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탄 리 May 30. 2024

그들의 하루

소품집

 J군과 Q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어쩌면 J와 Q군은 2010년대, 2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고등학생, 대학생의 상화인지도 모르겠다.


 J군의 나이는 19세이다. 키는 173센티미터, 몸무게는 57킬로그램이다. 그는 안경을 꼈고, 교복 바지와 재킷 소매는 그의 구에 비해 약간 헐렁했다. J군은 그날도 어김없이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물론 그때는 점심시간이었다. 공을 차는 1학년 아이들의 목소리가 본관 안쪽에 위치한 도서관까지 흘러들어왔다. 도서관의 한쪽 창문을 열어두었기 때문이다. J군이 읽고 있는 책은 <일리아드>였다. ‘이 책은 수능 시험에 나오지 않으므로 이 책을 읽든 읽지 않든 큰 효과가 없다. 인문학을 전공할 것이 아니라면, 쳐다볼 필요조차 없는 책이다.’ 그를 가르치던 한 선생은 J군이 도서관 밖에서도 그 책을 들고 다니는 걸 보고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J군은 상처받지 않았다. 이제까지 읽었던 많은 문학책들이 그런 취급을 받았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읽기를 멈추지도 않았다. 그는 그날도 혼자 볕이 드는 창문 앞에 앉아 책장을 넘겼다. 이윽고 점심시간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J군은 성적이 그저 그런 학생이었다. 1학년 때는 모든 과목에서 중간 이상 정도는 되었다. 그러나 2학년이 되면서 수학이 고꾸라졌고, J군은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되었다. 등급으로 치면 그는 5-6등급밖에 되지 않았다. 사회에서 말하는 흔히 잉여의 삶을 살게 될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J군은 우울해하거나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았다. 그저 이어폰을 끼고 책을 넘겼다. 이어폰 속에서 누자베스의 음악이 흘러나와 J군의 달팽이관에 꽂히면, 그는 모든 걱정을 잊었고, 책장 속에서 이미지가 흘러나와 그를 상상의 세계로 이끌면 그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할지도 몰랐다. 적어도 그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수능까지는 2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J군은 그저 그렇게 공부를 했다. 6달, 5달, 4달, 3달… 사실 수능이 다가오면 할수록 그에게도 감정의 변화는 있었다. 마치 롤러코스터의 극단에 올라갈 때와 같은 긴장감, 어떤 연극이 절정으로 치솟았을 때의 그런 긴박감이 그의 손과 발에 식은땀이 나게 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뭘 어떡할 것인가. 그는 하고 싶은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다. 아무도 그에게 그런 것을 물어보지 않았기에, 그 자신도 스스로에게 그런 것을 물어보지 않았다. J군은 어항 속의 금붕어처럼 늘 멍한 표정을 짓고 복도를 돌아다녔다. 그건 J군의 반에 속한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J군은 7, 8교시를 그런 멍한 표정으로 보냈다. 그리고 학급의 다른 아이들이 저녁을 먹으러 갈 때, 말없이 책을 펼쳤다. 그에겐 같이 밥을 먹으러 가자고 말을 해주는 친구도 없었다. 왜냐하면, 벌써 오래전에 그런 아이들을 그가 다 쳐냈기 때문이다. 창가의 커튼 레이스는 산들바람에 흔들렸다. 운동장에서는 빨리 밥을 먹은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창가까지 달려왔다. J군은 교실 안을 한 번 돌아다보았다. 아무도 남지 않은 교실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그런 썰렁한 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이윽고 아이들이 밥을 먹고 돌아오면, 모두 야자를 시작할 것이다. 그럼 그들은 일제히 뒤통수를 보이고 앉아 말도 없이 수능을 위한 공부를 시작할 것이다. J군은 그런 적막이 싫었다. 또한 어딘지 그런 모습이 보기 싫었다. 또 몇몇 아이들은 야자를 끝내고 학원으로 가서 자정 가까이 까지 공부를 할 것이다. 아이들이 하루 이틀 이 일을 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 일을 10여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지속했다.  

 J군은 생각했다. ‘어른들이, 인생의 레이스는 고등학교 때가 끝이 아니라던데, 대학을 가면 그제야 시작이라던데, 이 목표도 없는 레스는 언제가 돼야 끝나는 걸까.’ 생각에는 답이 없었다. 그는 어둑해지기 시작한 창밖을 한 번 더 바라봤다.

