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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May 06. 2022

자연의 품에서

난생처럼으로 심은 작물

 불꽃처럼 타오르는 서녘 하늘빛이 사방을 붉게 물들인다. 

시원하게 불어 주는 저녁 바람이 한낮의 열기를 식힌다. 땅거미가 내리고  마당 앞 놓인 평상에는 새들이 흥겹게 노래한다. 멍한 듯 공간을 응시하며 붉게 타올라 재만 남아 회색빛으로 서서히 어두워지는 하늘이 고요 속에 잠이 든다. 


 보이는 것은 초록으로 물든 땅이요 푸르른 하늘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생명이 싹트고 경계가 없는 대지를 가로지르는 새들의 자유로운 비행이 땅과 하늘로 흩날리며 초록의 계절을 노래한다.

 싱그러운 초록빛에 물든 달콤한 공기가 온몸을 돌아  내 몸과 마음을 초록의 일부로 만들어 버린다.

숨 막히는 잿빛 콘크리트 숲으로 둘러싸인 도시를 벗어나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삶에 감사를 느낀다.  

도시의 이방인이 아닌 자유로운 자아를 느끼며 살아간다. 

도시를 떠나 초록의 향기가 가득한 시골 생활에 설렘이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쫓아낸다.

가지 않은 길을 걸어 가보는 개척자의 마음까지는 아니더라도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나를 두렵게 만들지만 자연이 나를 안아 주고 그 품 속에서 차갑게 식어가던 나의 감성이 살아난다. 

온전한 나의 자유가 완성되고 무한한 자연 속에 삶의 긍정을 얻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을 자연은 포근하게 감싸주어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아 주었다. 

걸어 보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일은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가는 길 앞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때론 욕심에서 비롯된다. 욕심을 버리고 남의 시선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그들은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타인을 의식하는 순간 나는 이방인이 되고 만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온전한 내 자아를 찾아 나갈 때 겉도는 이방인의 삶에서 온전한 나의 삶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삶이고 그 삶은 내가 주인이 되어 이끌어 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너무 잘하려고 하는 욕심이  일을 그르치게 만들기도 한다. 

욕심과 두려움은 새로운 길을 걸어갈 때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 장애물이다. 

빛이 떠난 검은 하늘에 별이 하나 둘 반짝인다.  밤은 깊어 가고 내일의 새로운 일에 대한 설렘을 안고 또 다른 신세계를 꿈꾼다. 


동녘 하늘에 아침해가 찬란하게 비추어 든다. 생명의 빛은 동녘에서 떠오른다. 

가볍게 아침을 먹고 모종을 심기 위해 텃밭으로 나갔다. 

해는 잠들었던 생명을 깨운다. 전날 해가 질 녘에 수줍게 감추었던 민들레 꽃이 햇살을 받으며 환한 모습으로 피어난다. 

풀잎 끝에 맺혀있는 이슬 방울이 아롱거리며 나의 아침 걸음에 친구가 되어 준다. 

풀잎 사이에 봄꽃들이 보랏빛 노란빛 흰빛으로 가득하고 꽃들 사이에 작고 귀여운 벌들이 부지런히 꽃 사이를 누비고 다닌다. 

벌이 귀엽다고 느끼지 않았다. 혹시나 쏘일까 두려운 존재였다. 벌에 한 번 쏘인 일이 있었다. 

어릴 적 경험은 오랜 시간 동안 잠재된 기억 속에 숨어 있다. 처음 집 앞에 핀 야생초 사이를 누비던  벌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런데 그들은 나를 전혀 의식하고 있지 않았다. 내 코 끝 사이로 붕붕거리며 날고 있고 그들에게 나는 그저 서 있는 나무토막에 불과했다. 

조용히 걸었다. 나의 걸음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저 자기 할 일을 할 뿐이다. 

그들의 일을 방해할까 봐 걸음걸이도 조심스럽다. 내가 두려워하고 경계하면  상대도 나를 두려워하고 경계한다. 

내가 상대에게 마음을 내놓으면 상대도 나에게 마음을 준다. 

벌이 두렵고 무섭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저 함께 사는 친구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붕붕거리며 날아다는  벌 사이를 걸어도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너무 귀여워 뭐라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나도 벌도 자연 속에 녹아 있는 피조물일 뿐이다.  

덜덜거리는 경운기 소리, 윙윙거리는 트랙터 소리가 적막을 깨고 여기저기서 들린다. 

늦은 봄에서 초여름 사이에 들리는 시골의 유일한 기계음 소리다. 그 소리도 기껏 일주일 남짓 들리고 나면 고요한 적막이 가을까지 덮여 있다. 

멀리서 엔진 소리가 들리더니 붕붕붕 기계소리가 점점 집 가까이로 다가온다.

다들 부지런하다. 

나도 장갑을 끼고 텃밭으로 향한다. 

처음으로 내가 내 입으로 들어가던 고추, 오이, 가지, 콩을 심는 날이다. 생전 태어나서 먹을 줄 알았지 심어 본 적이 없는 일을 시작한다. 

묘한 기분이 든다. 모종을 바라보고 있다. 이 작은 잡풀처럼 생긴 게 어떻게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어린 시절 콩을 젖은 솜에 올려놓고 싹이 트는 모습을 본 게 전부였다. 수업시간에 봤던 콩이 싹트는 모습이 생각난다. 

