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날들을 되돌아 보며
몸을 움직이고 일할 때 만큼 머리가 그렇게 맑아 질 때가 없다. 몸의 고단함에서 오는 정신과 영혼의 정화를 느낀다. 어쩌면 육체의 고단함이 정신을 살찌우는 묘한 부조화를 느낀다.
농사를 짓는 일은 자연과 더불어, 자연에 나를 녹여 깊은 사색의 세계로 이끌어 준다.
동쪽하늘에서 눈부시게 떠오르는 하늘을 바라보며 땅을 일구고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붉게 물든 하늘을 보면서 하루를 마친다.
그저 단순한 일상 속에 계절에 따라 바뀌는 산야를 바라 보며 땅을 벗삼아 땅이 주는 작은 선물에 감사하며 소박한 삶을 살았다. 그 작고 소박한 삶, 땅이 나에게 들려 주던 수많은 이야기에 나는 나에게 물어 보는 시간을 주었다. 그 물음이 때때로, 아주 가끔씩 살아왔던 지난날들을 되돌아 보게 하였다.
인생이란 날씨와 같다.
맑고 햇빛 쨍쨍하게 내리쬐는 날이 있는가 하면 어느새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하고 바람이, 폭풍이 몰아치는 날이 있게도 하다.
사람의 삶도 날씨와 많이 닮았다. 그래서 대자연 속에 인간은 벗어 날 수 없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문명이 발달하더라도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은 무기력하다. 그래서 삶은 자연과 많이 닮아 있는지 모른다.
화려한 날도 있었고 기쁨에 가득 차 환호성을 지르던 날도 있었다. 희망과 기쁨, 슬픔과 좌절 속에 함께 하는 사랑하는 이들이 곁에 있어 줬다는 게 커다란 행복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공자는 나이 오십을 지천명이라고 했다. 알지 자에 하늘 천자에 명할 명을 해서 하늘의 뜻을 안다 하여 지천명이라 했다.
글쎄! 나이 오십 중반을 넘어가고 있으니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다 할 수 있을까?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말이지만 그 오십을 넘긴 절반에 와 있지만 그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늘의 뜻을 알기보다는 차라리 살아온 나날을 돌아보며 꼽씹어 보고 삶을 바로 보는 일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삶이라는 게 뭐 그리 대단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삶이란 그저 삶으로서 존재할 뿐이다.
삶은 짧은 순간순간이 모여 시간이 되고 시간이 모여 하루가 만들어지고 또 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모여 일 년이 된다. 그렇게 삶은 이어져 간다.
사람이 가지는 고통은 만남 때문에 일어 난다. 사람에 대한 믿음으로 만나 행복하고 등돌림 때문에 괴로워한다. 사랑의 아픔도 상대를 만나기 때문에 아프다. 자식을 낳아 그 자식으로 인하여 기쁨을 얻기도 하고 괴로움을 얻기도 하고 때로는 슬플 때도 있다. 자식이 고통스러운 순간 나도 고통스럽다. 자식도 만남을 통해 생겨 난다.
살아가는 동안 무수한 만남이 있다. 그 만남 속에 희로애락이 존재하고 있다.
만남은 필연적으로 헤어짐을 동반한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고통일까!
삶의 곡선 속에 기쁨도 슬픔도 좌절도 억울함도 있지만 그래도 모진 목숨이라고 했던가 사람은 살아가게 된다.
인생은 무수히 많은 인과 관계의 연속이다. 시작은 원인이 되고 끝은 결과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시작 끝 사이에 과정이 있다. 그 과정 또한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끝의 결과에 기쁨과 슬픔 때로는 죄절과 고통을 맛보기도 한다. 그 속에 추억이 생기고 사람은 추억을 먹고살 수 있다. 기쁘고 환희에 찬 기억도 괴롭고 힘든 기억도 망각이라는 묘약 속에 꽁꽁 숨어 기억의 창고 속에 차곡차곡 싸여 간다. 기쁨의 순간도 괴로움의 순간도 상처가 아물어가 듯이 기억 저편에 앉아 있다.
생을 돌아보는 일은 기억의 창고에서 자신을 한 번 꺼내어 보는 일이다. 아직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남아 있는 나날에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인간이기에 살아왔던 나날들이 만족했다기보다는 후회가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앞으로의 남은 나날들이 후회로 가득 찰지도 모른다. 그러나 뼈아픈 후회와 고통에 빠지고 싶지도 않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 떠나야 하는 그 순간 손을 꼭 잡고 웃으며 말하고 싶다.
"그대와 함께한 이 생애의 삶이 행복했고 감사했다"
는 말을 서로가 하기 위해서 살았던 삶을 되돌아보고 싶은 지 모른다.
살아온 나날을 되돌아본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에 더 큰 후회가 생기지 않게 위해서.
그리고 늘 나를 깨우치고 나를 가르치는 이 자연이 주는 사랑에 그저 순응하는 소박한 삶을 계속 만들어 가고 싶다.
괭이를 집고 서서 서녘하늘에 지는 해를 바라본다. 붉게 타오르는 놀의 아름다움이 늘 가슴을 불태워 주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