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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Oct 27. 2022

자연의 품에서

시골에 사는 즐거움

 4월이 되면 들녘에는 들꽃이 형형색색 자태를 뽐내며 나 보란 듯 예쁘게, 아름답게 피어난다. 

들꽃도 이름이 있었다. 애기 똥풀이라는 이름 참 재미 있다. 작고 예쁜 노란 꽃이 마치 애기가 기저귀에 예쁘게 싸 놓은 응가! 하하하하

작고 하얀 방울 모양의 은방울 꽃이 요정의 자태 같아 보인다.

꽃 가게에서 파는 꽃은 계절에 따라 작고 예쁘게 피어나는 들꽃에 비하면 화려하다. 크기도 크다.

화려함과 색의 현란함은 잠시 스쳐가는 바람처럼 눈에서 흘러 간다. 여운이 남지 않는다. 

초록 빛 풀과 어울리는 소박한 빛깔의 들꽃은 은은한 향과 색은 잔잔한 호수의 물결이 일렁이듯 마음속에 긴 여울을 남긴다. 

참 예쁘다!

흰색 보라색 노란색 주황색의 들꽃들이 봄을 노래하는 소리에 덩달아 바빠진 벌들이 집 마당에 나타난다. 

부지런함의 대명사인 벌들이 집 마당에서 즐겁게 일을 한다. 

윙윙 거리는 벌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산을 오르다 보면 벌들이 보이고 혹시 그 벌에 쏘일까 노심초사하며 등산을 할 때도 있었는데 집 앞마당에 있는 벌은 붕붕거려도 무서움이나 거리낌이 없다는 게 나 스스로도 신기할 따름이다. 오히려 내 집 마당에 와서 놀고 있으니 반갑기만 하고 꽃이 시들어 벌들이 오지 않으니 허전한 마음마저 든다. 

흰민들레, 노란 민들레가 초록의 풀들과 어울려 봄을 내어 놓는다. 꽃이 지고 나면 그 홀씨가 떠 다닌다. 

봄의 꿈을 싣고 멀리 멀리 바람결에 훨훨 날아간다.  

꽃도 아름답지만 꽃이 진 홀씨가 산들바람에 흔들리며 날아가는 풍경을 보다 보면 나도 어디론가 날아갈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내 마음을 홀씨에 실어 그리운 님에게 소식 전해보고 싶다. 

흰나비 노랑나비 호랑나비가 벌들 사이로 날아다니고 가끔 곁에 다가와 수줍게 지나간다. 

혹 나비가 날아와 허벅지나 손등에라도 앉으면 나는 바로 얼음이 된다. 그들이 잠시 쉬어가는 길을 방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나비의 숨결 속으로 빨려 들어가 그들의 속삭임을 듣는다.

저 높고 푸른 창공 사이로 매 한 마리가 빙빙 돌고 있다. 먹잇감을 찾고 있다. 작은 새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이리 저러 매의 눈을 피해 달아난다.

가끔 새가 떨어 트린 먹이가 집 마당에 있다. 작은 설치류나 혹은 참새 같은 작은 새가 죽어 있다. 집 주위에 쥐가 있나 생각했더니 매가 하늘 위를 나르고 있다. 매가 쥐고 있다가 떨어트린 먹잇감이다. 

죽은 작은 동물이 측은 하기도 하지만 야생의 세계에서 먹이사슬이라 생각한다. 집게를 집어 살짝 한 편으로 옮겨 놓는다. 자리를 피하고 한 참 뒤에 와 보면 매도 보이지 않고 죽는 먹잇감도 보이지 않는다. 그사이에 낚아채 간 것이다. 자연 속에 동물의 삶이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어느 날인가 거실에 앉아 창가를 내다보았다. 

작은 물체가 땅으로 떨어졌다. 뭐 별거 아니다 싶은 순간 새 한 마리가 전쟁영화에서 급강하 폭격기가 내리 꽂히는 장면이 연상되듯 날아와 물체를 획 낚아 채 가지를 않는가!

놀라운 광경이었다. 

새는 다시 날아 올라 다시 한번 그 작은 물체를 떨어 뜨린다. 얼른 문을 열고 나가 보니 작은 쥐가 죽었는지 아니며 기절을 했는지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이 서성이고 있으니 새는 하늘 높이 맴돌기만 한다.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니 다시 내려 꽂히듯 날아와 그 날카로운 발로 낚아 챈다. 그리고 유유히 날갯짓하며 멀리 사라진다. 

죽은 쥐도 작고 낚아 체 날아가는 새도 그리 크지 않은 새였다. 

죽은 쥐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아직 어린 쥐처럼 보였다. 한편으로 새를 생각하면 살아남기 위해 먹어야 하고 배를 채우기 위해 뭐든 잡아먹을 수밖에 없다. 사냥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대상인 쥐가 오늘 죽었다. 

슬픈 생각도 들고 무서운 생각도 든다. 

죽음은 또 다른 삶의 모습이다. 살기 위해 죽음부터 달아나야 했고 살기 위해 죽여야 했다. 

