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가 뭐길래
군입대를 위해 휴학을 하고 집에 내려와 있는 아들과 오랜만에 외식을 하려고 집 근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스테이크와 딱새우 로제 파스타를 앞에 놓고 여유 있는 식사를 했다. 뭐든 잘 먹는 아이의 모습은 언제나 나를 흐뭇하게 한다. 식사를 마치고 통창을 마주하고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스레 책을 보거나 핸드폰도 하며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어스름한 바깥 풍경이 실내 분위기에 아늑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우린 그렇게 한 시간쯤 앉아 있었다. 그냥 옆에 앉아 있다 나왔을 뿐인데 우리 둘이 한결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별일 없이 그저 옆에 있어 주는 것. 그게 우리 사이에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걸 미리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들이 5살이었던 여름의 어느 날이 떠오른다. 그 어린아이를 가만 놔두지 못하고 여기저기 체험을 시켜준다고 데리고 다니곤 하던 시절이었다. 경기도 의왕에 살고 있을 때였는데 하루는 아이를 데리고 버스와 지하철을 몇 번씩 갈아타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모차르트를 테마로 하는 전시회에 가기 위해서였다. 음악관련 전시라는 것이 우선 끌렸지만 거기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컴퓨터를 통해서 아이가 직접 작곡도 해볼 수 있다는 체험 내용이 좋아서였다. 더군다나 모차르트 아닌가! 태교때부터 열심히 들려주던 모차르트였기 때문에 꼭 아이와 함께 가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전시회장에 도착해 둘러보기 시작했을 때, 알차게 시간을 보냈으면 했던 나의 마음과는 달리 아이는 인증용 스탬프에 꽂혀서 전시는 대충 보고 도장만 찍으러 다녔다. 도장깨기를 하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왕성한 체력의 다섯살 아들을 잡으러 다니느라, 관람 동선에 맞춰서 천천히 둘러보면서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리라던 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가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본전 생각이 난 거다. 여기 오려고 어린 둘째를 종일반에 맡기고 아침부터 서둘렀는데... 아이는 마지막 코스인 작곡 체험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억지로 아이를 붙들고 내가 작곡한 거나 다름없는 악보를 출력해서 체험장을 나오면서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둘 다 이미 지쳤는데 비까지 억수같이 내리고 있었다. 급한 대로 근처 국숫집으로 들어갔다. 직장인들이 많은 광화문의 거리의 비좁은 식당엔 손님들이 가득했다.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갑자기 아들이 토를 하기 시작했다. 먹던 그릇에 토사물이 들어가고 테이블이 엉망이 되었다. 당황한 나는 얼른 뒷정리와 계산을 하고 도망치듯 식당 밖으로 나왔다. 나는 더 굵어진 빗줄기 속에서 우산을 받쳐 들고 무섭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거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앙칼진 목소리로 아이를 다그쳤다.
“으이구!! 체험관에서부터 그렇게 엄마 말을 안 듣더니!”
“속이 안 좋으면 미리 얘기를 하지, 그렇게 갑자기 토하면 어떡해?”
컨디션이 안 좋은 것이 아이의 잘못이라도 되는 양 나무랐다. 불편한 속 때문에 이미 하얘진 아이의 얼굴이 더 백지장이 되어 갔지만 개의치 않았다.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어 힘들게 먼 길을 갔는데 엉망이 되어버린 하루가 아까웠고 아이가 미웠다.
카페에서 별 말없이 그저 편안하게 아들과 앉아있으며 생각했다. 어릴 때도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편안하게 받아들였으면 어땠을까. 문화센터나 체험장에 가는 횟수를 좀 줄이고 집에서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놀아주었다면 어땠을까. 그때 모차르트 전시회 대신 그저 집에서 모차르트 CD든 뽀로로 동요든 틀어놓고 뒹굴거리며 아이가 좋아하는 블록놀이를 같이 하면서 놀아도 되었을 것을...그냥 놔둬도 잘 클 수 있는 아이에 대한 알 수 없는 불안은 나 자신에 대한 불안은 아니었을까.
군 입대를 앞둔 아들을 보면 마음 한 구석이 아릿해진다. ‘키만 컸지 아직 어린 구석이 있는데 힘들어하면 어떡하지?’, ‘적응 못해서 매일 전화오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지난 22년 동안 함께 해 왔던 시간들을 생각한다. 새가슴 엄마의 걱정보다 아이는 잘 자라주었다. 예민하고 까칠했던 아이가 어느새 서글서글한 웃음을 웃는 청년이 되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잘 지낼 거라 믿는다. 그 아이와 지냈던 시간들이 이제 나를 안심시키며 다독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