽의 탑을 용왕탑,중앙의 탑을 산신탑,부쪽의 탑을 칠성탑이라고 한단다.
순전히 흑과 백으로만 표현된 산수화.
저 수많은 산줄기 줄기,다시 그 산줄기 줄기 사이 사이 마다 계곡 과 계곡이 있으리라.
또 그 계곡과 계곡 사이에는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 있을터....
겨울 풍경이 아니라면 어찌 저리 세밀한 산줄기를 표현해 낼 수 있을까?....
마치 이중섭의 황소 그림이라도 된듯 힘찬 근육질의 산 그림이다.
생각보다 춥지도 않고 바람도 없어서 정상의 아름다운 조망에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어두워지기 전에 하산하기 위해서 서둘러 하산길에 들었다.
하산은 계곡길을 택했다.
계곡길은 음지라서 눈이 발목까지 빠졌다.
그래서 오르는것 못지 않게 체력소모가 심했다.
그래도 어두워지기 전에 하산을 완료하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되는 상황...
몇년전 여름에 사진 놀이를 했던 이름없는 폭포가 빙폭을 이루고 있다.
오후 5시 10분.
다시 세렴폭포 삼거리에 도착했다.
사실상 하산의 완료 지점이다.
여기서 부터 주차장까지는 2.5km쯤의 거리이지만
거의 평지라서 쉬운 산길이다.
다시 주차장까지 빠른 걸음으로 2.3km를 30여분만에 걸어 내려왔다.
정확히 10년전 여름에 올랐던 치악산 이다.
그때는 한 여름이었는데 이번엔 정 반대로 한 겨울산행을 했다.
그때는 그렇게 힘든 줄 모르고 올랐었는데 오늘은 요근래 산행중에 가장 힘든 산행이었다.
10년이란 세월의 차이도 있겠지만 눈길이라서 더욱 힘들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치가 떨리도록 힘이 들다는 치악산,그 정상에서의 환상적인 산그림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던건
또 하나의 행운이었다.
산행코스:주차장 ㅡ구룡사 ㅡ세렴폭포 ㅡ사다리병창길 ㅡ정상 ㅡ계곡길 ㅡ세렴폭포 ㅡ구룡사 ㅡ정상(11.4km점심 사진촬영포함 6시간30분)
ㅡ2017.02.07.원주 치악산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