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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Apr 02. 2020

여성의 목소리를 가리는 사회

As a teenager, I realised that my sex life was everybody's business: society was entitled to control it. (Sex and Lies, Slimani 17쪽)
10대 시절부터, 나는 나의 성생활은 곧 다른 모든 사람들의 일도 된다는 걸 깨달았다. 사회는 나의 성을 규율할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얼른 서른이 되고 싶었다. 서른이 되면 내게 자유가 주어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여자라서 안된다는 것들을 이제는 모두 성인이니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인정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서른 살을 기다렸다. 하지만 서른이 되어보니 아직도 내 삶에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십 대와 이십 대 초반에는 크게 불편하지 않았지만 짜증 나는 것들은 있었다. 외박이 안된다거나, 저녁 늦게 돌아다니는 일이 허용되지 않는 등의 일 말이다. 그럴 때마다 자연스럽게 내 뒤를 따라다니는 말은 '여자가 그렇게 다니면 나중에 시집 못가' '몸 버려' 같은 말이었다. 너무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말이라 그게 뭐가 문제인지도 인지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러고 나서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는 나의 연애와 결혼 문제가 이젠 내 선택의 것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내게 걸려온 제동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나를 좌절하게 했다. 내가 그동안 TV에서 보고 책에서 읽어온 삶은 죄다 최신 서양문물이었던지 부모나 친척의 개입은 나의 고려사항에 들어있지 않았었다. 적어도 서른이 되면 나를 존중해 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의 결혼 문화를 마주하니 여성이 취할 수 있는 행동반경은 '예 아니요' 대답 중 수긍뿐이었다.


나와 같은 문화에서 자라지 않은 여성들도 분명 있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내 이야기를 잘 이해하지 못할지 모른다. 그냥 자리를 박차고 나오면 되지 않느냐, 싶은 생각도 들겠지만 나와 같은 보수적인 가족 안에서 자란 딸들은 지금 최선을 다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주변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려서 나의 목소리가 가려지는 것 같다.


레일라 슬리마니(Slimani)의 책 Sex and Lies에 나오는 모로코 여성의 삶 또한 가부장제 아래 사회로부터의 감시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들은 그들의 성적 권리를 박탈당하며, 어릴 적부터 참한 신부 역할을 하기 위해 길러진다. 여성의 삶이 순결한 신부가 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없다는 것 마냥 그들의 부모는 그렇게 믿고 있고, 많은 여성도 이를 부모에게서 배운다.


하지만 이를 깊게 파헤쳐본다면  그 부모들이 그렇게 믿고 행동해온 이유는 남성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여성이 살아가는 사회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의 순결을 그토록 혐오스럽게도 강조한 서양 사회에서의 식민주의적 유산 때문일 것이다. 슬리마니의 책을 통해 이해하는 것은 오직 섹슈얼리티의 문제만이 아니다. 여성에게서 섹슈얼리티를 억압한다는 것은 여성을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으로서 인정하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인식의 문제에서 시작한다. 여기에서 문제는 시작되고 퍼져간다. 우리나라의 여성들이 겪고 있는 여러 어려움이나 억압의 문제들 또한 같은 맥락을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 또는 신성화한다던지 여성을 유아화시키는 모든류는 모습들은 이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여기저기서 나를 대신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나의 목소리는 묻혀간다. 그리고 왜 목소리를 내지 않았느냐고 내게 반문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자꾸만 똑같이 바보 같은 질문이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나는 냉정하고 이성적인 답변을 할 수 없고 궁색한 변명만 내놓을 수밖에 없게 된다.


주변의 모든 소리를 음소거하고, 내 목소리만 한번 오롯이 들어보고 싶다. 내가 정말로 하고 있는 생각은 무엇인지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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