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00일의 기록 15

by 포근한 바람

딸은 젖니를 수월하게 갈았다. 4살 때 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 저희들 키 높이 정도 되는 장에 올라가 뛰어내리기 놀이를 하다가 엎어져서 앞니 두 개가 똑 부러지는 바람에 치과에 다녔지, 이를 가느라고 치과에 가지는 않았다. 이뿌리가 깊이 박혔는지 유치부터 사랑니까지 발치할 때마다 어려움을 겪었던 나를 안 닮아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일찌감치 치과에 다닐 일에 대해 각오를 한 데 비해 수월하기는 했던 게 약간 섭섭한 감이 있었다고 해야 하나? 앞니가 부러진 날은 피를 철철 흘리는 아이를 안고 병원에 가는 길에 참으려고 해도 눈물이 나는 경험을 하기도 했는데 다행히도 딸은 그 날 자기 이가 부러져서 엄마가 울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어릴 때, 이를 갈 때마다 좀 법석을 떨게 된 것이, 영구치가 이미 나고 있는데도 유치가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을 이에 묶고 당겨봐야 실이 끊어졌지 이가 빠지진 않아서, 유치를 열심히 흔들지 않는다고 부모에게 혼만 나다 보니 나중에는 아예 안 뽑겠다고 투정을 부렸던가보다. 이가 잘못 나는 것에 대해 특히 그가 걱정이 많았는데, 그의 위 아래 양쪽 송곳니 모두가 덧니였기 때문이다.


부모가 중매를 위해 주고받은 사진이 아직 남아있다. 풍성하고 건강해 보이는 긴 머리를 가지런히 늘어뜨리고 살짝 옆으로 돌아앉은 자세의 젊은 여성은 눈이 크고 전반적으로 시원시원하게 생겼다는 인상을 준다. 입을 다물었을 때 사진 속 얼굴은 미인 소리도 들었을 법한 외양이었는데 그런 그에게 덧니는 아마도 상당한 콤플렉스였어서 나이 들어서까지 웃을 때는 언제나 손으로 입을 가리거나 최대한 입을 작게 해서 웃곤 했다.


그래서, 이 안 뽑겠다고 도망다니는 내게 그가 한 협박은

"그러다가 덧니가 날 거고 그러면 평생 후회할 거다."

는 거였고 나는 도망가면서 덧니가 날지 안 날지 모르지만 덧니가 나도

"절대 후회 안 할 거"

라고 답했다.


집에서 뽑다뽑다 실패하고 결국 치과에서 발치를 한 일이 많았는데 딸에 대한 그의 저 예언은 반만 맞았으니.

내 왼쪽 송곳니는 다른 이들과 나란하지 않은 자리에 삐딱한 모양으로 났고 나는 그 덧니에 대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유감을 가진 적이 없다. 물론 웃을 때 덧니를 의식한 적도 없고 그때그때 기분과 상황에 따라 맘껏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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