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을 때가 많은 요즘, 아침에 일어나 집안의 휑한 기운을 없애는 데엔 음악만 한 것이 없다. 예전부터 들어왔던 클래식 FM을 틀어놓으면 진행자의 멘트도 음악도 대체로 잔잔한 편이라 일상의 배경음악으로 삼기에 적당하다. 종일 틀어놓고 듣다 보면 처음 듣는 곡인데도 귀에 쏙 들어오는 음악이 있다. 그런 음악 중 알고 보니 작곡한 사람이 베토벤이었던 적이 많았고 그러다 보니 점점 베토벤 음악을 많이 듣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그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듯이 자연스레 베토벤에 대한 정보나 책도 찾아보기 시작했다.
반백의 흩날리는 듯한 머리칼에 강렬한 눈빛의 초상화처럼 베토벤은 마냥 강하기만 한 캐릭터는 아니었다. 그를 알면 알수록 강렬한 이미지 속에 숨겨진 여린 감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베토벤은 ‘운명 교향곡’처럼 웅장하고 장엄한 분위기의 곡도 물론 많이 작곡했지만, 한없이 부드러운 음색의 ‘로망스’나 ‘월광소나타’를 들어보면 아련한 느낌마저 든다. 피아노를 배우는 어린이들은 누구나 한 번씩 치게 되는 ‘엘리제를 위하여’도 그렇다. 베토벤은 사랑하던 ‘엘리제’라는 여인을 위하여 이 곡을 작곡했다. 작곡 후에도 베토벤은 곡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치고 또 고치기를 반복한다. 그런 행동이 엘리제를 향한 이루지 못하는 사랑에 대한 고뇌 때문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고 한다.
베토벤이 가계부를 썼다는 것도 의외의 사실이었다. 그는 바흐나 헨델처럼 왕실이나 귀족에게 예속되지 않은 음악가였다. 자유롭게 활동하는 대신 베토벤은 경제적인 문제로 힘들어했다. 가계부를 꼼꼼히 쓰곤 했는데 일례로 하이든과 만나 먹은 커피나 초콜릿 가격을 적어놓을 정도였다. 하지만 셈에는 약해서 그의 가계부엔 여기저기 틀린 계산이 많았다. 베토벤의 곡 중에 ‘잃어버린 동전에 대한 분노’라는 피아노 곡이 있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곡이지만 처음 제목을 듣는 순간 호기심이 일었다. 이 곡은 베토벤이 가계부를 쓰고 나서 동전을 챙기다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그걸 다 찾지 못해 분통을 터뜨리다 쓴 곡이라고 한다. 연주를 들어보면 템포가 아주 빠르고 음역대로 리드미컬하게 자주 바뀌면서 짜증이 일 때의 심리상태가 엿보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베토벤은 뭐랄까, 뭔가 엄청 거친 느낌인데 알고 보면 아주 여린 심성을 지닌, 완벽을 추구하지만 어딘가 구멍이 있는 천생 예술가였던 것 같다. 이렇게 베토벤에 대해 몇 년간 알아가면서 그의 곡들을 반복해서 듣다 보니 나는 어느새 그의 팬이 되어 있었다. 요즘 말로 하면 ‘덕후’. 피아노 연습도 주로 베토벤의 곡으로 하고 그중 ‘비창 소나타’는 10년째 연습 중이다. 아직도 원래 템포보다 많이 느리게 칠 수 있을 뿐이지만 그 곡을 연주하는 순간이 그저 편안하고 좋다. 요즘 아이들이 뉴진스나 라이즈 같은 아이돌에 열광하는 것처럼 내게도 그런 열정이 남아있는 것 같다. 중학교 때 마이마이 카세트로 듀란듀란이나 이문세의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곤 하던 그 마음으로 베토벤이라는 음악가와 그의 음악을 사랑하며 ‘덕질’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춘기 시절,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로 위로받고 때론 버텨왔던 것처럼 지금의 이 ‘덕질’이 일상 속에서 내게 에너지를 주는 비타민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