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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고래 Apr 08. 2021

시와 밥과 잔나비

당신의 우울을 견디는 것들


 당신의 우울을 견디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는가. 우울을 꼭 견뎌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아픈 채 끌어안고 살아갈 수도 있다. 내가 감히 우울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정말 마음 깊이 허무와 고통에 대해 아파하는 분들 앞에서는 조심스럽다. 첫 번째 산문집을 쓸 때 처음 서두에 이렇게 썼다.


“설거지를 하다가 먼지처럼 사라지고픈 그대에게.”

_⟪서른아홉 생의 맛⟫ 중에서, 이유경, 꽃고래책다방


 빨래를 하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그냥 이대로 녹아 없어졌으면. 사라졌으면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시간 때문인지 그냥 빨리 끝내버리자-라고 털어버리니 한때 고민했던 많은 부분들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때도 있다. 우울은 그렇게 계절을 따라 잠시 들렀다 가고, 세월을 따라 머물 갔다. 가벼운 감기처럼 그렇게 오다 가면 다행이지 싶다.


 어젯밤 친구에게 다급한 카톡이 왔다.  

“잔나비 콘서트 한다. 빨리 텔레비전 틀어봐.”

그 톡을 확인했을 때는 이미 새벽. 집집마다의 콘서트의 열기와 환호는 아쉽게도 내게 전달되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다음 날 아침 너튜브에서 잔나비 콘서트 영상을 찾아 1시간 내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그래서 후련하게 홀연히 아쉬운 마음을 떠나보냈다.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하루는 더 어른이 될 테니

무덤덤한 그 눈빛을 기억해

어릴 적 본 그들의 눈을

우린 조금씩 닮아야 할 거야”

_⟪꿈과 책과 힘과 벽⟫ 중에서. 잔나비


 그리고 혼밥을 먹는다. 뜨거운 고구마 위에 버터 한 조각을 올린다. 커피를 내리고, 아이들이 아침에 먹고 남긴 빵 한 조각도 집는다. 혼밥이 즐겁다. 물론 식구 모두와 식탁에 함께 둘러앉아 먹고 나누는 일도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하지만 오늘의 이 시간이 없으면 그 시간도 없다. 홀로 존재하지 않으면 함께 누림도 없다. 그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불변의 워라벨 국룰 아닌가. 하지만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고독하게 존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끝없이 수고해야 한다는 저주에서 우리는 벗어날 수 없다는 것. 그 저주가 달콤하게 노동과 생산과 열매의 기쁨으로 진통제가 된다는 것도.


그렇기 때문에 늘 우리는, 아니 나는 음악과 밥을 취한다. 잔나비, 스키니브라운, 첸, 규현, chet baker, fyfe, james smith, coldplay, the vamps, 이문세, 공일오비, 김광석의 노래를 질릴 때까지 듣는다. 모처럼 아이들이 학교에 모두 등교하는 날이면 점심에 고구마, 샐러드, 라면, 샌드위치 따위를 홀로 만들어 먹는다. 마지막으로 시를 읽는다. 소설도 읽고 에세이나 잡지도 읽는다. 때로는 가볍고, 가끔은 따분한 활자들을 고루 섭취한다. 산뜻한 어휘를 발견하고, 재밌는 문장에 감탄하고,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한 적 없는 타인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1981년 전 오랜 그들의 일상을 엿본다. 쓰기는. 쓰기는, 이제 쓰기는 내게 즐거움이자 고통 그 자체라 특별히 이 글에 언급하지 않았다. 그냥 쓰기는 내가 되었다.


홀로 조용히 음식을 저작咀嚼하는 일.
음악에 마음을 놓이는 일, 그리고 읽어 들이는 일.
이 세 가지는 나의 우울을 견디고 생을 사랑하도록 돕는 것들에 해당된다.
당신은 어떠한가.

“쓰는 것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랑에 이르지 못하는 모든 사랑을 침묵으로 결합하기 위해서다.”

_크리스티앙 보뱅, <낮은 땅의 사람들> 중에서.



수고로움 레시피

대충 막 하지만 이상하게 맛있는 이주부 밥상



(※참고: 기본 베이스 양념이 다 맛있어서 그런지 그럭저럭 맛이 납니다. 집된장과 국간장은 한살림 선생님들 따라가서 일손 거둔 거밖에 없지만 직접 만든 것들이라 훌륭합니다. 대부분 유기농 재료로 하려고 노력합니다. 아빠의 건강 때문에 현미밥이 대부분입니다. 정확한 계량은 하지 않는 편이어서 맛이 뒤죽박죽입니다. 빠른 시간에 후다닥 차리는 게 특징입니다. 따라 하지 마세요. ><)


<오늘은 홀로 즐겨먹는 점심 간식? 겸 식사>

곤드레치아바타, 크림치즈, 살구쨈 by이주부


내린 커피, 구운 고구마, 버터, 토마토와 블루베리 by 이주부
샐러드에는 통후추를 꼭 갈아서. by이주부
구운빵위에 피클다짐과 참치, 치즈를 올려 묵직하게 먹어본다. by 이주부
가끔 고구마와 밀크커피의 꿀조합! by 이주부
견과류율무차와 쑥찐빵. 모두 한살림제품. by이주부
찐감자, 찐옥수수, 김말이 by 이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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