 J군은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에 책가방을 쌌다. 그리고 그는 학교 옥상으로 올라갔다. 학교 옥상에선 별이 꽤 잘 보였다. 도심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곳에 있는 학교라 그런지 몰라도. J군은 옥상 난간에 앉아 다리를 흔들었다. 운동장 조명 아래로 달리기를 하는 아이들 둘이 보였다. 그는 생각했다. ‘저 아이들은 꿈이 있어서 저렇게 뛰고 있는 걸까, 저 아이들이 꿈을 이뤄 대학에 간다고 한들, 대학은 저 아이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J군은 알지 못하는 미래라는 트랙 끝에 있는 벽이 두려웠다. 벽의 색도, 질감도, 알 수 없는 크기와 두께가 모두 두려웠다. 평소에는 두렵지 않은 척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두렵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그는 이어폰을 귀에 끼웠다. 이어폰에서는 누자베스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Q군은 J군의 형이다. 이날 오전, Q군은 아침햇살이 볼을 찌르자, 눈을 찌푸리며 잠에서 깼다. 어느덧 9월도 중순을 향해 가고 있었다. Q군은 방학 동안 경양식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음식을 서빙하고, 바닥을 쓸고 닦고, 손님을 응대하는 일을 했다. 잘 맞는 일이란 없었지만, 그는 그런 일을 대학시절 내내 해야겠다. Q군은 올해로 23살이고, 키는 177센티미터 몸무게는 63킬로그램 정도이다. J군과 마찬가지로 안경을 썼고, 통이 큰 카고 바지에, 오버 핏 티셔츠를 입었다. 그는 안경을 찾아 쓰고, 대충 물로 씻은 다음, 아무것도 먹지 않고 학교로 갔다. 1교시 수업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1교시는 ‘국문학의 이해’라는 수업이었다. 수업에선 알지도 못하는 작가들 이름을 나열하며, 마치 수능이라도 치듯 그 이름을 외우게 했다. Q군은 그 수업이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창작수업이라면 그래도 재미있게 할 만했는데 하고 중얼거렸다. 수업은 3시간이 흐른 뒤에 끝났다. Q군은 백팩을 둘러메고 캠퍼스를 걸었다. 빛을 받는 산과 나무들, 그리고 사람들을 구경했다. 걷는 도중에 하품이 몇 차례나 나왔다. 밤새 스마트폰을 하다가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가 예쁜 여자라도 지나가면, 그는 정신을 바로 차리고 똑바로 걷는 척을 했다. 킥보드를 타고 다니는 학생들이 그를 지나쳐 갔다. 그는 도서관 끼고 있는 호숫가로 향했다. 호숫가엔 키가 큰 전나무들과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서 있었다. 오리들이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사람들은 호숫가 난간에 기대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호숫가에 쪼그려 앉아서 물에 비친 자기 자신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얼굴이 물에 일렁이고 일그러지는 모습을 보았다. 난 이다음에 뭐가 될까, 그는 생각했다. ‘무엇이 된다,라는 것을 생각조차 할 수 있을까, 그것이 과연 정상적인 사고일까. 친구들은 나처럼 모두 알바를 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대충 듣고 과제를 적당히 한다. 그리고 밤에는 술을 마시거나 게임을 하지.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일 따윈 거의 없다. 그런데 그런 우리가, 대체, ‘무엇이’, ‘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있을까. 이제 졸업학년인데, 난 준비된 것도, 아는 것도 하나도 없다. 있다고 해도, 선배들처럼 공장이나 중소기업에 취직하겠지. 아니면 쿠팡에 가거나. ‘넌 좋은 대학을 가지 않았으니까, 고등학교 시절에 공부를 똑바로 하지 않았으니까.’라는 두 마디 말로 요약될 정도로 내 인생이란 것이 하잘 것 없는 인생인가. 선배들처럼, 그렇게 취직해서 산다고 치자, 그럼 돈은 언제 모으고, 결혼은 언제 하고, 애는 어떻게 나아서 키우지? 이제 와서 사회에서 꿈을 펼쳐 보라고, 창업을 하라고들 하는데, 우리가 고등학교 대학교 때 배운 내용은 꿈을 펼치는 내용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어떻게 하면 시험 문제를 많이 맞힐까 하는 방법적인 부분에 관한 것이었지.’ Q군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오리가 그더러 정신을 차리라는  꽥꽥거리며 울고 있었다. 멀리서 호숫가에 돌을 던지는 한 소년이 보였다. 그 소년은 야구 선수 폼을 따라 하며 돌을 던졌다. Q군은 그렇게 철없이 야구선수 폼을 흉내 낼 수 있는 소년이 더없이 부러웠다.

 이윽고 저녁이 되었다. Q군은 학교 도서관에 계속 앉아 있었다. 말없이, 서가를 뒤적이기도 하면서, 가끔은, 햇빛이 떠나고 있는 유리창에 얼굴을 비춰보기도 하면서. 유리창 속엔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이 정말 많았다. 무엇을 그리 열심히 하는지. 시험기간은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Q군은 자리를 찾는 척하면서, 사람들이 공부하는 양을 훑어보았다. 공무원 문제집에, 토익 자격증에, 또 무슨 자격증에, 문제집에. 그런 책들이 책상 위에는 놓여 있었다. 책다운 책을 보는 학생들은 한 명도 없었다. Q군은 생각했다. ‘저 많은 서가의 저 많은 책들이 다 무슨 소용이야, 그냥 공무원 자리만 많이 만들어주면 되는 거 아니야?’ 결국 Q군은 짜증을 내며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그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버스에는 피로에 쩐 직장인들이 앉아 있었다. ‘주 5회,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근무, 야근 있음.’ 그들의 이마 위에 이런 글씨가 새겨져 있는 것만 같다고 Q군은 생각했다. 그는 생각을 비우려고 머리를 흔들었다. 도저히 여기 그대로 있다간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기사님, 저 내려주세요.”

 Q군은 말했다.

 다행히 Q군이 내린 곳은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Q군은 공용자전거를 타고 한적한 골목을 따라 집으로 갔다. 집에는 동생 J군이 와 있었다. 아직 9시도 안 되었는데, 고3인 동생이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는 것을 보고 Q군은 깜짝 놀랐다. 거기다가 동생이 맥주를 마시고 있던 것이 아닌가. Q군은 손을 높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목청을 높여 뭔가를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동생의 눈이 더없이 쓸쓸해 보였기에.

이전 07화 소년화가 P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