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차에 올라 시동을 켠다. 코타로 오시오의 ‘황혼’이 흘러나온다. 좋아하는 음악이 갑자기 라디오에서 나오면 계 탄 느낌이 든다. 왜 찾아 듣는 것보다 우연히 듣게 되는 음악이 더 감칠맛이 날까? 음악이 있는 차창 풍경은 생동감이 넘친다.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집으로 돌아와 바로 피아노 뚜껑을 열고 ‘황혼’을 연주해 본다. 오랜만의 피아노 연주. 2년 전, 이 곡에 꽂혀서 주야장천 이 음악만 듣다가 어느 순간 악보를 구해서 또 몇 달을 연습했던 곡이다. 저녁때 치는 피아노는 더 느낌이 살아있다. 제목까지 황혼이니 분위기에도 딱이다. 하루의 피로가 싸악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 이 맛에 피아노를 치는데 요즘 내가 너무 피아노를 홀대했다. 하루 10분이라도 피아노를 찾아야겠다.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취미부자였다. 손바느질, 데코파쥬, 베이킹 등 이것저것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영원한 숙제 같은 영어공부도 방법을 달리하며 지속해 왔다. 어릴 때 배웠던 피아노도 결혼 후에 배우다 말다를 계속했다. 지속하는 게 힘들어 결연하게 피아노와의 이별을 고했다가도 한참 뒤에 슬그머니 다시 피아노에 앉기를 반복해 왔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글을 쓰는데 에너지를 쏟기 시작하자 다른 취미는 계속할 여유가 없었다. 물리적인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건 피아노이다. 그러니 피아노는 내게 취미 이상의 그 무엇인 것이다.
내가 독서에 맛들리기 시작한 시기와 피아노에 한창 빠져있던 시기는 기막히게 일치한다. 초6에서 중2까지의 3년간이다. 내향인인 사춘기 소녀에게 그 두 가지가 없었다면 어떻게 그 막막한 시기를 보냈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평생 읽는 사람으로만 살다가 어느 순간 쓰는 사람이 되고 나는 아주 많이 달라졌다. 그건 겉으로 잘 보이진 않지만 나는 안다. 글쓰기가 나를 변화시켰고 그로 인해 주변사람들과 관계도 좋아졌다는 것을. 나를 힘들게 하던 사람들을 변화시키려고 안간힘을 쓸 땐 그렇게 힘들었는데 내가 변하니 그들도 서서히 변화되어 갔다.
퇴근 후 피곤한 몸상태였지만 피아노 연주로 영혼의 휴식을 맛보면서 생각했다.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이 글쓰기의 과정과 많이 비슷하다고. 아니 거의 일치한다고 말이다. 읽기만 할 때보다 읽는 것에 쓰기까지 더해지면 삶이 더 다채로워지고 읽는 글과 쓰는 글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몇 배로 많아진다. 그저 평범한 일상의 한 순간에 음악이 추가되면 영화의 한 장면으로 그 격이 달라진다. 아침을 시작하거나 일을 마치고 차에 올랐을 때 배경음악이 있으면 마음이 훨씬 여유롭고 유연해진다. 많이 읽으면 쓰고 싶듯이 음악을 많이 들으면 직접 음악을 만들거나 연주하고 싶어 진다. 음악을 들을 때도 물론 그렇지만 연주를 하다 보면 그 음악을 만든 작곡가와 시공간을 초월한 만남을 갖는 느낌을 받는다. 책을 읽으며 작가와 만나는 듯한 감정을 갖듯이.
퇴근길 우연히 마주한 한 곡의 음악이 연주를 하게 하고 글을 쓰게 한다. 음악이 없었다면 나는 훨씬 건조하고 더 심한 우울감에 젖어 살았을 게 분명하다. 나를 일으키는 음악의 힘, 그 부드러운 음악의 파워에 감사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