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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Aug 21. 2020

사주 이야기

사랑 그리고 살아간다는 일

 어둠과 밝음이 있고 더위와 추위가 있다. 식물도 암술과 수술이 결합하여  열매를 맺는다. 

동물도 짝짓기를 하고 사람도 어딘가에 있는 자신의 반쪽을 찾아 헤맨다.  

세상은 음과 양의 조화 속에 움직인다. 그 조화가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만든다. 그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인간의 삶은 만들어져 간다. 


스산한 바람이 산에서 불어오고  붉게 물들어 가는 저녁 놀이 마지막 가을의 색을 꽃피우고 있다. 늦가을의 바람이 뼈까지 시리게 한다. 땅거미가 질 무렵 집 앞마당으로 꽤 값이 나가 보이는 동그라미 네 개가 겹친 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들어온다. 서녘 하늘이 불게 타올라 대지를 물들인 다 늦은 저녁에 찾아 올 이 하나 없는 산골 촌락에 의리 번쩍한 차가 떡하니 주차를 하고 있다. 도시에서만 운전을 해서 그런지 비탈진 마당에 주차하는 모습이 어설퍼 보인다. 

마당에 울타리가 없다. 흙이 있는 마당에 차를 대려고 애를 쓴다. 

보통은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미리 전화를 한다. 시간이 혹시라도 다른 사람과 약속이 되어 있을까 해서 전화를 하고 시간 약속을 잡는다. 당연히 다 늦은 저녁에 전화 없이 집 앞마당에 차를 대고 있으니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다. 인상을 잔뜩 쓰고 검둥이 해피와 함께 집 앞 테크에 서 있다. 해피가 또 한 수 하는 개다. 중현 견이지만 검은 털 때문에 한 견상한다. 폼만 그럴듯하지 알고 보면 동네 개다. 이 사람 저 사람 모두 따라다닌다. 어떤 때는 할머니는 밭에서 김매고 있는 옆에서 애교를 부리고 놀고 있다. 할머니들도 심심하지 않은 모양이다. 검은 털 때문에 처음 무서워도 허당이다.

두 사람이 차에서 내리고 개가 꼬리를 흔들고 달려가니 순간 멈칫한다. 시커머니 늑대 같이 것이 아무리 꼬리를 흔들지만 쏜살 같이 달려가면 순간 겁이 난다.

그리고 운전석에서 내린 여자의 근처 서서 꼬리를 흔들며 집 앞으로 안내를 하는 모습에 안심하는 발걸음이다. 

잔디와 잡초가 뒤 섞인 마당을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위태하게 걸어온다. 

가까이 다가온다. 사람들이 좋은 것인지 어떤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나도 따라 인사를 했다. 

사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비교적 날씬한 몸매에 한 사람은 키가 좀 크고 다른 한 사람은 키가 보통이었다. 

가을의 가을의 흔들리는 억새처럼 나풀거리는 얇은 옷을 입고 힐을 신은 모습이 주변 산야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차가운 계절은 일찍 시작되고 더운 계절은 늦게 시작되는 곳이다.  도시보다 가을이 일찍 시작되어 저녁이 되면  몸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이 꽤 날카롭다. 두터운 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나와는 다르게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아직도 초가을의 향기를  물씬 풍기게 하는 옷차림새다. 의외의 쌀쌀한 날씨에 몸을 움츠린다.  

그녀들은 나를 향해 걸어오고 내 손에 쥐고 있는 전화가 울린다. 아랫집 아주머니다. 손님이 찾아오지 않았냐고 묻는다. 그렇지 않아도 여자 두 사람이 방금 차에서 내렸다고 말한다. 아줌마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전화기 밖까지 울린다. 나의 시골 생활에 큰 도움을 주는 분이다. 호탕한 성격에 직설적인 면이 가끔 감정을 건드릴 때도 있지만 본래 생겨 먹은 모습이 그렇다고 이해하라며 너스레를 떤다. 잘 아는 사람들인데 잘 좀 봐주라고 하면서 밭일을 해 놓고 오겠다고 한다. 아주머니의 모습과 찾아온 두 사람의 모습이 어쩐지 너무 다르다. 어떻게 아는 사이일까 하는 궁금증이 살짝 생긴다. 

