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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앵 Oct 25. 2022

제주지앵의 음악살롱

음악으로 특별해지는 사적인 공간

<우리집 거실에서 열린 음악 북토크 이야기>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지난 초여름 저녁, 우리 집 거실은 그 어느 때보다 깊숙하고 짙게 울려퍼지는 음악이 가득했다. 집 안은 사람들로 꽉 찼고 모두 맘마미아 영화음악인 ‘Slipping through my fingers’를 숨죽이며 듣고 있었다. 딸의 결혼식을 앞둔 엄마의 애틋한 마음이 담긴 노래여서였는지 노래를 듣다 눈시울을 적시는 사람이 여럿 눈에 띄었다.


 그날은 <엄마의 주례사> 개정판 출간 기념 북토크가 열린 날이었다. 그 책의 저자인 김재용 작가님은 나의 글쓰기 스승님이자 가장 가까운 이웃님이다. 콘셉트는 ‘음악과 함께 하는 북토크’였다. 책과 어울리는 키워드 세 개(결혼, 엄마와 딸, 부부)를 정하고 내가 그에 어울리는 음악을 한 곡씩 선정해서 북토크 중간중간에 설명을 하고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음악을 듣기 직전에 책에서 발췌한 단락을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낭독과 음악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더욱 따뜻해졌다.


 엄마가 딸에게 해 주는 위로와 조언으로 가득 찬 책의 내용처럼 그날의 북토크는 한없이 포근했다. 음악이 흐르는 초여름밤의 정취가 더해져서 더욱 낭만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그건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을 거다. 음악을 들으며 눈물짓던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어떤 분은 아이가 21개월 되었는데, 그날이 아이가 태어난 후 첫 외출이라며 감격스러워했다. 아이를 두고 외출한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니 그날 집에서 재워주면서 맛난 집밥이라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엄마의 자리에서 분투하며 살던 사람들이 시간을 비우기 쉽지 않은 평일 저녁 시간 모여서 울고 웃으며 작은 잔치를 하는 기분으로 시간을 보냈다.



 북토크가 끝난 후 저자 사인회와 다과시간엔 내가 나름 심혈을 기울여 엄선한 30곡의 플레이리스트를 은은하게 틀어놓았다. 그 곡들 역시 반응이 좋았다. 음악이 있으면 그 시공간이 아주 특별해진다. 음식과 와인을 나누면서 집안에서 자유롭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순간 외국의 어느 하우스 파티, 혹은 정겨운 스몰 웨딩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잘 아는 사이이건 처음 만나는 사람이건, 그날 모인 사람들은 마음을 열고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건 내가 오랫동안 꿈꾸어오던 장면이었다.


 20대 때 나의 주무대였던 대학로에 있던 동숭아트센터에서 영화 보는 걸 좋아했었다. 그곳은 작은 영화상영관 몇 개와 예술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게 꾸며진 아지자기한 공간이었다. 그곳에 갈 때마다 막연히 생각했다. 이렇게 규모가 크진 않더라도 언젠가는 나만의 문화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이다. 그 곳에서 좋아하는 음악과 관련된 문화활동을 하는 미래의 나를 그려보기도 했다. 제주지앵이라는 닉네임도 파리의 어느 카페에 모여 저마다의 삶과 철학과 예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처럼, 제주에서 그런 삶을 살고 싶어 만든 이름이다. 물론 음악과 함께 말이다. 


 그날의 북토크는 오랫동안 꿈꾸어온 로망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북토크 이후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아침에 음악을 틀고 청소를 할 때면 나만의 음악살롱을 오픈하는 기분이 든다. 음악이 있고 ‘살롱’이라고 불러주니 평범한 곳이 그 어디에도 없는 아주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음악만 있다면 사람들과 함께이든 혼자이든 상관없다. 여긴 언제나 음악이 흐르는 제주지앵의 음악살롱이다.




-제주지앵의 음악 용어 Tip-

grazioso (그라치오소) : 우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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