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새로 시작하는 걸 자체적으로 차단하면서 가지치기를 하는 요즘... 새로운 일을 벌였다. 아니, 벌였다기보다는 어찌어찌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고 할까. 단아하면서도 단단한, 애정하는 동생 J와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다 이어진 일이었다. J와는 음악 취향이 비슷해서 같이 LP도 듣고 음악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J가 내게 클래식을 알려달라고 했다. 자신의 귀를 뚫어달라고. 설명은 많이 안 해줘도 괜찮으니 그저 꾸준히 들을 수 있게 좋은 음악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나는 '귀를 뚫어달라'는 표현이 참 좋았다. 외국어를 잘하려면 많이 들어야 하고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하듯이 클래식도 많이 듣는 것만이 잘 알게 되는 비결인데 J는 그걸 정확히 간파하고 내게 요청을 한 것이다. 우린 여기에 '음악 구독 서비스'라는 말을 붙여보았다.
구독 : [1] 정해진 기간 동안 책이나 신문, 잡지 따위를 구입하여 읽음 [2] 신청을 통해 온라인에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받아 보거나 이용함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얼마 전, '구독'이라는 사전적인 뜻이 [1] 번에 [2] 번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처음 얼마간 나는 매일 아침 J를 위한 곡 3곡을 선정해서 유튜브 검색을 하고 그걸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첫 배달 음악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이었다. 12개의 곡 중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1번과 5번. 그다음엔 바로크 시대 음악가인 바흐와 헨델의 음악을 한 곡씩 골라서 보냈다. 내가 보내주는 목록을 J는 아침마다 차를 내리고 마시면서 듣는다고 한다. 이동할 때 차에서 듣기도 하고. 평일에는 매일 음악을 보내주고, 주말에는 아주 간략하게 음악 정보를 보내준다. 그 정보도 편지 형식으로 쓴다. J를 앞에 앉혀놓고 차분차분 설명해 주듯이. 그 뒤로는 진짜 나의 음악 편지가 시작된다. 소개하는 음악에 얽힌 나의 이야기를 수다 떨듯 쓴다. 때론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음악 뒷 이야기도 하나씩 들려줄 예정이다.
그러다 30곡쯤 음악을 보냈을 때, 하루에 한 곡만 보내는 걸로 '규정'을 바꿨다. 많은 곡보다는 하루 한 곡을 찬찬히 들어보고 시간 날 때마다 귀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게 더 낫다는 데 우리 둘 다 동의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매일 음악을 배달하고 한 달에 한 번 만나서 음악 이야기를 나눈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육지로 음악 여행을 떠날 계획도 세웠는데 꼭 실행하고 싶다. (제일 먼저 가고 싶은 곳은 프란츠라는 음악전문출판사에서 운영하는 아파트먼트 음악감상회이다.)
이 소소한 음악 구독 서비스는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되었다. 오늘 아침 보낸 음악은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연주한 비토리오 몬티의 '차르다시'였다. 거기에 아주 짧은 문구를 덧붙였다. '애달프다가 격정적인 차르다시~' 하루 한 곡씩 보내줄 음악을 생각해 내는 건 나로서는 참 짜릿한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기분에 따라 선정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꼭 소개해 주고 싶은 곡을 잊지 않도록 한 두곡씩 미리 찾아놓았다가 보내주기도 한다. 선곡은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것이지만, 되도록 시대별, 음악가별로 하려고 신경 쓴다.
얼마 전, J가 내게 말했다.
"언니, 솔직히 아직은 클래식이 제게는 어려워요. 제가 워낙 바쁘다 보니 언니가 보내주시는 음악을 못 듣는 날도 있고요. 근데 이렇게 클래식 음악에 조금씩 젖어들다 보면 6개월이든 1년이든 시간이 지났을 때 처음보다 훨씬 익숙해져 있을 것 같아요." 그녀는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마음대로' 해 보라고도 말해 주었다. 자신에게 '음악 실험'을 해 보라고... 자신에게 이것저것 실험해 보고 나만의 음악콘텐츠를 만들어가라고.
아직은 우리가 만들어낸 '음악 구독'이라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 나갈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받아주는 이가 있으니 기쁠 뿐이다. 그리고 매일 아침 루틴처럼 하는 일이 이젠 리추얼이 되어가고 있고 작다면 작은 이 일이 내 일상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