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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Jun 01. 2022

사주는 변할 수 있다. 욕심을 다스릴 수 있다면...

사주를 이길 수 있나요?

사주를 바꿀 수는 없나요?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다. 

바꿀 수 있다. 

영화 제목처럼 욕망이라는 전차를 멈추거나 살아가는 속도를 조절한다면 사주는 바꿀 수 있다. 

세상만사가 모두가 사람이 만든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던가!

욕심!

慾(욕)

한자로 풀이하면 바란다는 '욕' 글자에 마음 심을 썼다. 마음이 바란다는 뜻이다. 

마음이 바란다 하니 慾心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욕심이라고 하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으로는 좋은 의미는 아니다.

이기적인 사람이나 다른 사람을 도우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따르는 사람을 말할 때 주로 쓰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욕심 많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할 때 욕심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스스로 잘한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다. 사람은 자신의 이익에 철저하다. 물질이 되었던 말이 되었던 자신의 이익 앞에서는 욕심을 내려놓지 않는다. 

무형의 욕심은 얼마나 많은가! 

권력, 명예, 타인에게서 듣는 칭찬, 자기 과신 같은 게 다 욕심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국가의 지도자들을 봐도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했던 일을 변명하기 급급하고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권력 위에 서고 싶은 마음도 사실은 욕심이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문답으로 쓴 '국가'에서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자격으로 철인을 이야기한다. 

그 철인의 조건에 가장 큰 덕목은 자신의 소유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식조차도 철인 정치인을 떠나 국가기관에서 교육을 받고 정치인이 되던 다른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소유는 언제나 권력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위험을 가지고 있다. 

플라톤의 국가를 읽었다면 요즘 정치인들이 그렇게 세상을 시끄럽게 하지는 않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한다. 남이 잘 되는 꼴을 못 본다는 말이다. 

자기보다 더 가지고 있다고 하면 괜한 용심이 생긴다. 좋던 사람에게도 미운털이 박힌다.  남이 잘된 일을 좋게 생각한다는 말은 아주 신사적으로 생각해서 하는 말이고 괜히 삐죽거리고 시기하고 질투심이 용솟음친다. 

심지어 형제나 자매끼리도 양보는 없다. 특히 부모의 재산을 가지고 싸우는 일을 종종 뉴스나 주변의 이야기들을 때가 있다. 피를 나눈 형제끼리 재산을 가지고 싸우는 모습은 정말 볼성 사납다. 

하나라도 더 갖고 싶다는 마음이 욕심이다. 그러니 그놈의 욕심이 혈육의 정도 끊어 버린다

욕심 없는 사람은 없다. 어떠한 모습으로 든 자신의 욕망은 있기 마련이다. 

때로는 그 욕망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 자신도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향하다가 결국 절벽으로 떨어지는 비운은 맞이하기도 한다. 

이루지 못할 꿈은 없다고 하지만 꿈을 모두 이루고 살다 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천만 원이 생기면 이천만 원을 가지고 싶고 차가 생기면 그보다 더 좋은 차에 눈길이 간다. 

옆집 사람이 과장이 되면 나는 차장으로 진급하고 싶어 안달이다. 옆집 아들이 명문대에 합격하면 내 아들도 명문대에 갔으면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쥐고 살 수 없다. 

욕심이 생기면 결국 마음의 병이 생긴다. 그리고 사람을 미워한다. 잘 되는 집 사람을 만나면 괜히 그 사람이 꼴 보기 싫다. 미워한다. 

그런 마음이 사람을 병들게 한다. 타인을 그 모습 그대로 봐주고 내 모습도 내 모습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돈 권력 명예만이 인생에 전부는 아니다. 

주어진 삶에 감사하고 절제되고 검소한 삶은 살았던 사람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된다. 

내가 좋아하는 현대 철학자 중에 비트겐슈타인이 있다. 

철학 연구를 위해 그는 물려받은 재산을 모두 사회에 내어주고 호숫가의 자그마한 오두막에서 평생을 보낸다. 

일생을 철학과 논리학을 연구하면서 교수직도 마다하고 작은 시골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고 그마저도 던져버리고 오두막에서 연구에 몰두했다. 

