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認定)하면 인정(人情)이 많아진다.

by 생각잡스 유진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결혼을 하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기도 하다.

인정하면 편해진다는 진리를 알게 된 것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남편과 나는 일일이 따져보면 맞는 구석이 없다. 그리고 이상형도 아니였다. 쌍꺼풀이 없는 시원한 눈에 큰 키, 다부져 보이는 인상,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내가 바라던 이상형은 연예인 소지섭같은 외모였다. 말 그대로 이상형이다. 쌍꺼풀이 있는 남자는 절대로 만나지 않을 거라며 대학 1학년 때 친구들 앞에서 했던 다짐이 어렴풋이 스쳐지나감과 동시에 내옆의 진한 쌍꺼풀의 눈을 껌뻑이는 남편을 바라보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상형은 이상형일 뿐 이상하게 맞지 않는 이상형. 누군가 꿈꾸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했지만 이상형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것을 내 경험도 한 몫해서 증명한다.




결혼하고 얼마되지 않아서부터 참 많이도 싸운 것같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뚜렷이 기억나는 굵직한 사건들 빼고는 무엇 때문에 다툼이 잦았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33살의 나와 38살의 남편은 늦다면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 인지 서로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살아가는 게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늦어진 만큼 아이도 빨리 낳아야겠다는 생각에 신혼을 즐겨볼 여유도 없이 4개월 만에 큰아이를 임신했다. 그리고 이듬해 연년생 둘째까지.

결혼하고 3년 만에 혼자가 아닌 넷이 되어버린 상황에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맞춰나갈 시간은 사치였다. 그냥 맞춰야 하는 현실이 되었다.

나를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남편은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종종 했다. 그런데 남편입장에서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맞춰주길 바라며 대화로 시작한 것이 싸움으로 번지는 일이 잦았다. 결혼 2년차 때 신혼여행에서 알게 된 동생이 이혼전문 법률사무소에 다닌다는 것을 알고 서류를 부탁하기도 했다. 도저히 못 참겠는 날이 오면, 저 서류를 꼭 써먹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안방 서랍에 고이 모셔두었다.



깨우침은 일순간에 오더라.

어떠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마음이 변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마음에서 온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인정하자. 30년 이상을 다르게 살아온 사람이 나에게 맞추기는 힘들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저 사람에게 맞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침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영역이 있으니 그 부분은 그냥 인정해주길 바라는 바가 나에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다.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조금 커진 것이다. 남편만이 아니라, 아이들, 그리고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 프레임은 적용되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이해되지 않아.’라는 마음은 ‘그럴 수도 있지’,‘저렇게 행동하는 사람도 있구나.’, ‘참 재미난 사람이네, 나와는 다르지만.’로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세상이 재미난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리고 다양한 삶에 눈길이 간다. 넓어진 프레임으로 바라본 사람들에게 배울 점은 참 많았다. 어느 누구 하나 스승이 아닌 사람이 없다. 틀렸다고 생각하면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 ‘다르다’로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게 되었더니 한두 가지씩은 나에게 스승으로 다가왔다.


인정認定하니 인정人情이 많아지는 순간이다.

인정認定은 사람에 대한 정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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