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에 접어들었습니다. 어느덧 매미 소리보다 귀뚜라미 소리가 익숙해지기 시작합니다. 반팔 위로 점퍼를 걸치고 다니는 아이들이 하나, 둘씩 늘어갑니다.
2학기에도 공기대회를 이어갑니다. 20년째 이어지고 있는 공기대회에 이어, 2학기에는 새로운 활동을 추가해 봅니다.
저희 학교는 한 학년당 10 학급이 넘는,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대규모 학교입니다. 이천 명이 넘는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다 보니 사실 운동장이 없는 것과 다름없는 환경이지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교실 바닥에 앉아 재잘거리는 것을 제외하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뛰어놀지도 못한 채 하루 종일 교실에 매여 있어야 합니다. 이런 상황이 안타까워 1학기, 공기대회 후 약식으로 딱지대회를 진행했습니다. 교실에서 할 수 있는 놀이를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활동이지요. 10분간, 5장의 딱지로 가장 많은 딱지를 따면 승리하는 단순한 경기였습니다.
딱지치기는 공기보다 어렵지 않아서인지 아이들이 부담 없이 참여했습니다. 2학기에는 좀 더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딱지치기도 정식경기로 진행해 봅니다. 공기대회와 마찬가지로 딱지대회도 토너먼트로 방식을 변경합니다.
사실 6학년 2학기는 숨 막힐 정도로 바쁘게 굴러갑니다. 해야 할 행사도 많고, 배워야 할 양도 많고, 졸업을 앞두고 챙겨야 할 것도 참 많습니다. 그 와중에 제 욕심껏 공기대회와 딱지대회까지 진행하려다 보니 수업을 아무리 잘게 쪼개도 항상 시간이 부족합니다.
딱지대회를 정식경기로 진행하기 위해 오늘은 수업을 서둘러 진행해 봅니다. 숨 막히게 하루를 내달렸음에도 하교시간까지 딱 45분이 남았습니다. 토너먼트 경기를 하기 위해서는 제비 뽑기로 상대를 정한 후 총 5차전까지 경기를 진행해야 합니다. 머릿속으로 최대한 시간을 요리조리 배분해 봅니다. 도저히 시간이 나올 것 같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이 갈팡질팡 합니다.
-회장, 우리 할 수 있을까?
뒤죽박죽 한 머릿속을 정리하지도 않은 채 습관적으로 회장 아이를 불러봅니다. 아이는 일언반구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물어대는 선생님 질문에 이젠 어떤 동요도 보이지 않습니다. 워낙 자주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답이 정해져 있기에 고민 없이 대답합니다.
-당연하지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다 할 수 있어요.
항상 선생님이 습관적으로 하는 말을 이젠 아이도 입버릇처럼 내뱉습니다. 아이의 말에 힘입어 마지막까지 고민을 거듭합니다. 하염없이 흐르는 시간을 붙잡아 보려는 듯 시계를 바라보며, 반 전체 아이들에게 다시금 물어봅니다.
-얘들아, 우리 45분 동안 토너먼트로 딱지대회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회장 아이처럼 선생님의 고민에 한치의 망설임 없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합니다.
-선생님,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할 수 있어요'에요.
-그냥 한 번 해보면 되지요.
-할 수 있는 만큼 해 봐요.
지난 1학기 내내 제가 아이들에게 입버릇처럼 했던 말입니다. 선생님이 뿌린 자신감의 씨앗이 아이들의 마음에서 싹을 틔우고 있나 봅니다. 아이들의 말에서 자신감을 얻은 선생님은 걱정을 삼키고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그래, 너희 말이 맞네. 시간이 부족하면 어때? 그냥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면 되는 거지.
자라나는 아이들의 마음의 밭은 어른의 밭보다 훨씬 기름지고 유연합니다. 아이들 마음의 밭에서 싹을 틔운 자신감의 씨앗들이 어느새 꽃을 피웠습니다. 제가 준 씨앗보다 더 단단하고 튼튼한 열매를 맺어 주변에 새로운 씨앗을 퍼트리고 있습니다.
마음의 싹을 틔어 튼튼한 열매로 다시 돌려준 아이들이 참 사랑스러워 보이는 하루입니다. 이 마음에 답하기 위해서라도 남은 기간 동안 더 따뜻하고 예쁜 씨앗을 뿌려주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