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사진을 보면 그런 우량아가 없지 싶게 오동통한 아이가 하얀 아기옷을 입고 갸우뚱 기울인 얼굴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못 먹었다면서 그는 젖만은 잘 나오는 산모였어서 근처에 사는 병약한 손윗동서가 그보다 1년 전에 낳은 조카딸에게 내 몫을 나눠줄 만큼 젖이 많았다 한다.
그를 닮았는지 애초에 모유수유를 작정했던 나로서는 아주 다행스럽게도 딸을 낳은 후 단유를 할 때까지 나도 젖이 많은 산모였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면 모여있던 젖이 물총을 쐈을 때 나가는 물살처럼 쏴아 하고 젖줄기가 쏟아져 딸냄이 일단 켁켁 거리다가 먹을 정도였고 젖이 늘 남아돌아 유축기로 짜서 얼려놓을 정도였으니.
백일 사진의 나처럼 딸도 100일이 되기 전에 포동포동 살이 올라 팔뚝에 주름이 세 줄이 나서 보는 이들이 미쉐린 타이어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젖이 그렇게 잘 나왔지만 둘째를 낳고서는 그가 유선염을 앓아 둘째에게는 젖을 잘 먹이지 못해서 아이가 젖배를 곯았단 얘기를 내가 아이를 낳고 들었던가. 나보다 넉 달 늦게 첫 아이를 낳은 동생도 모유를 먹여보려 했지만 젖이 잘 나지 않아 분유를 먹여야 했는데 같은 엄마의 딸이 이렇게 차이가 나나 싶어 확인하면서 들은 얘기 같기도 하다.
여러 이유 때문에 마음에 허기가 져서 어릴 때 한동안 입 안 가득 음식이 담겼을 때의 만족감을 느끼고 싶어 많이 먹곤 했다고 동생이 말하곤 했는데 아마도 기억나지 않는 아기 때의 포만감과 배고픔을 겪은 차이가 자매의 음식에 대한 다른 태도와 자기 아이를 낳고 나서의 수유양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닐까 이따금 생각해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