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선정100대명산 산행기 2화 도봉산ㅡ2
전국적으로 비 예보가 있는 주말.
이번 주말까지는 강원권이 단풍 절정을 이룰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교통체증이 극심할 것이라는건 불 보듯 뻔한 일일테고,
거기에다 비까지 온다고 한다.
그래서 비 예보가 없는 서울 근교의 산들을 머리속에 떠올리며 물색을 한다.
서울 근교엔 참 유명한 산들이 많기도 하다.
북한산,도봉산,관악산등 국립공원급 산들은 물론 수락산,불암산,수리산,광교산,청계산등 나름대로의 특색을 가진 산들이 즐비하다.
그런 내노라하는 산들에 둘러쌓인 서울은 역시 우리나라 최고의 도시다.
아니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의 유명 도시들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도시다.
그 내노라하는 서울 근교 산들을 머릿속에 넣고 복권 추첨하듯 골라잡는 재미는 또 어떤가?
그렇게 해서 오늘 당첨된 산은 도봉산이다.
원도봉탐방센터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산길에 들어서자마자 화려한 단풍이 반갑게 맞아준다.
내 예상이 적중한 순간이다.
가을 산행에서 단풍의 적기를 맞춰서 간다는게 쉬운일은 아니다.
주말 산행을 하다보면 1주일이라는 간격이 있어서 아차하면 늦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2년반 전에 올랐던 코스인데 그사이 다리가 생기는등 등산로 정비가 잘 이루어져 있었다.
한 발 또 한 발 올라설때마다 단풍은 더 짙어지고 있다.
아랫쪽의 단풍이 이정도면 윗쪽은 최고의 절정에 달했을거라는 생각에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 졌다.
엄홍길 생가터와 눈썹바위를 지나면서 단풍도 덩달아서 화려해지고 있었다.
길 건너편
바위와 푸른색 소나무 사이에 총총히 박혀있는 빨갛고 노란단풍의 아름다운 풍경에 잠시 넋을 놓는다.
이 풍경은 단풍의 최고 절정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가을 산 풍경이기도 하다.
다양한 색감이 어우러진 시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무르익으면 단풍색상은 짙기는 하지만 단순해진다.
주차장에서 40분쯤 오르자 단풍 절정 구간이 나왔다.
온통 붉게 물든 등산로를 호젓하게 거닐 수 있다는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행운이다.
말 그대로 단풍 속으로 들어간다.
원도봉탐방지원센터에서 망월사를 거쳐 포대능선으로 오르는 이 길은 도봉산의 진면목을 속속들이 볼 수
있는최고의 등산로이다.
그러나 접근성도 좋지 않고 조금 힘든코스라서 산객이 그리 많지 않은 코스이기도 하다.
그점이 오히려 도심에서 호젓한 산행을 즐길수 있는 장점이 있는 코스다.
덕제샘.
중간에 만나는 옹달샘이다.
이 등산로에는 두개의 약수터가 있다.
덕제샘과 민초샘이다.
일설에 의하면 옛날 김영삼대통령을 탄생시킨 민주산악회가 있었다.
80년대 군부 억압시대에 산행으로 불의를 견뎌낸 좋은 의미의 산악회다.
물론 나중에는 불법 선거의 사조직으로 변질되어 지금도 다른 이름으로 이용되고 있지만...
그중에 김영삼 대통령의 측근 민초라는 호를 가진 김동영이 있었다.
그의 호를 딴 약수터가 민초샘, 또다른 덕제라는 회원의 이름을 딴 약수터가 덕제샘이라고 한다.
덕제샘에는 서울 근교에서 보기드문 음용적함 검사 결과가 붙어있다.
그래서 시원하게 바가지를 들이 마시고 다시 출발한다.
망월사.
1시간 20분만에 천혜의 명찰 망월사에 도착했다.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서 여기까지만 왔다가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또 욕심이 생긴다.
그래서 체력 보충도 할겸해서 산사의 가을 정취에 취하며 충분한 휴식을 한다.
가을 망월사는 2년전 늦은 봄쯤에 보았던 풍경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산지형 지형에 맞게 조성된 입체감 있는 건축물과 색의 조화는 눈길 닿는 곳마다 한 폭의 그림이다.
망월사는 신라 선덕여왕의 총애를 받던 해호 스님이 이곳에 절을 짓고 신라의 수도 월성을 바라보며 기도하던 곳이라하여 망월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천년도 훌쩍넘은 절정의 가을 산사에서 30여분의 휴식을 취하고 다시 정상을 향해 출발한다.
