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주립미술관에 가다
첫째 아이가 농구 캠프에 참석하는 둘째 날이다.
어제 아빠와 첫째 아이는 처음 가본 호주 체육관의 놀라운 시설에 입이 떡 벌어졌다고 했다.
체육관에는 농구장뿐만 아니라 워터파크 같은 수영장이 있었고
농구 코트도 무척 넓은 데다가 골대가 무려 4개가 있었다고 했다.
농구장에는 계단형으로 된 관람석이 있었는데
꽤 많은 부모들이 그 관람석에 앉아서 아이들이 수업하는 모습을 자유롭게 참관한다고 했다.
대중교통으로 오랜 시간 이동하는 것도 걱정되었는데
숙소에서 조금만 걸으면 페리를 탈 수 있고 중간에 버스로 한 번만 갈아타면 바로 체육관 앞에서 내리기 때문에 할만하다고 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농구를 처음 배운 아이의 소감은 정말 재미있다고 했다.
같은 나이의 또래들이 4명 정도 있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먹했지만 그 친구들이랑도 조금씩 친해졌다고 했다.
한국인은 우리 아이 단 한 명이었다고 한다.
무엇이든지 참여하려고 해서 선생님이 이거 해볼 사람? 하면 무조건 손을 들었다고 한다.
운동량도 어마어마해서 땀으로 온몸이 범벅이 되었다는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더니 다리가 살짝 뻐근하고 아프다고 한다.
어디서든 잘 적응하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첫째 아이가 새삼 기특하다.
나와 둘째 아이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미술관 나들이를 계획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먼 거리에 있는 시드니 주립미술관(Art Gallery of NSW)에 도전하기로 했다.
남편도 큰 아이를 체육관에 데려다주고 미술관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사실 나도 어제 둘째 아이와 단 둘이서만 여행을 하니
그 나름의 여행도 특별하고 좋긴 했지만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었다.
남편이 온다고 하니 대중교통으로 장시간을 왔다 갔다 하느라 불편할까 봐 만류하면서도 내심 고마웠다.
미술관에서 무료로 진행되는 키즈투어(guided tour for kids)가 있다고 하던데
아쉽게도 우리가 방문한 날에는 키즈투어가 없었다.
남편이 미술관에 도착할 때쯤이면 점심시간이라 같이 점심을 먹을 만한 곳을 검색했다.
미술관 밖으로 나가기에는 시간이 애매하고
미술관 내의 카페테리아에서 저렴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2점대의 구글 평점이 이곳의 음식 맛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구글 평점은 오히려 crafted by matt moran이라는 식당을 나에게 추천해주고 있었는데
이 식당 역시 미술관 내에
그것도 내가 지금 음식점을 검색하느라 서있는 로비에서 바로 보이는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저 공간이 식당이라고???
위치도 가깝고 통창으로 된 식당의 뷰도 좋아 보였다.
단 하나의 문제점은 높은 가격대.
내가 망설이자 남편이 날 잡아끌었다.
셋이서 왔으니 넷이서 올 때 보단 낫다며 지금 아니면 언제 먹어보겠느냐 이거다.
맞다. 우리 집에서 큰 아이가 제일 많이 먹는다.
큰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큰 아이가 있었다면 절대 엄두도 못 냈을 것 같다.
그렇게 남편에게 설득의 못 이겨 오늘 점심은 이 레스토랑에서 먹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레스토랑 문을 열고 당차게 안으로 들어갔다.
직원이 물었다. "예약하셨나요?"
"아니요… 예약은 안 했는데 오늘 점심 식사를 하고 싶어요."
그랬더니 직원의 표정이 난처해진다.
오늘 점심은 full booked라고 했다.
아니 이렇게 자리가 텅텅 비었는데!?
나는 이 레스토랑이 너무 가격이 비싸서 식사하는 사람이 별로 없나 보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점심 예약이 꽉 찼다는 말을 듣고 당황스러웠다.
직원에게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please please please를 속으로 대뇌었다.
직원이 잠시 예약 스케줄을 열심히 확인해 보니 갑자기 환한 미소를 짓는다.
누군가가 취소했는지 딱 한자리가 남았단다!!!
호주에서 외식했던 레스토랑 중 가장 비쌌지만 가장 맛있었던 레스토랑이었던 것 같다.
음식의 맛과 직원들의 친절한 서비스가 이곳이 왜 비싼 레스토랑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지
구글 평점은 왜 그렇게 높았는지를 실감하게 해 주었다.
우리의 담당 서버 아가씨가 얼마나 친절했는지 아직도 그녀의 아름다운 눈이 생각난다.
에메랄드 빛의 눈동자를 가진 아가씨였는데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녀에게 당신이 우리에게 너무 친절하게 응대해 줘서 너무 고마웠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또한 당신의 눈이 너무 아름답다고 말했더니
옆에서 우리 둘째 아이가 귀여운 질투의 눈빛을 나에게 발사했다.
남편이 다시 큰 아이를 데리러 체육관으로 떠나고 나서
우리는 남은 오후 시간을 미술관 내에 위치한 어린이 도서관에서 보냈다.
미술관 직원에게 아이와 함께 있을만한 곳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어린이 도서관을 소개해줬다.
미술관에 도서관이 있는지 몰랐던 나는 '미술관에 도서관이 있다고?' 반신반의하며 찾아갔다.
하지만 생각보다 참 잘 꾸며놓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에 감탄했다.
가장 이색적이었던 것은 멀리서 보면 책장인데 가까이 다가가보면 책장 속에 들어가
다락방 같은 공간에서 아늑하게 책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아이가 그 공간을 참 좋아했다.
누군가가 한번 그 공간에 들어가면 한참이 지나야 나오는데
오래도록 우리의 순서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드디어 들어가 보게 되자
아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한국에 있는 우리 집 거실에도 하나 가져다 놓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넉살 좋은 둘째 아이 덕에
어린이 도서관에서 사귄 친구와 미술관 카페에서 티타임도 갖고
오늘 하루 별 계획 없이도 참 알차게 보낸 우리.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곤히 잠든 아이를 보며
엄마를 믿고 씩씩하게 여기까지 따라와 준 아이가 고맙고 안쓰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