쌀쌀해진 날씨에 얇은 옷은 몸을 움츠리게 한다.  추워 보이는 두 사람을 집 안으로 들였다. 검둥이 해피가 집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에게 격한 꼬리 흔들기로 마무리한다. 키가 큰 여자가 해피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차도 옷매무새로 보아 꽤 사는 집 마님들이다. 들고 있는 H사 가방 손에 찬 R사의 시계 입고 있는 옷은 이름 있는 L사 상품으로 휘감고 있다. 나름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집 안을 둘러보는 모습이 꽤 거만하게 보인다. 그래도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다. 

두 명 모두를 같은 시간에 놓고 볼 수는 없어서 운전하고 온 사람을 보고 시간 점괘를 만들었다. 

재물이 힘들어 보이는 괘가 나왔다. 재물이 흔들리는 이유가 재물의 기운을 빼앗아 가는 관의 자리가 극을 당하고 있다고 나온다. 남편이 문제가 있든 나쁜 일이 생긴 모양이다. 

운전하고 온 사람이 볼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볼 지 알 수 없어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하며 거실로 안내했다. 손과 발이 곱다. 벌어 주는 밥만 먹고사는 사람들이다. 일단 곁으로 치장된 모습보다는 손발이 고우니 몸을 써서 살지는 않는 게 확실하다.

집에 마실 수 있는 차라고는 커피뿐이다. 다 저녁에 커피 주기도 뭐해서 아무 말 없이 앉으니 키가 조금 큰 여자가 따뜻한 물이라도 한 잔 달라고 한다. 앉아 마자 뭔가 이야기하기 부담스러운 점도 있으니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자리에 앉고 뜨거운 물을 한 잔씩 주었다. 몸이 풀리고 한 숨 쉬어가니 어색한 분위기가 사라진다. 

운전하고 온 여자분에게 남편이 힘든 일이 생겼냐고 물었다.  쌍꺼풀 진 큰 눈이 왕방울만을 해 졌다. 

천천히 동전을 던져 주역 괘를 만들었다. 괘에 재물이 상괘 하괘에 있고 남편이 많이 움직이는 괘다. 

남편이 바람이 났다. 여자에게 남편이 다른데 눈을 돌리냐고 물었다. 여자는 눈가가 촉촉해졌다. 

남편이 지금의 자리에 앉을 때까지 아내는 남편에게 많은 정성을 쏟아부었다. 아이를 들쳐 없고 음식을 만들어 공부하는 곳으로 일주일이 멀다 하고 다녔다. 남자의 가능성을 보고 아내는 남편을 성공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 꿈이 크지 않은 남편과 다투기도 하고 시댁의 시어머니의 조소를 참아가며 결실을 이루었다. 

그리고 남편의 노력도 눈물겨웠다. 안정된 삶이 시작되었고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도 잘 크고 있고 자신만큼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녀의 매일은 즐거웠다. 

남편은 늘 거래처나 장부기장 건으로 해서 이틀이 멀다 하고 손님들과 약속을 핑계로 늦게 들어왔다. 

살짝살짝 골프 모임이 있다는 핑계로 다른 여자도 만나는 모양이었다. 술을 마시고 외도하는 일을 빼고 나더러도 남편은 아내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었다. 


참 신기한 것은 여자나 남자나 결혼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배우자와 삶이 문제를 일으키는 공통점이 있다. 삶도 안정되고 아이들도 어느 정도 자라고 나면 남편이 한 눈을 피우는 사람이 괘 많다. 

여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에둘러 말하고 있다. 결론은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말인데 함께 온 친구 눈치가 있으니 대 놓고 말하기가 힘든 모양이다. 

나는 남편의 사주와 그녀의 사주를 같이 보면서 말을 이었다. 

남편의 사주에 재물은 있다. 그러나 재물의 기운을 살리는 기운이 자신의 기운을 불살라버리는 기운의 힘으로 재물이 움직이는 사주였다. 역마가 있거나 다른 여자를 취할 사주는 아니었다.(예를 들면 오행에 금의 기운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금이 강하고 오행의 水를 살리는 기운이면 금의 재물인 木이 수의 도움을 받는다)

지금 이 바로 水의 기운에 대운이 앉아 있고 시간이 지나면 재물에 힘이 빠지는 자리로 오니 미리 대비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다만 그 시기가 되면 상담을 하러 온 아내의 힘 때문에 재물이 조금 빠져도 지금처럼은 아니지만 돈에 어려움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슨 서러운 생각이 들었는지 앉아 훌쩍거린다. 책상 앞에 티슈를 슬그머니 밀어주었다. 