사람에게 휴식이란 정말 새로운 에너지 충전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렇게 기진맥진했던 몸이 그 30분의 휴식으로 제법 힘이 충전되었으니 말이다.
망월사에서 좀 가파르긴 하지만 500m만 오르면 포대능선에 도착한다.
포대능선은 옛날에 포대진지가 있어서 포대능선이라고 부르게된 능선으로 도봉산 앞뒤와 북동쪽의 사패산,
그리고 멀리 서쪽방향의 장쾌한 북한산을 두루 조망하면서 걸을 수 있는 암봉길이다.
오늘은 저질 체력으로 스릴 넘치는 포대능선코스의 최고 난코스 구간인 Y계곡은 우회를 한다.
Y계곡은 조금 위험하기는 하지만 일반 등산객들이 암벽타기 기분을 내 볼 수 있는 코스인데 좀 아쉽긴 하다.
포대능선은 대부분 암릉길로 이루어져 있다.
중간에 쇠난간도 타야하기는 하지만 위험구간인 Y계곡을 빼면
비교적 안전하고 무난한 도봉산 최고의 등산코스중에 한 곳이다.
멀리 가야할 도봉산 정상부가 보인다.
예상과 달리 정상부는 벌써 단풍이 지고 없다.
산에서는 고도차 때문에 산 아래부터 윗부분까지의 단풍 절정 시기가 다르다.
그래서 아랫부분의 단풍이든 윗부분의 단풍이든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세상이치가 둘 다 가질 수 없는 이치다.
'프로스트'인가?
어떤 시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두갈래의 숲길에서 시인은 사람들이 많이 가지않은 길을 택했다.
그래서 제목이 가지 않은 길인지...아니면 가지 않은 또다른 길을 의미하는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건 가지 않는 길이 있다는것....
우리 앞에는 언제나 두갈래의 길이 있다.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
좋아하는 길과 좋아하지 않은 길,
힘든 길과 쉬운 길,
앞으로 가는 길과 뒤로 가는 길,
지름길과 돌아가는 길...
그렇지만 결국은 가는 길과 가지않은 길,
두가지의 길로 나뉘어진다.
그중에 가지 않은 길은 항상 궁금하고 미련이 있게 마련이다.
포대능선에서는 Y계곡의 스릴과 사방의 조망 못지않게 원도봉산의 다양한 기암괴석을 보며 걷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한 구비 돌아설때마다 나타나는 다양한 모양의 바위들은 때로는 웅장한 모습으로,
때로는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불쑥불쑥 나타난다.
주봉인 자운봉이 있는 서쪽지역을 도봉산이라고 부르고 이 지역을 원도봉산이라고 부른다.
Y계곡의 우회길에 들어섰다.
평소에 가지 않은 길을 택한 것이다.
Y계곡의 스릴을 즐기자면 이 편안하고 아름다운 길을 놓치는 것이다.
어차피 세상 이치는 두가지를 다 가질수 없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을 여기서도 깨닫는다.
우회길은 가을로 가득차 있었다.
덕분에 산 아랫쪽에서 초가을의 정취를 만끽했다면 여기서는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한다.
산에서만 가능한 하루에 즐기는 다양한 계절인 셈이다.
드디어 오늘의 최종 목적지,자운봉과 신선대의 웅장한 자태가 눈앞에 펼쳐졌다.
왼쪽 암봉이 도봉산의 최고봉인 자운봉,오른쪽 암봉이 일반인이 오를 수 있는 신선대다.
오늘 나의 목적지다.
오늘의 목적지 신선대 정상에 섰다.
멀리 서해 바다와 북한산의 삼각봉을 배경으로 바위전시장을 방불케하는 기암괴석이 줄지어 서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울긋불긋 단풍물이 베어있는 모습이 마치 한폭의 그림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신선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뷰다.
구름 속의 붉은 바위봉우리라는 뜻의 자운봉 상부는 마치 바위블럭을 쌓아 놓은듯 하다.
그래서 신비감과 블럭 하나만 잘 못 건드리면 우르르 무너져 버릴것 같은 아슬아슬함이 공존하는 암봉이다.
정상에서의 시간은 언제나 너무 빠르다.
더군다나 주말 산행은 인파에 밀려서 우물쭈물 하다보면 어느새 30여분이 훌쩍 지나가고 만다.
2,3일만 일찍 왔더라면...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의 모습도 훌륭한 한 폭의 수채화다'라는 생각으로 만족한다.
사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호젓하게 즐기지 못하고 사람들에 떠밀리다시피 하면서 사진만 찍고
내려오기에는 너무 아쉬움이 많다.
