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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Jan 07. 2022

자연의 품에서

매일 뭐하며 지내요?

 다시 한 해가 새롭게 다가온다. 코로나라는 대유행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지도 2년이 넘었다. 

연말이지만 연말 같지 않게 조용하다. 어쩌면 나 혼자만 조용한지 모른다. 사람이라 봐야 오십 호 남짓한 동네에 인적이 드물다. 한 집에 많아야 두 사람 아니면 한 사람이 살고 있다. 

연세도 많고 농한기에 접어든 겨울의 산촌은 그야말로 고요하다. 너무나 고즈넉해서 낮에 잠깐 산책을 하고 있노라면 나 혼자 있다는 기분이 들어 등골이 오싹하다. 

겨울 삭풍에 잎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만이 이리저리 요란한 춤을 출 뿐 사방이 고요하다. 

양력설을 따르지 않는지 오래되어 떡국 먹는 일이 무의미 하지만 그래도 떡국을 먹었다.

한 살 더 먹었다는 느낌이 뜨거운 떡국 한 숟가락에 와 닫는다. 

나이를 먹었다는 기분은 오십의 중반을 넘어가면서 알게 된다. 마음과 몸이 서서히 따로 놀기 시작한다. 

가끔 읍에 간다거나 조금 먼 도시를 갈 때면 나는 아내에게 노래를 불러 준다. 아내 말에 의하면 아마추어 수준은 넘는 노래 실력이라고 하니 그런가 한다. 

아내가 나를 칭찬해 줄 때가 제일 좋다. 남이 해주는 칭찬은 다 믿으면 안 된다. 

진정이 담겨 있을 수도 있지만 대개는 인사치레일 뿐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노래를 부를 때 고음이 잘 되지 않는다. 

'국화꽃 저버린 겨울 뜨락에 창 열면 하얗게 무서리 내리고.......'로 시작되는 고향의 노래를 즐겨 불렀다. 

아내도 그 노래를 좋아해서 자주 불러 주었는데 요 한 두해 전부터 고음이 잘 되지 않는다. 

솔도 잘 먹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데 말이다. 

아내는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이란다. 

나이를 먹으면 삶이 두려워진다. 무섭다. 다가오는 죽음 때문에 무섭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뭘 해 놓은 게 없다는 사실이 두렵고 힘들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뭔가를 했지만 손에 잡힌 것은 없다. 그냥 시간만 흐른 기분이다. 

돈을 벌었을까? 그것도 아니다. 

돈은 없고 은행 대출은 이자와 원금을 아직 갚고 있다. 

특별한 명예가 있냐 하면, 지극히 평범하다. 그저 내 존재조차 희미하다는 느낌이 든다. 

뭐 자식이 있지만 품 안에 자식이다. 각자 삶을 향해 떠났다. 

둘러봐도 남아 있는 뭔가를 찾을 수 없다. 

아내?

오랫동안 함께 한 아내가 있다. 

좋아서, 사랑해서 긴 시간을 살았지만 어쩐지 요즘은 이성이라는 생각은 없다. 동지애적 사랑이라 할까?

의리 때문에 살아간다고 할까?

그래도 곁에 있는 사람은 아내뿐이다. 그렇게 소중한 존재이지만 아직도 싸운다. 

싸우고 나면 뭣 때문에 싸웠는지 모를 때가 더 많아진다. 괜히 미안한데 말하기 싫다. 계면쩍어서 일까?
뭐 도시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페이스 북이나 밴드에 서로 모여 술 마시고 "친구야!"를 떠들며 술기운에 얼굴 벌게진 뚱뚱한 오십 대 후반의 삭은 얼굴을 올려놓고 있다. 

이루어 놓은 게 없는 무의미한 인생 같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의미 있고 나를 남기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이도 한다. 

그것도 잠시 뿐이다. 또 텔레비전 리모컨을 손에 쥐고 딱히 볼 때가 없는 채널만 꾹꾹 내지른다. 

아내가 화를 낸다. 한 곳에 놔두라고 하면서.....

슬그머니 리모컨을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가 이 책 저 책 뒤적인다. 

그리고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한동안 책을 본다. 얼마가 지났을까 눈이 뻑뻑하다는 느낌이 들고 눈물도 난다. 

더 이상 읽고 싶어도 못 읽는다. 눈이 책을 거부한다. 

시간은 하는 일 없이 흘러가고 서산에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아직 저녁 먹을 때가 아닌데 배가 슬슬 고프다. 

부엌 식탁에 앉은 아내 곁으로 간다. 뭐 특별한 음식이라도 해 달라는 애틋한 눈빛을 던져본다. 아내는 소 닭 보듯 하더니 하는 말,

"뭐 벌써 배고파? 돼지야!"

[뭐 돼지야? 같이 사는 서방한테 하는 말이 이래서야 원] 마음속으로 한 마디 던진다. 