남편이 왜 그렇게 되었냐며 한탄스럽게 말한다. 사주에 남편은 초년에 아버지의 덕이 없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거나 아버지가 거의 아무 일도 못하지 않은가라고 말을 했더니 어릴 적 크게 사업을 하다가 망하고 그때부터 시어머니가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근근이 살았고 남편은 집 안의 용의 알이었다고 한다. 

결과는 남편은 자신의 성공에 도취되었고 뭐든 자기가 마음먹으면 성공할 수 있는 자만에 빠진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 어울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을 빛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뿐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녀도 주변에 사업하는 사람들이 그다지 좋은 사람들은 아니라고 말한다. 일종의 대리 만족을 얻으려는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있는 모습이었다. 

그녀에게 자기만의 시간이 있냐고 물었다. 그녀는 오직 남편 뒷바라지만을 하고 살았다고 한다. 나는 그녀에게 뭐 조선시대도 아니고 왜 남편만 바라보냐고 말을 했다. 사주가 예인의 기운이 넘치는 사주였다. 입은 옷을 보아도 그저 명품을 걸친 모습만은 아니었다. 사주를 보니 그녀의 예술적 감각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의 입술은 움질움질하며 입이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짧은 순간이지만 그 잠깐 동안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겨울 입을 연 그녀는 이제까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해 본 일이 없다고 말한다. 

장남인 남편을 만났기 때문에 시집에 대한 의무감이 있었고 남편을 뒤바라지 해야 자신이 잘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시집에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정성을 부어 넣었다.

나는 그녀에게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라는 말을 해 주었다. 

사주는 결국 자신의 삶에 대한 여정을 미리 알려 주는 시간표와 같다. 결국 사주에 다른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그 인생 즉 사주의 주인공이다. 

사랑도 미움도 그 상대에 대한 생각일 뿐이다. 자신이 그 중심에 서 있지 않는다면 그는 영원히 자신의 인생에 주인으로 살 수 없다. 

남을 위한 사랑이 아닌 자신을 위한 사랑을 하라는 말로 그녀의 사주 상담은 끝을 맺었다.

동행했던 키 큰 여자가 눈시울이 붉어진 그녀의 등을 쓸어내렸다. 한 동안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고 늘 즐거움 속에 지내는 해피가 멍멍 거리는 소리가 누군가 집으로 오고 있음을 알렸다. 

아랫집 아주머니였다. 그 특유의 명랑함에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김치전을 수북이 들고 들어 왔다. 

아주머니를 쳐다보며 웃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아주머니는 

"속이 후련 하제! 느그 형부가 지금 막걸리 하 잔 들고 올기다."
그러면서 마치 자기 집처럼 식탁에 전을 놓고 찬장에 잔을 꺼내어 놓고 앉으라고 한다. 

사촌 언니였다. 부산에 잘 나가는 여동생이 있다고 하더니 그녀를 말했나 보네. 다시 희미한 달빛에 어른 거리는 그림자가 하나 보이더니 이내 현관으로 들어온다. 막걸리 봉지를 흔들며 들어온다. 

나도 일어나 인사를 한다. 아랫집 아저씨!

뭐 사주를 봐주고 우리 집에서 저녁 먹을 생각인 모양이다. 

그녀는 눈가에 생기가 돋는다. 거만하고 의심 가득했던 눈초리가 사라지니 그녀의 눈 고리가 참 예쁘게 보였다. 

다섯이 식탁에 둘러앉아 잔을 나누었다. 

그녀도 함께 온 친구도 그녀의 사촌 언니 내외도 그 저녁은 순수한 시절에 가진 그 모습대로 웃고 떠들고 이야기를 즐겼다. 

이 세상에는 사랑이 필요하다. 그리고 세상에 많은 것이 존재하지만 자신이 없다면 그리고 자신이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면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 

사주는 자신이 가야 할 지도다. 그 지도를 보고 길을 정하는 일은 다른 누군가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그 자신!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내일의 태양은 오늘 태양과는 다른 태양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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