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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Mar 06. 2017

이란의 부추 달걀말이, 쿠쿠 삽지

세상의 다양한 부추요리 5

이란의 요리에 대해 아는 것이 있냐고 물으면 단연코 '아니요'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이란 요리는 내게 낯선 것이었다. 이란이라는 나라부터가 낯선 나라였다. 이란에 대한 나의 지식은 단편적인 것들에 불과했다. 사막 땅 위에 폐허로 남아있는 페르시아 유적, 70년대까지 중동의 유럽이라 불리며 자유로웠던 국가, 그 이후 호메이니가 집권하며 이슬람 극단주의로 치달았던 국가, 이란-이라크 전쟁 등.


이 극적인 변화가 아무래도 인상적이어서, 한때 인터넷에 '이란 과거와 현재(Iran then and now)'라는 검색어가 유행하기도 했다.



동시대의 서구권에 견주어도 절대 뒤지지 않을 6,70년대의 다채롭고 자유분방한 패션과 호메이니 집권 이후의 닫힌 사회의 모습의 대조가 확실히 인상적이다.



다만 위의 사진은 조금 과장된 면모도 있다. 세계화와 더불어 이란 여성의 복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 위의 사진처럼 검은 천으로 얼굴을 포함한 온 몸을 꽁꽁 싸놓은 여인들과 앞머리 정도는 내놓은 채로 색색의 패션을 뽐내는 현대적인 여성들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한다.


서구적인 패션의 왼쪽 여성들과 온몸을 감싼 오른쪽의 여성이 대조적인 사진. -사진출처: nytimes



이란의 역사적인 변화의 시기를 다룬 영화로는 르포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 유명하다.


변혁의 역사 속에서 흔들리며 성장하는 여성의 자전적인 만화를 기반으로 한 '페르세폴리스(2007)'


드니 빌뇌브 감독의 비극적인 미스터리 영화 '그을린 사랑(Incendies, 2010)'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 벤 애플렉의 영화 '아르고(2012)'도 이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영화초보인 내가 아는 이란 배경의 영화만 해도 이 정도인 것을 보면, 이란의 질곡 많은 현대사가 던지는 영화적인 화두는 무궁무진한가 보다.


어머니의 비극적인 발자취를 따라가는 수수께끼 같은 여정을 담은 영화, '그을린 사랑(2010)'


최근 JTBC 예능프로의 제목으로 패러디되기도 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



1979년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탈출 사건을 다룬 영화 '아르고(2012)'.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여 밴 에플렉의 감독으로서의 커리어에 중요한 기점이 되었다.






나는 이렇듯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접한 70년대 초 이란의 컬러사진과 유명한 몇몇 영화를 통해 이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그 관심의 영역에서 '이란의 요리'는 철저히 배제되어있었다.



하지만 이 쿠쿠 삽지(Kuku Sabzi) 레시피를 통해, 나는 난생처음으로 이란 요리를 맛보게 되었다. 쿠쿠 삽지와 나의 인연을 설명하기에 앞서, 이란의 요리문화에 대해 공부한 것을 간략하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터키, 러시아, 인도, 조지아 등 '한 요리 한다'하는 국가들과 이웃하고 있는 이란. -지도 출처: iranreview.org



이란은 페르시아를 이은 국가이기 때문에 '이란 요리'라 하면 그것은 곧 '페르시아 요리'라고도 불린다. 이란 요리는 이란의 지정학적인 위치로 인해 코카서스 지역, 터키, 레바논, 그리스,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지역의 요리와 교류하며 발전하였다. 실제로 이란 요리 중에는 터키, 그리스, 러시아 요리와 그 이름과 형태가 유사한 요리가 많다.


이란식 정찬. 가운데의 케밥과 다양한 종류의 밥, 라이스 푸딩 등이 눈에 띈다. -사진출처: Pinterest


이란의 메인 요리에는 주로 쌀과 고기(양고기, 닭고기, 생선), 채소(양파, 가지 등이 인기), 견과류가 사용된다. 생허브 종류도 상시로 활용되는데 오늘 요리의 주제가 된 부추도 허브의 하나로서 이란인들에게 사랑받는 재료이다. 자두, 석류, 살구도 생과일 또는 건조 형태로 자주 사용된다. 이란 요리의 특징이 되는 향신료에는 샤프론, 라임, 시나몬, 파슬리 등이 있다.


불안정한 정세로 인해 이란 여행은 상당한 도전이 되어버린 지 오래되었지만, 최근 런던, 토론토, 밴쿠버, LA 등 영미권의 대도시에서 이란 요리가 떠오르고 있다고 하니 그 지역을 여행하면서 한 번쯤 이란 요리를 맛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세계 각국 문화의 요람, 이태원에도 이란 음식점이 있다 하니 한 번쯤 둘러보아야겠다.






이제 오늘의 요리로 다시 돌아오자. 이번 요리의 이름은 어감이 다소 귀엽게 느껴지는 '쿠쿠 삽지(Kuku Sabzi)'이다. '쿠쿠(Kuku)'는 허브나 감자 등이 들어간 달걀 요리 종류를 의미하고 '삽지(Sabzi)'는 부추 등의 허브류를 일컫는 이란어이다.




Kuku Sabzi(이란식 허브 오믈렛)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달걀을 기본으로 하여 다양한 재료로 변주를 준다는 점에서 쿠쿠는 이탈리아의 달걀 요리 프리타타(frittata)와 비교하기도 한다. 하지만 쿠쿠에는 프리타타보다 달걀이 적게 들어간다는 점이 다르다. 프리타타가 상대적으로 달걀이 주가 되는 요리라면, 쿠쿠에 있어 달걀이란 넘쳐나는 재료를 묶어 형태를 유지시키는 접착제 역할을 할 뿐이다.

