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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탄 리 Jun 03. 2024

다섯 단어로 만드는 이야기


 내가 길을 잃은 지는 꽤 오래되었다. 그걸 인지했을 때 나는 숲 속 병원에 있었다. 머리에는 붕대를 감았고 가슴에는 피가 둥글게 고여 있었다. 나는 피를 토해낼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을 막아낼 수도 없었다. 내 머리는 점점 무거워져 갔고 나는 망의 바닷속으로 빠르게 잠겨 들었다.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져 죽음을 선택한 오필리아보다도 더 빠르게.

 병원에서 나왔을 때 계절은 가을이었다. 길 위엔 누런 햇살이 하나도 굴러다니지 않았고 보랏빛 하늘에선 눈이 떨어졌다. 태양은 피의 색이었다.

 나는 마른 강물을 보았다. 몸을 던질 수도 을 적실수도 없었다. 그 길의 끝에는 한 간이도서관이 있었다. 난 거기서 간신히 책 몇 권을 뽑아내 보았다. 길에는 계속 눈이 내리고 있었다.

 책을 보따리에 싸들고 나는 시내로 내려가려 했다. 하지만 시내로 내려가는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시내로 내려가는 길을 찾았을 땐, 눈이 비로 바뀌었다. 비는 세차게 내렸다. 시내는 비에 완전히 잠겨버렸다. 갈 곳 잃은 나는 숲 속 오두막에서 비를 피하며 책을 읽었다. 오두막에는 불빛 하나 없었다.




 그를 만난 것은 여름쯤의 일이었다. 그때 나는 미술을 하는 샌님이었고 이 세상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는 내게 신고식을 치러주었다. 그는 군인이었고 세상의 일에 빠삭했다. 나는 미술학도였지만 그의 방에서는 그의 신병이었다. 그의 기분이 내 기분이어서, 잠을 자지 않는 사내인 그가 기분이 나쁠 땐, 난 열중쉬어를 하고 있어야 했다. 슬레이트 지붕 끝에 맺힌 빗물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을 때까지 나는 그의 욕받이가 되었다. 욕을 하면 할수록 그는 더 기괴스러운 몰꼴로 변했고, 급기야는 칼을 들어 나를 위협했다. 그가 정신 병원으로 이송되었을 땐 해가 화창한 날이었다. 내가 병원으로 옮겨진 때는 장마철이었다.




 그 개는 난지 2주 만에, 내 보금자리로 왔다. 내 마음에 위로가 있길 바란 가족들이 시골에서 가져왔다. 개는 털이 꺼맸고 똥오줌을 아무 데나 지렸다. 우리 가족은 거실에 울타리를 쳐서 개의 활동 범위를 제한했다. 그 개는 나를 보면 무서워서 허리를 숙이고 경계했는데, 낯선 환경 속에서 겁에 질렸다는 표시였다. 나는 머리의 붕대를 아직 풀지 않았기에 신경통이 계속되었지만, 개를 보면 머리가 고쳐진 듯이 편했다. 나는 어미 개처럼 굳이 울타리 옆에 이불을 깔고 잠을 잤다.



공간


 마음속에 더 이상 그분이 계시는 공간이 없었다. 분노와 울화와 약물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분은 날 떠나신 것 같았다. 아니, 날 떠나셨다. 기도는 더 이상 소용이 없어 보였다. 내겐 더 이상 상상할 수 있는 봄이 없었다. 창 밖에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고 나는 집 밖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길 위의 간이 도서관에서 챙겨 온 책을 방 안에서 읽었다. 대체로 이야기 책이었다. 창밖에서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빗방울대신 우박이 떨어지기도 했다. 많은 이야기들 속엔 성경과 달리 그분의 이야기는 없었다. 이야기들은 잔잔한 강 같았다. 그분의 위로와는 다른, 그분보단 못한 위로를 내게 허락해 주었다.



과거


 과거에는 오직 그분으로부터 오는 위로만 내 마음속에 살아있었다. 머라에 붕대를 하기 전에, 병원에 입원을 하기 전에는 그랬다. 하지만 이제 내 마음속에 그분은 없었다. 내 마음은 술과 담배 연기로 혼탁해졌고 온갖 욕지기와 울화가 남아 있었다. 과거의 나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울화를 날려보려고 샌드백을 정신없이 쳤다. 그러다가 내 복싱글러브가 향하는 곳이 군인이었던 그의 머리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난 섬뜩했다. 이렇게 한 사람을 죽일 수 있구나. 땀이 빗줄기 내리듯 내렸다. 난 해드 기어를 내려놓고 창가에서 음료수를 마셨다. 밖은 캄캄했고 창밖에선 차가운 가을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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