자연은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아름다움 속에 무서운 비극도 함께 하고 있다. 

세상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 무수한 삶이 있는 곳에 비극도 함께 있다. 희생도 있다. 그 순환 속에 인간은 위대하지만 유한한 존재다. 삶의 경쟁 속에 인간의 삶도 쥐와 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를 밟고 일어선다. 그 밟힌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고통 속에 신음한다. 

고통받는 그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었을 것이다. 

문명사회라고 말하지만 약육강식의 원시적 세계 속에 있을지 모른다. 

억압과 저항 속에 역사는 진보한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그런 삶이 계속 되풀이될 수밖에 없음에 마음이 슬퍼진다.  


풀이 자라니 여름에 뱀이 풀 숲에 있을까 염려하는 아내의 성화에 예초기를 울러 매고 풀을 깎는다. 

'쓱쓱 싹싹'

풀들이 가차 없이 잘려 나간다. 땅에 있던 벌레들이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른다. 그늘이 사라지고 가려주던 풀들이 사라지고 없으니 그 속에서 편안히 지내던 벌레들에게 갑자기 날벼락이 떨어진다. 이리저리 흩어지는 광경을 재미있게 보고 있는 내가 영 마땅치 않다. 잠시 뒤 마당에 산새들이 몰려올 것이다. 

몸을 숨길 곳이 없는 벌레들은 새들의 공격을 받는다. 풀을 안 깎을 수도 또 깎아도 이래저래 마음이 아프다. 

풀이 잘리면서 풀내음이 코 끝을 건드린다. 풀 향기에 어느덧 취한다. 잠시 예초기를 끄고 풀내음에 한 껏 취해본다. 신선하다. 

굉음의 모터 소리가 숨을 죽이고 새들의 지저귀는 노랫소리가 나면 귀가 멍할 정도의 고요한 적막감이 내려와 앉는다. 세상 홀로 된 기분이 들고 다리에 묘한 긴장감이 휘감아 돈다. 눈을 감고 그대로 있어 보면 신비의 나라로 들어온 착각에 빠진다. 

아직 물기 서린 잘린 풀에서 나는 향기를 고요한 침묵 속에 취해 본다. 기분 좋은 취기가 돈다. 풀 냄새를 맡고 왔을까! 

뒷마당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고 살금살금 뒷마당을 향한다. 어느새 새끼 고라니와 어미 고라니가 인적이 없음을 알고 내려와 풀을 먹고 있다. 

혹시나 놀라 달아 날까 살얼음 같은 빙판 위를 걷는 기분으로 아주아주 살금살금 걸음을 옮긴다. 

저격수가 총을 장전하고 목표를 향해 총을 쏘는 기분으로 나도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 폰을 꺼내 그 어미와 새끼의 모습을 찍는다. 찰칵하는 스마트 폰 소리에 인기척을 느끼는지 고개를 쳐든다. 

나는 그 자리에 동상처럼 서 있다. 

풀내음이 진해서일까 냄새에 묻혀 다른 냄새가 나지 않으니 어미와 새끼 고라니가 대범하게 앞마당까지 들어온다. 다시 사진을 찍으려다가 포기한다. 어차피 한 장 찍었고 '찰칵' 하는 소리에 놀라 달아날게 분명하다. 

그냥 머릿속에 깊이 각인시키고 싶다. 마음에 그들을 담아 놓으면 그 여운도 더 길게 갈 것 만 같다. 

순간 새끼 고라니가 나와 눈을 마주친다. 어미 고리라니가 나와 새끼를 번갈아 보고 갑자기 앞마당을 질주해 내 달린다. 새끼 고라니도 어미를 따라 함께 달린다. 

'후다닥'

얼마나 순식간인지!

뒷모습을 내게 보이고 저 멀리 사라진다. 아쉬운 순간이다. 

그 크고 맑은 까만 눈동자가 눈에 선하다. 여름이면 산위에서 야생동물들이 간간히 산골 작은 오두막으로 찾아온다. 

아기 멧돼지가 마당으로 온 일은 없지만 뒷마당의 논두렁을 타고 산으로 가던 모습을 보았다.

어미 돼지가 앞장서고 새끼 돼지들이 작고 귀여운 모습에 짧은 다리로 종종걸음을 치며 어미를 따라가던 모습이 생각난다.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혹시 모를 불상사에 그만두었다. 못내 아쉬웠던 순간이다. 

사방이 붉게 물들고 있다. 어느새 서녘으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다. 오늘은 예서 하던 일을 멈춰야겠다. 

해가 넘어가니 산아래로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와 땀을 식혀준다. 

자연이 움직이는 곳에 나도 그 속에 묻혀 함께 숨을 쉰다. 땅을 벗 삼고 사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는 역시 자연이다. 

순수한 그 자연이 때 묻은 영혼을 씻어 낸다.

소박한 꿈을 꾸기에 자연과 숨 쉬고 자연과 함께 생활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과 놀라움 그리고 깨달음을 매일 얻는 시골생활이 즐겁다. 

작은 행복에 나는 오늘도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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