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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Oct 15. 2018

별 헤는 밤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중에서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지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엄마가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프랜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렸습니다.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계외다.



    


주말 동안 소백산 제2 연화봉 정상에 있는 산장에서 하룻밤을 잤다. 작년에 지리산에서 본 별들을 다시 보고 싶어 소백산으로 향하며 들뜬 마음에 챙긴 시집이 바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였다. 올라가는 길을 정상까지 포장을 해놓아 어찌나 힘들고 재미가 없든지 산길을 시멘트로 덮어버린 무식한 인간들을 욕하며 올라갔지만 그 덕분에 깔끔 산장 시설에 수세식 화장실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환상적인 전망에 모든 궁시렁 데던 마음을 접어야 했다.

사방으로 보이는 산과 구름, 하늘 그리고 노을과 가을밤의 별을 보며 가슴속의 모든 허접한 마음과 머릿속의 쓰잘 떼기 없는 상념들을 버리고 편히 잠을 잤다. 덕분에 볓빛 아래 시집을 읽는 로망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아침에 일어나 일출을 보며 다시 감동하고 집에 돌아와 시집을 펼쳐 드니 그때의 감동들이 밀려온다.



역시 여행은 그리고 자연은 인간을 깨어나게 한다. 별 하나하나 헤이며 이름을 붙일 만큼의 시적 정서는 부족하지만 시인의   감성은 충분히 느껴진다. 나의 별에도 이름을 붙여볼까?


별 하나에 큰 아들

별 하나에 둘째 아들

별 하나에 두 아들을 선물로 준 당신

별 하나에 엄마

별 하나에 아빠


그 정도면 충분하다.. 나머지 세속의 인간들은 그냥 그렇게 놓아버리자. 살다 보면 만나도 그만 못 봐도 그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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