그가 재산을 지키고 살았던들 일개 범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학문적 열정으로 자신의 재산이 걸리적거린다는 이유로 물질에 대한 욕망을 버리고 순수한 학자로 남았다. 

만약 재물을 따라갔다면 오늘날 그의 이름은 철학사나 역사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지식의 목마름과 탐구욕도 욕심이지 않냐고 하겠지만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제발 우리 지식과 지혜에 대한 욕심은 한 번 내어 보자고.

생각이 절제되고 욕망을 억제하는 일은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입을 거리 먹을거리 심지어는 사는 집까지!

사물은 사람의 욕망을 끝없이 자극한다. 그러다 보면 상대에 비해 내가 좀 더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하고 좀 더 좋은 옷을 입어야 하고 좀 더 큰 집에 살아야 한다. 

세 가지 기본 삶이 욕망으로 휘감기는 순간 영혼은 좀먹고 썩어 들어간다.

루소의 '에밀'에 있는 내용을 인용해 본다. 

"우리 인생에 곤란함이 생기는 이유는 결핍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애착 때문이다. 우리의 욕망은 커져 있는데 우리의 힘은 거의 모자란 상태다. 인간은 바람(원하는 것)때문에 많은 것에 집착한다. 애착을 증대시키면 증대시킬수록 자신의 고통을 더 증가시킨다."라고 말하고 있다. 

욕심이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지 욕심을 버리면 사람은 어떻게 성숙하는 잘 말해 주고 있다. 

소유를 하겠다는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라 뭐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성에 의해 인간의 본능적 감성은 조절이 된다. 그 이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깊은 사색과 독서에서 올바른 이성을 이끌어 낸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생각을 하고 말을 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다. 

그 깊은 사색은 이성을 맑게 정화시키고 올바른 생각을 만들어 낸다. 

동물적 본능은 이성을 통해 통제된다. 그래서 사람은 생각을 하고 깊이 있는 생각을 통해 철학을 만들어간다. 

욕구를 억제하고 절제하게 되면 오히려 사람의 마음이 편안해 짐을 느낄 수 있다. 

육체의 안락함도 중요하지만 정신 즉 마음의 안락함이 있을 때에 사람은 몸과 마음이 편하게 된다. 

아무리 육체가 편해도 마음이 편치 않다면 몸도 결국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수행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 그만큼 깨끗하고 빛이 나는 듯이 보이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이성을 깨어나게 하고 생각을 깊은 곳으로부터 끄집어 올려 마음을 정화하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가벼운 욕심은 오히려 사람들의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만들지만 너무 많은 욕심을 만든다면 사람은 자기 스스로를 보이지 않는 감옥 속에 가두게 된다. 

자유는 생각으로부터 시작된다. 오직 마음에 평화가 따르면 생각이 자유로워지고 생각이 자유롭다면 육체의 얽매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자유인 것이다. 

정신을 줄이게 되면 물질의 욕망은 고무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리고 그 욕망의 고무풍선은 언젠가 터지고 만다. 

적당한 숨 고르기를 할 때 풍선은 온전한 모습으로 둥실둥실 떠다닐 수 있다. 

풍선은 바람결에 이리저리 흩날린다. 바람을 타고 어디든 날아가듯 적절한 자신의 사색을 통해 풍선의 크기를 조절하는 힘을 가질 수 있다. 

끝으로 너무 행복해지려고 하지도 마라. 

행복은 찰나의 순간에 왔다가 추억 속에 흔적을 남기고 떠난다. 

요즘 사람들은 행복에 너무 집착한다. 집착이나 애착이 자신을 오히려 감옥에 가두고 있지 않을까!

단 한 번의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욕심은 화를 부른다. 늘 물이 반쯤 차 있는 컵을 보고 

"아직 반이나 있잖아!"

하는 마음을 가지자. 사주명리학은 자신의 한계를 아는 인간학이다. 그 한계를 알고 산다면 뭐 부러워할 일도 남의 떡이 커 보이는 일도 없다. 

한계를 알고 나면 평온한 삶을 살게 된다. 

덜어 내고 조금 부족한 마음을 가지고 산다면 사주는 바뀔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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