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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기 Oct 09. 2022

가을날의 소중한 순간들


가을은 어떻게 사진에 담아낼까?

지나간 가을에 만났던 순간들을 하나씩 꺼내어 들여다보면 모두가 다 소중한 순간들이었음을 새롭게 느끼게 된다. 


구절초와 나비


구절초 핀 꽃밭에 날아든 배추흰나비 한 마리.

꽃이 있어 나비가 있고

나비가 있어 또 꽃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다. 


꿀을 먹는 나비의 꿀관이 

구절초 얼굴을 간질이면

꽃송이는 간지러워 

깔깔 거리며 웃을 것만 같다. 

그 유쾌한 웃음소리가 향기가 되어

가을을 향기롭게 한다.


가을이면 구절초의 청순한 아름다움만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구절초에 날아든 흰나비의

소박한 아름다움이 더해질 때

더욱 빛이 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더불어 살아야 더 아름다운 세상임을 깨닫게 된다. 


구절초와 나비가 만드는 

가을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

그 순간을 만날 수 있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쑥부쟁이 꽃봉오리


무슨 꽃이 피어날까?

꽃을 머금고 있는 꽃 봉오리 하나.


소중한 생명을 감싸 안고

이 가을을 막 피어내기 시작하는 꽃.

마치 작은 우주 하나가 탄생하는 느낌이 든다.


현재는 

과거의 어느 순간에 

이런 꽃봉오리였을 터.

그리고 현재는 

미래에 피어날 또 다른 꽃 봉오리 하나. 


나에게도 저런 순간이 있었을 텐데…

지나간 내 삶 속의 

꽃봉오리들을 떠 올려 본다. 

그리고

아직도 나는 

꽃 봉오리를 맺고 살고 있는지

생각에 잠긴다.



  배풍등 열매


끝물이 되어 가는 구절초의 마지막 모습을 사진에 담다

비탈 위 붉게 물들고 있는 담쟁이덩굴에 이끌려

비탈을 올라가 보았다.


멀리서 볼 때와 달리 가까이 다가가 보니

멋진 모습을 담아내기가 어려웠다.

실망을 하고 돌아 내려오는 길에

요 작은 배풍등 열매를 만났다.


좀 빈약한 모습이지만

막 붉게 변해가는 모습이

계절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 같다.


가을 햇살에 붉은 조명으로 변한 담쟁이덩굴의 넓은 잎과

작은 등을 단 배풍등 줄기가 만들어낸 유혹이

나를 자꾸 숲 속에 머무르게 했다.


살면서도 이처럼

때로는 원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일이 진행되거나

엉뚱한 결과를 얻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것이 삶이리라.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 믿는다.


이날 가을 숲에서는

바로 그런 소중한 순간을 만났다.



코스모스

코스모스 속에는

가을바람이 있다.


흔들리는 꽃을 보고 있으면

내 키보다 컸던

흰새, 분홍색 그리고 붉은색 코스모스들이

어린 시절로

나를 데려간다.


요즈음 들판엔

노랗게 피어나는 황화코스모스도 가득하다.


가득 피어난 코스모스 들판을 보면

얼핏 보기엔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워 보인다.


하지만 가을바람이 불면

코스모스 하나하나는

저마다의 외로움으로 흔들린다.


우리 모두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내면의 모습이 다를 수 있듯이.


바람 부는 가을날에는

가득 피어난 코스모스(cosmos) 꽃 속에서도

외로움을 본다.


하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꽃 속에는

중심에 흔들리지 않는 우주(cosmos)가 있다.


흔들리는 꽃들과 함께 

꽃들을 지탱해주시는

중심의 하나님도 

사진에 담고 싶었다. 



버들마편초와 나비


가을을 무엇으로 사는가?


이해인 시인은

가을바람이 있어 산다고 한다.


이 가을

어쩌면 나는

변함없이 피어나는 가을꽃들과

꽃이 핀 자리마다 찾아드는

벌과 나비들이 있어 사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세상이 혼란스러워도

꽃들은 피어나고,

흰나비는

꽃 사이를 우아하고 부드럽게 유영하여

마음에 드는 꽃 위에 사색하듯 앉는다.

분명 가을을 아름답게 살 줄 아는 것 같아 부럽다.


나는 이 가을

무엇을 좇으며 살고 있는지

이 사진을 보며 생각에 잠겨본다.




가을 바람/ 이 해 인



숲과 바다를 흔들다가

이제는 내 안에 들어와

나를 깨우는 바람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를 키워놓고

햇빛과 손잡은

눈부신 바람이 있어

가을을 사네


바람이 싣고 오는

쓸쓸함으로

나를 길들이면

가까운 이들과의

눈물겨운 이별도

견뎌낼 수 있으리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사랑과 기도의

아름다운 말

향기로운 모든 말

깊이 접어두고

침묵으로 침묵으로

나를 내려가게 하는

가을 바람이여


하늘 길에 떠가는

한 조각 구름처럼

아무 매인 곳 없이

내가 님을 뵈옵도록

끝까지

나를 밀어내는

바람이 있어


나는

홀로 가도

외롭지 않네




*이 글은 대덕교회의 소식지 <대덕행전> 2022년 가을호에 실린 제 포토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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