그러나 정상에서의 여유시간은 언제나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
다음 산객들에게 자리를 비워줘야 하기도 하고,땀이 식기때문에 춥기도 하고,하산하는 시간을 고려해야
하기때문이다.
Y계곡에서 사람들이 줄지어 스릴을 즐긴다.
언제나 정상에서 느끼는 감정은 아쉬움이다.
그 '아쉬움'을 뒤로하고 서둘러 하산길에 든다.
하산은 포대능선 정상을 지나 역시 저 Y계곡을 우회해서 다락능선쪽으로 한다.
도봉산 최고의 뷰포인트에서 파노라마로 본 도봉산.
왼쪽부터 선인봉,만장봉,신선대,약간 짤린 봉우리가 자운봉이다.
가야할 다락능선 ㅡ
갑자기 다락능선의 이름 유래가 궁금해졌다.
집에와서 찾아보니 저 아랫쪽에 옛날 덕해원이라는 2층 누각구조의 객점이 있었다고 한다.
객점은 지금으로 말하면 국립호텔쯤 되는 건물로 한양에서 북쪽으로 드나든는 길목에 있어서 그 덕해원을 중심으로 물류도시가 형성되었단다.
그때 당시는 누각을 다락으로 표현했기때문에 덕해원을 다락원으로 불렀고 그 윗쪽에 있는 능선의 이름도
다락능선이라 부르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만 있을 뿐이란다.
다시 단풍커튼 너머로 도봉산 정상부의 자태를 본다.
하늘만 좋았더라면 멋진 작품하나 건질뻔 했다.
다락능선에서 만월암으로 내려가는 계단이다.
새로 설치한 나무데크가 화려한 단풍과 어우러져 마치 낙원으로 인도하는 길처럼 느껴졌다.
정상부의 늦가을 정취에서 이제 다시 절정의 가을 정취 속으로 들어간다.
단풍터널을 뚫고 내려오면 천혜의 암자 만월암이 나온다.
만월암은 만장봉 중턱쯤에 바위틈을 비집고 들어선 암자로 신라 문무왕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이후 최근의
혜공스님을 비롯한 내노라하는 스님들이 거처간 암자로 유명하다.
여기서 부터 다시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단풍은 저 홀로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무엇과 어울리느냐에 따라서 그 감흥이 배가된다.
물과 어우러져도 아름답고,다른 나무들과 어우러져도 아름답고,길과 어우러져도 아름답지만
바위와 잘 어우러졌을때 참 아름다운것 같다.
야성미가 가미된 아름다움이라고 할까?...
이제 아랫쪽으로 내려갈수록 단풍은 다시 싱그러워지고 있다.
늦가을에서 절정의 가을을 지나 초가을로 들어선 느낌,그러고보니 오늘 3가지의 가을을 모두 만끽하는 셈이다.
물론 만추도 아름답지만 빨주노초가 잘 어우러진 싱그러운 단풍 풍경도 아름답다.
늦가을이나 절정의 가을 단풍이 약간 쓸쓸함을 느끼게 한다면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단풍은 약간 새봄 느낌의
생동감을 준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 ㅡ
계단은 안전함과 편리함을 주지만 그 반대 급부도 만만치 않다.
단조로움과 지루함이다.
보폭의 다양함,난이도의 다양함을 빼앗아 간다.
가을 향기 그윽한 왕복 7.2km의 산행이 끝났다.
거리로만 보면 왕복 7.2km는 별거 아니지만 오늘 이 코스로는 꽤 난이도가 높은 산행이다.
처음에는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망월사까지만 갔다가 내려올까? 생각했는데
또 하다보니 풀코스 완주하게된 산행이 되었다.
정상부에서는 기온이 내려가 좀 춥기도 하고,
하산중에 약한 비를 만나기도 했지만 처음 산행 시작할때 지끈거리던 머리도 맑아지고
기분도 아주 좋아졌다.
등산이 좋은 이유다.
몸을 혹사시켜서 기분을 좋게 하는게 등산인 셈이다.
실제로 그렇다.
등산 다녀온 다음날은 몸은 천근만근인데 머리는 쾌청하다.
산행의 마력 덕분이다.
산행코스:원도봉산탐방지원센터ㅡ엄홍길생가터 ㅡ덕재샘 ㅡ망월사 ㅡ포대능선 ㅡy계곡우회 ㅡ신선대
ㅡ포대능선정상ㅡ다락능선ㅡ만월암 ㅡ도봉탐방지원센터(점심포함 천천히6시간)
ㅡ100대명산 2번째 도봉산-2. 도봉산의 가을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