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달이가 새끼를 낳았다. 다리가 짧아서 서러운 닥스훈트에게 임신은 정말 힘든 과정이었다. 상상하다시피.. 정말 배가 땅에 닿을 지경이었으니...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힘들어 보였다. 그런 달이를 위해 우리는 박스를 두 개 구해다 바닥과 뚜껑을 만들고 천을 덮어 최대한 아늑하게 산실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섯 마리 새끼를 맞기 위해 목걸이 인식 줄을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다섯 개 준비하고 탯줄을 자를 의료용 가위와 탯줄을 묶을 실을 소독하고 아기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D day.
어제 아침,달이가 전날 저녁부터 물똥을 자주 싸고 밥도 안 먹더니 불안하게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달이 옆에서 쓰다듬어주며 안심을 시켜주었더니 마음이 좀 놓이는지 어딜 가지 못하게 했다. 마침 일본에서 유학 중인 큰아들 귀국날인데 아무래도 출산 조짐이 보이길래 조금만 기다려서 오빠 오면 낳으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둘째에게 잠시 달이를 맡기고 일을 나갔다. 낳을 것 같다고 전화를 하면 바로 달려갈 준비를 하고 만발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점심때까지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큰아들이 공항에 도착해 집으로 오고 있다는 말에 나도 집으로 출발했다. 날씨가 너무 덥길래 에어컨을 좀 틀어놓으라고 둘째에게 부탁을 하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서 들어서는 순간, 이미 도착한 큰아들 얼굴도 보기 전에 " 엄마, 한 마리 낳았어요!!" 두 아들이 흥분해서 외친다. 세상에나, 큰아들이 도착한 시간이 오후 두 시가 조금 넘어서인데 진짜 오빠를 보고 나서 첫째 빨강이를 낳은 거다. 그것도 씀풍, 5분 만에 순산. 당황해서 어쩔줄 모르던 두 아들이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고 나도 달이가 대견해서 눈물이 났다. 5마리를 다 낳으려면 5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아 우리는 일단 점심을 먹으며 첫째 빨강의 탄생을 축하했다. 그때, 둘째 주황이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큰아들 손이 커서 수술 장갑이 맞지 않아 아기를 받는 건 둘째 아들이 맡고 나는 탯줄을 묶고 큰아들이 새끼를 보살피는 걸로 역할을 분담했다.
하지만 힘찬 발길질을 하며 다리부터 나온 둘째 주황이는 10분이 지나도 앞다리가 걸려 나오질 못했다. 뒤에서 살짝 당겨주면 아프다고 달이가 깨갱대며 물려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20분이 경과했다. 위험하다! 담당 수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니 일단 수건으로 물지 못하게 얼굴을 가리고 뒤에서 타올로 아기를 감싸 끄집어 내주라 하신다. 근데 갑자기 달이가 벌떡 일어나 산실을 나온다. 뭐지? 힘주려고 그러나? 우리는 의사 선생님이 시키신 데로 머리를 가리고 뒤에서 아기를 당겨 받아냈다. 어쩐지 불안하다. 아기가 숨을 쉬지 않는다. 두 아들이 번갈아 코를 빨고 마사지를 해주고 드라이기로 따뜻한 바람을 쐬주며 10분여를 포기하지 않고 매달렸지만 주황이는 끝내 숨을 쉬지 않았다. 아마도 달이가 벌떡 일어 설 때 이미 느낌을 받았던 게 아닌지 새끼를 찾지도 않았다. 눈물을 터뜨리는 둘째 아들의 안타까운 통곡에 마음이 아팠지만 남은 세 마리를 위해 두 아들을 다잡았다.
난산에 힘들었는지 한 시간 정도 달이는 잠을 잤다. 시간을 두 시간 이상 지체하면 안 된다는 말이 생각나 달이를 달랬다. " 달아, 힘들었지? 아직 셋이 남았잖아.. 힘내자. 네가 힘내야 해. 넌 할 수 있어.." 하고 쓰다듬어 주며 배를 살살 마사지를 해주었더니 갑자기 셋째 노랑이가 씀풍 나와버리는 게 아닌가?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셋째의 태반을 벗겨주고 탯줄을 묶어준 뒤 가위로 자르고 타올로 마사지를 해주고 드라이기로 따뜻하게 말려주며 나름 익숙해진 손길로 3인 분업을 일사불란하게 해냈다. 그리고 30분 후 달이가 지쳐 쉬는 줄 알았는데 넷째 초록이가 아무 기동도 없이 나와 있었다. 놀랐지만 다시 정신없이 초록이를 받아내고 막내 파랑이를 받은 시간이 6시 반이었다. 모두 건강했다. 빨강, 노랑이는 수컷 260g, 초록은 암컷 260g, 막내 파랑도 암컷 240g.
4시간 만에 새끼 다섯 마리를 낳고 나니 감격의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정말 너무 예뻤다. 네 마리가 꼬물거리며 눈도 못 뜨고 애벌레처럼 엄마 젖을 찾는 광경에 행복감이 밀려왔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달이가 정말 기특했다. 다섯마리를 잘 받아준 두아들도 대견했다. 나는 닭가슴살을 삶아서 살을 발라 달이를 먹이며 달이의 멋진 엄마 첫신고식을 축하해주었다.
그리고나서, 둘째 주황이를 데리고 뒷산으로 갔다. 태어난 아이들 만큼이나 죽은 주황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했다. 어미 뱃속에서 잘 지내다가 이제 막 세상에 나왔는데 숨 한번 못 쉬고 가다니.. 뒷산에 올라가 작은 아들이 삽으로 땅을 파서 묻어주고 나서 집에 돌아오니 7시 반. 저녁을 먹으며 새끼들 이름을 논의했다.
입양 보낼 때까지 이름을 짓지 말고 그냥 빨, 노, 초, 파랑으로 부를까 했지만 임시라도 이름을 지어주자는 아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결국 이름을 지어주고 말았다. 첫째 빨강은 Boo, 한자 富 (부귀 부). 셋째 노랑이는 천둥에서 천을 떼고 '둥'. 넷째 초록이는 초록 '꿈'. 다섯째 파랑이는 하늘이 떠올라 천공에서 천을 떼고 '공'. 그렇게 부, 둥, 꿈, 공 남매가 되었다.
사이좋은 닥스훈트 부, 둥, 꿈, 공 남매가 어떻게 성장할지 기대가 된다. 아빠 별, 엄마 달 그리고 부, 둥, 꿈, 공 한가족이 모두 함께 사는 날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함께 있는 동안 부디 행복하길, 건강하길 빈다. 달아! 정말 잘해냈어. 넌 정말 대단해. 앞으로 네 아이들 잘 보살펴줘.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