삐쩍 마른 아내는 약간 통통한? 나에게 돼지라고 잘 부른다. 나도 한 번씩 아내에게 '뼈다귀' 하면서 놀린다. 

뭐 악의는 없으니깐!
"아니 괜찮아! 입이 좀 심심해서....." 

썩은 미소를 던진다. 아내는 하던 바느질을 잠시 놓고 냉장고 문을 연다.

흰 우유가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다. 금세 백옥 같은 잔으로 변한다. 그리고 찬장에 있는 초코파이 한 개를 꺼낸다. 두 개는 먹어야 하는데 절대로 더 주지 않는다. 딱 한 개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초코파이와 우유!

웃기지만 간식에 초코파이와 우유만 한 게 없다. 

다 먹었다. 
아내는 다 먹기를 기다렸다는 듯 마당에 나가 빨래를 걷고 차곡차곡 접어 놓으란다. 

해 질 녘 찬 바람 쌩쌩 부는 마당에 나가기가 싫지만 군말 없이 해야 한다. 그래야 잔소리를 듣지 않는다.

난 아내의 잔소리가 싫다. 젊은 때야 돈도 벌어오고 하니 그나마 발언에 힘이 있어 아내가 찍소리 못했지만 

나이가 들고 경제권을 쥐고부터는 나는 고양이 앞에 쥐 신세다. 

아내도 나이를 먹어 가니 잔소리가 는다. 나는 듣기 싫고 아내는 전 보다 더 많은 잔소리를 한다. 

그러다 싸운다. 

별 것도 아닌데 싸우고 나면 삐져서 말도 하지 않는다. 화해한답시고 괜히 집안일하다가 더 혼난다.  

가끔 교육행정공무원으로 정년퇴직을 한 분의 전화가 온다. 나보다 대 여섯 살 많은데, 3년 전에 정년퇴직을 하셨다. 

육십을 넘기고 자식들 시집가고 다른 도시로 떠나고, 그분 부인은 나름대로 바쁘시다. 

혼자 집에 우두커니 있으니 무척 심심하신 모양인지 차를 타고 한 달에 한 번은 이 촌구석으로 찾아오신다. 

함께 점심을 먹고 그날로 다시 집이 있는 도시로 간다. 

그래도 이렇게 왔다가 가면 며칠은 지낼만하다고 한다. 

겨울은 힘든다. 어서 따스한 봄이 왔으면 좋겠다. 마누라 눈치 안 보게.

시골은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늘 할 일이 있으니 무료할 일이 없다. 

아랫집에 어르신 전기톱 소리가 요란하다. 아마 난방에 쓰려고 나무를 자르는 모양이다. 

어둑해지는데 땔나무를 정리하시나 했는데, 오늘 밤에 넣을 땔감이 없으신 모양이다.( 밤부터 추워진다고 일기 예보를 하기는 했다.)

잠시 소리가 나더니 그친다. 오늘 밤에 일단 쓸 땔 나무를 잘랐던 모양이다. 

내일은 혼자 사는 노인네 집에 놀러 가 봐야겠다. 혼자 사는데 늘 뭔가를 만들고 있거나 고치고 있다. 

기술자로 한평생을 살았다고 한다. 아내를 일찍 보내고 자식 키우고 결국은 시골에 들어와 홀로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 계신다. 

한동안 춥지 않아 싸아 놓은 장작을 패는 일을 게을리했던 모양이다. 

틀림없이 내일 아침부터 전기톱 소리가 요란할 테니 말이다. 

땔감 장만하는 일손 도우고 노인네랑 라면에 낮술 한 잔 해야겠다. 

서산이 붉게 물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어둠이 깔린다. 

'다다다다 딱!'

가스 불 켜는 소리가 들린다. 아내가 시킨 쓰레기 정리가 대충 끝났다. 저녁이나 먹어야겠다. 

오십 중반을 넘어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그래도 된장찌개가 제일 맛있다. 

흰밥 위에 아내의 일품 된장찌개를 올리고 쓱쓱 비벼서 김 하나 얹고 한 술 뜨면 그만큼 맛있는 식사도 없다. 밥 한 그릇 푸짐하게 먹고 배 두드리고 앉는 게 최고의 행복이다. 

아무리 무료하고 따분한 시골의 하루지만, 자기 전에 책 몇 자 읽는 재미도 있다. 

아내에게 시도 읽어 주고 주역 귀절도 읽어 주고 성경도 읽어 주면 아내는 가만히 듣고 뜻을 음미한다. 그리고 서로 몇 마디 주고받고 함께 손 잡고 잔다. 

그냥 평범한 삶이다. 돈, 명예가 다 무슨 소용이 있나 한다. 

그냥 범부는 범부의 삶을 살면 된다. 특별한 삶이란 없다. 

누가 그랬지 등 따시고 배부르면 세상 다 가진 거나 마찬가지라고.

그래!

나도 지금 등 따시고 배부르고 좋아하는 책 한 줄 읽고 있다. 

어둠에 싸인 산촌의 겨울바람이 매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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