어제는 하루 종일 두둑을 만들고 검은 비닐을 씌워 멀칭을 해 놓았다. 

호미가 팽팽하게 당겨진 검은 비닐을 향해 내리 꽂힌다. 비닐이 쩍 벌어지고 누런 흙이 건강하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작고 가녀린 모종을 손에 조심스럽게 쥐고 검은 비닐 아래 누런 흙을 호미로 파 내고 조심스럽게 심는다. 쪼그리고 앉아 거위걸음 긴 두둑 끝까지 간다. 허벅지가 아프고 종아리가 쑤신다. 

한 줄 심은 모습을 구부린 무릎을 피고 엉거주춤 일어나 바라본다. 

검은 비닐에 초록 모종의 작은 떡잎이 약한 바람에 살짝 흔들린다. 

왜 그런지 검은 비닐 멀칭이 영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자연 속에 인공이 가미된 모습이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잡풀에 모종이 죽는다는 이웃의 충고에 어쩔 수 없이 따라 했고 그 곱디 고운 땅을 비닐로 덮었다. 

올 해는 틀렸고 내년에는 모험을 해 보리라. 비닐 멀칭 하지 않고 해 보리라 마음먹었다. 

물론 나의 부지런함이 따라 주어야 한다. 여름 동안의 잡풀과 싸워야 하니까!

동네 할머니나 아주머니 하는 모습을 볼 때는 그리 힘들지도, 별 것 아닐까 했는데 막상 내가 손을 대니 속도도 느리고 힘도 든다. 특히 쪼그리고 앉아하는 일이 익숙지 않다. 

몸으로 체험하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은 차이가 있다. 

다리도 아프고, 이제 겨우 한 골을 했다. 아직 아홉 개는 더 해야 하는데......

다시 이를 악물고 모종을 심었다. 

해는 중천을 향하고 있고 등에서 흘러내린 땀은 옷을 적셨다. 

마음공부한다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잊고 기계처럼 검은 비닐을 호미로 찍고 다시 모종을 심었다.

하나 끝나고 바라보는 초록 모종이 채워지는 모습에 나 스스로 대견함을 느끼며 한 줄 한 줄 이어 나갔다. 

배 속은 밥을 달라는 꼬르륵 소리의 간격을 점점 좁히고 있다. 

땀은 이마를 타고 땅 위로 떨어진다. 이를 악물었다. 한낮의 해가 너무 강렬하여 나는 낮 시간은 일을 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더위가 심해 낮 시간에는 아무도 일하지 않는다) 

뜨거운 해를 보고 일하기 싫기도 하고 땀을 한 번 흘리고 나서 늦은 오후에 다시 땀을 흘리기 싫어서 군대에서 훈련받았던 힘든 기억을 끄집어내어 부지런히 한 줄 한 줄 해 나갔다. 

드디어 마지막 줄에 앉았다. 

이제 맛있는 점심과 시원한 막걸리를 한 사발 마실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한 골을 심는데 온 힘을 다했다. 

드디어 끝!

허리며 팔다리가 욱신거린다. 

몸을 움직여 일한 적이 없다. 도시에 익숙한 몸이 시골의 순수한 땀에 적응이 아직은 되지 않는다.

육체는 쑤시고 아프지만 마음속에 아픔은 씻은 듯 사라지고 간들거리는 여리고 작은 싱그러운 초록 잎이 나를 보고 방긋 웃는다. 

야! 나도 했다는 그 희열이 조금 전까지 나를 힘들게 한 육체의 고통을 잊게 한다. 

봄바람에 살랑살랑 춤추는 모종이 참 예쁘다.

갈증을 느꼈다.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이 지나 분침이 두시를 향해 달리고 있다. 

뭔가 먹어야 하는데 모종 심는데 온 힘을 다 쏟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일어나 밥을 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일단 냉장고에 있는 막걸리 한 병을 꺼내 들었다. 맥주잔에 한 잔 가득 따른다. 막걸리가 컵에 부어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혀가 입술을 적신다. 

정말 목마르다. 

손에 쥐고 컵을 입술에 가져간다. 

그리고 단 숨에 벌컥벌컥 마신다. 목을 타고 내려가 비어 있는 위장에 도착했다. 몸은 약한 전기 충격을 받은 듯 찌릿하고 시원함이 느껴진다. 살 것 같다. 

결국 국민 음식 라면을 끓였다. 파를 썰고 달걀을 두 개 풀고 거기에 두부를 몇 조각 넣었다. 

김치의 신맛이 라면 맛을 흐리게 하여 김치는 따로 종지에 놓고 아직 그늘이 남아 있는 평상으로 달려갔다. 

잘 익은 라면 한 젓가락 

'후루룩!'

그리고 연이어 다시 막걸리 한 잔!

어설프지만 심어 놓은 모종을 바라보며 초여름 산에 내려오는 산들바람이 초보 농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를 해내었다는 성취감이 이렇게 컸다. 

산다, 살아있다는 느낌이다. 

자연이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도시에서 느끼지 못했던 여유, 여유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큰 마음의 평온함이 취해 온다. 

물론 막걸리 탓도 있지만, 

흥이 솟는다. 웃음이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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