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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탄 리 May 31. 2024

P군의 외모 가꾸기 소동

소품집

 그 무렵 P군은 외모 가꾸기에 열중이었다. P군에게 좋아하는 이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여학생은 M양으로, P군의 학과 동기였다. 둘은 미술대학의 학생이었다. 미술대학 학생답게 M양은 옷을 입는 센스가 뛰어났다. 그녀의 복장은 매일 바뀌었고, 같은 옷을 입는 경우가 잘 없었는데, 그 마저도 모두 화려하고 개성 있었다. P는 M양의 어떤 부분에 반했던 것이었을까. M양은 눈에 띄게 예쁜 건 아니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혹하는 심정을 불어넣는 외모를 소유하고 있었다. P군은 1학년 때는 관심 없었던 M양이 어느 날 왜 이렇게 예뻐 보이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온 관심사가 미술에만 가 있던 1학년 때와는 달리, 3학년인 그때는 P군의 관심사는 이성에 가 있었다. P군은 M양의 외모를 보기에 앞서 거울 앞의 자신의 외모를 들여다봤다. 키는 중키에, 얼굴에는 여드름이 뽕뽕 올라와있었고, 뿔테 안경을 끼고 옷을 못 입는 전형적인 ‘평남’이었다. P군은 M양의 주위에 붙어 다니는 남자들의 외모를 떠올려 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훤칠하고 옷을 잘 빼입었다. P군은 자신이 어딘지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외모를 가꿔야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그는 머리를 최신 유행하는 스타일로 바꿨다. 그리고 귀에 피어싱을 뚫고 더 나아가 코에도 피어싱을 뚫었다. P군은 거울을 보았다. 그래도 모자람이 있었다. 이제는 옷을 사 입을 차례였다. 옷을 사는 기준이 없었던 그는 각종 사이트를 뒤지며 모델들의 착용 샷을 보았다. 그리고 장바구니에 옷 수십 벌을 찜해두었다. P군은 수십 벌의 옷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옷 몇 가지를 당장에 주문했다. 몇십만 원이 깨졌는지, 그는 수중에 가지고 돈을 모조리 다 써버렸다. 거기에 모자랐는지, P군은 일일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었다. 번 돈으로는 또 옷과 향수, 화장품을 샀다.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한 P군은 M양에게 다가갔다. M양은 평범했던 P군이 왜 그렇게 변했는지 의아해했다. 놀라 하기보다는 의아해했다. P군의 대학 선배들 중에는 옷을 잘 입는 선배들이 있었다. P군은 그 선배들에게 외모 코칭을 받고, 헬스도 같이 다녔다. 그러면서도 P군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저 사람들은 외적으로 꾸미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P군 자신도 그들과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헬스장에 다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근육을 키운다는 사실은 그를 진저리 치게 했다. 하지만 P군도 그런 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P군은 일부러 M양이 학교에 나가는 시간에 맞춰 실기실에 들어갔다. 혹은 실기실로 M양을 초청하곤 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갖 치장을 하고서 말이다. 무스탕에, 검은 터틀넥, 징이 있는 검은 바지에, 워커. 그런 차림으로 P군은 학교에 갔다. M양도 마찬가지였다. M양도 비슷한 차림으로 학교에 왔다. P군은 M양에게 호감을 쌓으려고 노력했다. 거의 모든 활동을 같이 하고, 같이 놀러 다니기까지 했다.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한 P군은 마침내 M양에게 고백을 하기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대답은 “아니”였다. M양은 친구로밖에 P군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P군은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옷을 더 사고 외모를 더 꾸며야 한다고 생각했다. P군은 그것이 자기 열등감의 발현인지 몰랐다.

 그즈음, P군의 머릿속에 있었던 생각은 무엇일까. M양에게 차였다는 것 외에 그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던 생각 말이다. 우선 그는 외모적으로 뒤떨어지는 사람들을 멸시했다. 그리고 외모를 꾸민 자신을 비롯한 사람들만이 사회의 진정한 멋쟁이로서 문화를 주도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오만함으로 P군은 세상을 살아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몇 년, 그의 시야에서 M양이 사라지자, 그도 외모를 가꾸지 않기 시작했다. 턱수염을 자라게 방치한 채로 둔 적도 있었고, 옷에 보풀이 일어도 바꾸지 않았다. 신발 밑창은 다 떨어졌고, 머리가 아무리 길어도 자르지 않았다. P군은 자연스레 예전에 하던 대로 책을 잡았다. 혼자 방에 틀어박혀서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또 그림을 그렸다. 그러자, M양을 좋아했던 시절에 자신이 했던 행동들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그때는 외적인 무언가를 채우는 것이 진정 자기를 발전시키는 일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P군은 자신의 내면에 뭔가를 채워 넣고, 정신적으로 성숙하는 일이 자신을 진정으로 아끼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P군은 세상으로 나왔다. 세상이 돌아가는 모양을 보았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꾸미기를 좋아했다. 더욱이 몸을 크게 키우는 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사람들이 보였다. 인터넷 배너를 조금만 넘겨도, 거의 헐벗다시피 한 여자들의 운동 쇼츠 영상이 나왔다. SNS에서는 똑같이 화장하고 비슷한 스타일로 꾸민 여차들의 사진이 급류처럼 흘러갔다. P군은 사회에 나가서 그런 사람들을 대하게 되었다. 물론 자기 자신은 사람들에게 패를 끼치지 않기 위한 깔끔함만 유지한 채로 말이다. P군은 궁금했다. 사람들이 이런 자신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지. 한껏 꾸민 사람들 앞에서 움츠러드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야 자신이 했던 행위의 동기가 자기 열등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P군은 자기 자신을 반성했다. 이전에 자신이 겉모습만 보고 멸시했던 사람들에 대해. P군은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세상에는 꾸민 사람들보다 꾸미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그런 사람들이 모두 멸시를 받아 마땅한 사회라면, 이 세상은 잘못된 것이다. 모두가 멸시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꾸미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존재와 내면을 존중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사람들은 주로 부족한 자신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를 꾸민다. 그리고 그 모습으로 사람들 위에 서려고 한다. 그것은 멋도, 자유도 아닌 열등감의 발현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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