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강박증 엄마와 살고 있습니다.
2011년 5월.
서울의 끝, 부천의 시작인 지역에서 상가주택이라는 형태의 집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서울 접근성도 좋았고 무엇보다 집 바로 앞이 7호선 지하철 입구였다. 지하철까지 2분이면 내려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세가 저렴했다. 지하철개통 전 시세로 주인집 아저씨는 7년간 유지해 주셨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가을이 끝나갈 무렵 부동산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말이다. 용건은 집을 보러 올 사람이 있다고 한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셔요?”
“아, 주인이 말 안 했어요? 그 건물 내놨는데.”
“처음 듣는 이야기에요.”
“건물 전체를 매도하려고 내놨어요. 사려는 사람이 주인집 2층 말고 3층에서 생활하고 싶다네, 그래서 3층을 좀 보여줬음 해요.”
갑작스러운 통보에 당황했다.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부동산과 나눈 이야기를 전했다. 남편도 당혹스러운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 알았어. 집 알아봐야겠네.”
그 동네에서만 7년이다. 파란창을 열어 동네 주변에 나온 전세매물을 검색했다.
가까운 곳에 나온 매물들은 어느새 살고 있는 집의 2배 가격으로 뛰었다. 그동안 주인집의 배려에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
지금의 동네에서 지하철과 조금 더 떨어진 곳까지 검색을 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지금의 전세금액에 맞는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갈 곳은 있겠다 싶어 안심은 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집은 한 곳도 없다.
다음날 새로운 주인이 집을 보러 왔다. 7년 동안 정말 내 집같이 살았다. 집을 보러온 분은 이렇게 깨끗하게 살았냐며 놀라신다. 도배, 장판 시공 없이 당장 들어와 살아도 되겠다고 한다.
‘아뿔싸’
새 주인이 마음의 결정을 한 듯 기분 좋은 모습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부동산으로부터 예상된 전화를 받았다. 주인은 5개월 뒤에 이 집으로 이사를 올 거라며 그전까지 집을 비워줘야 한다는 것이다.
계약 기간 만료에 맞춰서 들어온다는 데 뭐라 항의할 수도 없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지금 같이 집도 넓고 지하철에서도 가까운 곳을 이 돈으로 어떻게 구한담.’
일주일 가까이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주변의 부동산에 무작정 들어가 돈에 맞는 전세를 구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던 어느 날
‘그래, 결심했어. 이 기회에 집을 사자.’
나의 부동산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신혼여행을 함께 다녀온 부동산을 하는 동생에게 조언을 구했다. 지금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현재의 돈에 대출을 껴서 살 수 있는 집이 있는지 찾아봐달라고 했다. 지하철 세 정거장쯤 가면 1기 신도시가 있는데 그곳 아파트 가격이 현재 괜찮다는 이야기를 한다. 주변에 초등학교, 중학교도 근처에 있고 무엇보다 병원이며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있어 생활권으로는 너무 좋다고 한다.
말 나온 김에 지하철에서 가장 가까운 아파트로 매물 검색을 하고 적당한 집을 찾았다. 성격이 급한 편이라 당일 집을 볼 수 있는지 연락을 부탁했고, 그날 저녁 세입자가 살고 있던 집을 보러 갔다.
문을 열어준 세입자분은 나와 같은 처지가 된 사람이기에 표정이 밝지 않다. 주인이 아닌 세입자가 살고 있는 집인데 주인 사정으로 갑자기 집을 내놓은 것이다. 말 그대로 급매물.
조금 무리는 되지만 어떻게든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집으로 돌아와 하루 정도 고민을 하고 부동산에 매수의사를 전했다.
“그 집으로 할게요.”
계약을 하고 한 번 더 보러 간 집은 몇 해 전 수리는 했다고는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는 김에 조금 더 무리해서 인테리어를 하고 들어갔으면 하는 욕심이 생겼다.
검색 시작, 그리고 주변 인테리어 업체 방문
업체를 통한 올수리는 무리였다. 평당 가격이 100부터 시작해서 못해서 3천 이상을 불렀다. 남편 몰래 보험도 깨고 이리저리 자금을 융통해서 쥐고 있던 돈은 1800. 이 돈으로 샷시에 바닥, 도배, 조명교체, 씽크대, 붙박이장, 욕실가구교체, 주방과 현관 타일 교체, 그리고 베란다 도색까지 해결해야 하는데
업체를 통한 가격은 절반 정도로 공사가 끝나야 하는 상황이었다.
많은 것을 포기하든지 발품을 더 팔아서 방법을 찾든지 해야 했다.
그때 당시 셀프인테리어가 한창 유행하던 때라 블로그며 관련 도서에 해당 내용들이 많았다. 가장 많이 팔린 한 방송국작가의 셀프인테리어 경험담이 당긴 책 한 권을 사서 정독했다. 국가고시라도 보는 듯 그렇게 열심히 읽어내려갔다.
‘아~~! 아~~!’
방법을 알게 될 때마다 감탄이 이어 나온다.
‘도배는 방산 시장을 가야 하는 구나. 타일도 셀프가 가능하구나.’
책으로 배운 내용을 현실에서 확인해 나갔다. 일일이 전화를 해서 상담을 하고 괜찮다 싶은 곳은 직접 눈으로 자재를 확인하러 갔다.
지금 다시 하라해도 못한다. 그때는 초인의 힘으로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신나게 인테리어를 준비했다.
발품을 판 결과,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1800만원으로 원하던 인테리어 구색을 모두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남편에게는 새집에 들어갈 책장을 손수 짜주길 부탁했다. 책이 많아서 튼튼한 책장이 필요했다. 그것도 새로 들어갈 아파트 거실 한쪽 벽면에 꽉 찰 만한 원목 책장을 원했다. 공방에 등록해서 몇 달 동안 배운 실력으로 가로 4미터의 책장을 준비했다. 입주 날짜에 맞춰 완성해야해서 퇴근 후 저녁마다 공방으로 출근을 했다.
인테리어가 시작되었고 아이들은 모두 시댁으로 내려보냈다. 동생 집에 2주 정도를 머물면서 낮에는 현장에서 지켜보고 밤이 되면 돌아왔다. 기술자분들의 어깨너머로 타일 붙이기, 조명 달기를 보면서 언젠가는 내 손으로 하겠다고 결심했다.
주방은 과감하게 상부장을 떼고 카페에서 본듯한 선반을 손수 달았다. 욕실은 호텔에서 본듯한 하부장이 달린 세면대와 욕조를 놓았다.
그렇게 우리집은 아니 나의 집은 우리 가족의 행복을 꿈꿀 소중한 공간으로 바뀌고 있었다. 남편이 완성한 책장도 들여놓고 이사를 마치니 그 순간이 마치 꿈길을 걷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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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마련을 하고 1년 뒤, 둘째 동생집에 1년 정도 계시던 엄마가 우리집으로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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