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은 정말이지 허무하다. 사람에게 기대려는 마음도, 사람이 내 뜻대로 움직여주길 바라는 마음도. 그럴 때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손발이 결박당한 채 침대 위에 감금된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 꺼내주기 전까지 나는 깊은 바다 아래로 빠져든다.
물고기들이 날 비웃으며 스쳐가는 모습을 본다. 기포가 수면 위로 솟아오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기포도 나오지 않는다. 얼마 못 가선 빛마저 차단당한다. 그럼 나는 빛도 공기도 없는 곳에서 목숨이 끊어지길 한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 기분으로 하루, 또 이틀이 지난다. 회복이 좀 된다 싶으면 난 또다시 멍청한 짓을 반복한다. 미끼를 던져주면 즐거워하는 물고기처럼 사람이 내게 반응을 보이면 나는 기뻐한다. 그럼 온 연못을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며 ‘봤어? 봤어?’하며 수중생물들에게 자랑을 한다.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을까?
다행인 것은 나이가 들면서 증세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마음의 근본적인 원인은 제거할 수 없다. 우울하고 울적한 마음, 사람이 날 돌아봐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이 마음의 치료가 완벽하게 될 지도 확신할 수 없다. 이럴 때, 난 미운 마음이 들어, 사람들이 다 보기 싫다고 생각하곤 한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글을 쓰면서도 말이다.
원인 치료를 위해 밖으로 나온다. 볕을 쬐면 좀 나아지겠지. 손에는 나쓰메 소세키의 <수상집>이 들려있다. 이 책은 얼마간의 평화를 나에게 선사한다. 일상을 주제로 한 담담한 글들. 일상의 평온을 그리는 듯한,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런 글들이 이 책의 모든 개별 에피소드의 내용인 듯하다. 아파트 주차장 옆에 한 정자가 보인다. 난 그리로 다가간다.
아파트 정자, 두꺼운 나무 기둥에 앉아 책을 읽고 있자니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뜨거운 햇빛은 정자에 침범하지 못하고 아스팔트를 비추고 있다. 꽃들과 풀들이 아파트 그림자에 숨어 고개를 살살 흔들고 있다. 한 아이가 흰 개 두 마리를 몰고 내 앞을 지나간다. 아이들이 놀면서 시끄럽게 외치는 소리가 빈 시멘트 기둥들 사이에서 울려오고, 새들은 맑게 지저귀고 있다. 무슨 새인지는 모르겠다.
정자 주위를 뱅글뱅글 돌던 강한 햇빛이 내가 앉은 정자의 한쪽으로 침범해 들고 있다. 나는 햇살이 드는 한쪽에 앉아 있다. 내 몸은 반으로 갈라졌다. 한쪽은 푸른 겨울에 한쪽은 노란 여름에 내 몸은 걸쳐있다. 태양광이 책장을 비추자, 빛이 반사되어 내 눈이 부셔온다.
밤을 잘 못 이뤄 피곤했던 나는 정자 마루에 옆으로 눕는다. 바람이 조금 차갑지만, 상관없다. 여기는 종을 쳐 깨우는 사람도 없고 이름을 불러 성가시게 하는 사람도 없다. 내 곁엔 아무도 었다. 그러나 평화롭다. 돌돌 굴러가는 바람과 꺾일 줄 모르고 내리쬐는 햇살과 정자 마룻바닥의 차가운 온도만이 내 곁에 있다. 나는 잠 속에서 그들과 애무를 벌이고 그들은 날 마음껏 희롱한다. 깊은 잠이 아니었으나 행복하다. 눈을 떴을 땐 어느새 한 시간이 흘러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치료는 되지 못한다. 나는 또 세상의 창문을 열고,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기웃거린다. 낮에서 저녁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사람들의 등 뒤를 보게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바쁘다.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행동을 반복하고, 또다시 침대 위에 결박당하고,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다.
밤에, 찬양을 한다. 불을 다 껴놓고, 사람들이 방에 다 들어간 뒤 나 홀로 그 시간에 찬양을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만을 내 마음에 초청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찬양을 처음 시작할 때?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찬양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감동은 더해진다. 마음에 점점 평안이 찾아온다. 이 세상에 내 편이 아무도 없어도, 예수님 한 분만 있으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감정이 진하게 든다. 나는 계속 찬양한다. 감동은 더더욱 깊어진다. 동시에 밤도 깊어간다.
그런데 어째서, 예수님은 밤에만 내게 찾아오시고, 활동의 대부분인 낮에는 내 곁에 좀처럼 오시지 않을까? 내가 초청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만약 예수님이 하루 종일 내 곁에 계신다면 – 실제로 내 곁에서 내가 하는 모든 일을 함께 하고 계시지만 – 나는 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인생이란 불행을 전제조건으로 깔고 가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