 

이탈리아의 프리타타. 이란의 쿠쿠와는 계란의 비율에 있어서 차이가 크다. -사진출처: thepioneerwomen.com



허브 오믈렛이라 할 수 있는 쿠쿠 삽지 레시피를 풀어쓰자면 이렇다. 먼저 부추, 파슬리, 딜 등의 생허브를 다진 후 달걀을 넣어 섞은 다음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다. 이때 강황과 같은 향신료를 추가하기도 한다.


이 달걀 허브 반죽을 기름을 두른 팬에 굽는데, 약한 불에서 천천히 익히다가 팬에서 뒤집거나 오븐에 넣어 윗면을 익혀 완성한다. 허브의 양이 달걀의 양에 비해 절대적으로 많아 완성된 쿠쿠 삽지는 흔히 짙은 초록빛을 띄며, 위에 건 베리류(barberry)나 호두를 올려 마무리하기도 한다. 밥이나 빵, 요구르트를 곁들여 먹는다.


 허브류가 들어간 쿠쿠 삽지뿐 아니라 감자 쿠쿠(Kuku sib-zamini), 라이마 콩과 딜 쿠쿠(Kuku Shevid-Baqala), 쥬키니 쿠쿠, 가지 쿠쿠(kuku-ye bademjan), 닭고기 쿠쿠 (kuku-ye morgh) 등이 있다.


감자 쿠쿠(Kuku sib-zamini) -사진 출처: vidavitality.com




내가 이 쿠쿠 삽지를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운빨이다. 써도 써도 끝이 없어 냉장고에서 오래 버티던 부추를 끝내버릴 마지막 부추 요리를 찾던 중 링크의 링크를 타고 도착한 요리가 바로 이 요리였던 것. 덕분에 이란 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 요리의 세계란 파고들수록 깊고 매력적이다.



허브 달걀 반죽을 앞뒤로 굽는 기본적인 쿠쿠 삽지보다 모양이 더 예뻐 보여 선택한 아래의 레시피. 오븐이 필요하므로 오븐이 없는 사람들은 기본적인 팬 프라잉 쿠쿠 삽지를 만들면 된다.








재료. (레시피는 본인의 상황과 취향에 맞게 유동적으로 적용하면 된다)


-부추, 파슬리, 딜, 고수 등의 생허브 한 뭉치: 나는 집에 부추와 쑥갓이 있어 부추 1/5 단, 쑥갓 다섯 줄기 정도를 사용했다.


-달걀 7개: 3개는 김밥의 김처럼 싸는 부분에, 4개는 허브의 형태를 잡아주는 접착제 역할로.


-밀가루 1 밥숟갈: 겉부분의 달걀 반죽을 돌돌 마는 것을 돕는 역할.


-소금, 후추


-강황가루, 커리 파우더, 고춧가루: 향신료를 많이 넣을수록 더 이국적인 맛을 즐길 수 있다.





조리법.


1. 달걀 3 개를 풀어 소금, 후추, 강황가루를 넣고 젓다가 밀가루 1 밥숟갈을 넣고 잘 섞는다.



2. 오븐용기를 기름으로 코팅하고 (1)의 달걀 반죽을 넓게 펴준다.



3. 180도로 예열한 오븐에 (2)를 5분 간 익는다.


살짝 쪼글아들었지만 문제없다!



4. 달걀 4 개를 풀고 소금으로 간하고 후추, 커리파우더, 강황 등의 향신료를 듬뿍 뿌려서 섞는다.



5. 부추 등의 생허브를 잘게 다진 후, (4)의 달걀 반죽과 섞는다.




6. (3)의 익힌 반죽 위에 (5)의 달걀허브 반죽을 붓는다.



7. 호두, 건과일 등을 가니쉬로 올리고 180도의 오븐에 10분간 익힌다.


집 근처 편의점에 가서 견과류 믹스 한 봉지라도 사 올 것을, 없어 보이게 검은콩만 올렸다...



8. 오븐에서 익힌 반죽을 살살 굴려서 롤을 만든 뒤, 말아둔 상태 그대로 오븐에서 3분 정도 익혀 모양을 잡는다.



9. 오븐에서 꺼낸 롤을 살짝 식혀 원하는 사이즈로 자른다.



생각보다 엄청나게 예쁜 비주얼의 쿠쿠 삽지 완성!



어찌 보면 달걀말이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원리인데, 이토록 이국적으로 보이는 것은 초록초록 부추 빛깔 때문인지 파란 테두리의 덴비 접시 덕택인지.



오븐을 이용해서 계란을 익힌다는 개념이 신기한 데다가 이렇게 완벽하게 예쁜 층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로이 배워 가슴이 두근두근.



이국적인 외모와는 다르게 그 맛은 크게 새롭지는 않다. 아마도 달걀과 부추가 내 입맛에 지극히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달걀말이 표면에도 알록달록하게 비치는 커리파우더의 향이 남아있어 먼 나라의 요리라는 느낌을 준다.


이란 방식대로 호두와 건조 베리, 요거트를 곁들여 먹으면 이란의 느낌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의도치 않게 엄청나게 건강한 요리를 만들어버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자극적인 요리가 당겨 라면이나 끓여먹으려다가 이 요리를 만들었기에 쿠쿠 삽지를 순식간에 해치운 뒤 기어이 참지 못하고 허니버터칩을 후식으로 먹었다.



부추로 시작된 소중한 이란 요리와의 인연, 계속 이어나갈 수 있기를!



Bon Appet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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