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기록, 이레의 하나님
성경 이야기-3
내 아들 이삭! 내가 백세 노인이 되어 얻은 아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아이다. 나는 오늘 이 아이를 제단에 바쳐야 한다. 내 손으로. 하늘의 하나님께! 사흘 전, 이른 아침부터 나귀에 안장을 지웠다. "저희 어디 먼 길을 가나요 아버지?" 하고 아이가 맑고 큰 눈을 굴리며 말할 때, 내 늙은 심장은 큰 바위에 짓눌린 것처럼 무거웠다. 하인들에게 번제에 쓸 나무를 짐 지우고서 나는 아이를 내 나귀 안장 위에 태웠다. 아이의 곱슬머리에서 나는 부드러운 향이 내 코에 스며들었다. 그 아이의 머리조차 쓰다듬을 수 없었다.
오늘 오전, 멀리 모리아 산이 보였다. 나무가 별로 없는 민둥산이었다. 군데군데 흩어져 있는 나무와 관목 수풀이 보였다. 저 속에 흰 숫양 새끼가 숨어 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나귀 끈을 쥔 손엔 땀이 가득 찼다. 뛰고 있는 것도 아닌데 호흡이 차올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들려오는 것은 모랫바람 소리뿐이었다. 뼈가 깎이는 듯했다.
산 입구에 종들을 기다리게 하였다. 그리고 내 어린 아들과 함께 가파르지 않은 산을 올라갔다. 아이의 품에 번제에 드릴 나무를 안게 했다. 나는 불씨와 잘 벼린 돌칼을 들었다. 한걸음, 한걸음 오를 때마다, 모래 알갱이가 굴러 떨어졌다. 바람이 불어 모래가 일어나기도 했다. 내 온 근육이 떨려왔다. 모리아 산의 태양은 뜨거웠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이는 계속 날 힐끔힐끔 돌아다봤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산을 올랐다. 내 노구가 쓰러질 듯이 몸이 고되었다. 옷은 금세 흥건하게 젖었다. 노인의 땀냄새가 진동을 했다. 머리털 끝에도 땀구슬이 고였다. 아이가 물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는데, 제사할 양은 어디 있나요?" 그 맑은 눈을 반짝거리며 더없이 해맑은 표정으로. 나는 가슴이 타들어가는 듯했다. '오, 불쌍한 내 아들아, 네가 바로 번제로 드릴 어린 양이란다.' 하지만 정신이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나는 내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했다. 바로 내 아들 이삭의 씨로 별과 같이 수많은 자손들을 낳고, 그들로 인해 천하만민이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백세 노인이 되도록, 끈질기게 날 인도하신 하늘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신실하게 일하실 것이라 나는 생각했다. 그는 나를 버리시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결코 약속을 변경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속으로 끝없이 되뇌고 되뇌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산 정상에 도착했다. 꼭대기엔 말라비틀어진 나무 몇 그루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한 상수리나무 옆에 터를 잡고 제단을 쌓아 올렸다. 무거운 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번제 나무를 제단 최상부에 놓았다. 그리고, 그리고 내 아들 이삭을 밧줄로 동여맸다. 말뚱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재단 꼭대기에 올렸다. 아이는 반항하지 않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새파랬다. 아이는 울지도, 소리 지르지도 않았다. 나는 거의 실신할 지경이었다. 태양빛이, 뜨거운 태양빛이 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내 그림자가 제단과 내 아들을 덮었다. 나의 그림자도 떨리고 있었다. 손으로 아이의 몸을 붙들었다. 준비해 온 돌칼, 그날이 선 것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내리찍으려 했다. 그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내 가슴은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거라. 이제야 네가 네 아들까지도 아끼지 않는 줄 알았다. 그만큼 날 경외하는 줄 알았다. 뒤를 보거라."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관목 수풀이 작게 나 있었는데, 한 숫양이 나뭇가지 사이에 걸려 있었다. 숫양은 구슬피 울고 있었다. 내 주름진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나는 당장 아이를 번쩍 들어 제단 밑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눈물을 감추며 양을 도살하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양이 구워지는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검은 연기가 피어올라 버섯구름 모양으로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팔을 하늘로 뻗었다. 그리고 나를 위해 예비하신, 신실하신 '이레'의 하나님을 찬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