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min lee May 20. 2017

악마의 사랑

초단편소설 5.

온통 칠흑같은 어둠속에 어느 미동도 없이 침대 귀퉁이에 앉은 나에게 창가의 달빛은 오로지 나만 비추고 있다. 내 손에는 갓 표지만 넘긴 다이어리가 들려있다. 한 곳만을 응시하는 나의 눈은 깜박거리지도 않고 미간의 웅크림을 간직한 채, 한 부분만, 오로지 한 부분만 보고있다. '7월 24일, SUNDAY, 첫사랑 성대오빠 면회, 짧은 입맞춤.' 다이어리가 들린 손은 힘없이 겨우 받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힘이 느껴진다. 손에서 어깨로, 그리고 다시 머리로, 등을 타고 내려와 온몸에 알지 모를 힘이 느껴진다. 그리고 다시 머리로 뻗쳐 작은 돌기 두개가 정수리 양쪽으로 솟아나는 느낌이다. 등쪽 어깨에서 한뼘정도 내려가 그곳에서 살짝 긁힌 상처의 아픔이 느껴지듯 위에서 아래로 서서히, 아주 서서히 고통으로 아픔으로, 살이 찢기는 느낌이다.


슬며시 다이어리를 덮고 내가 확인한 것이 들키지 않도록 제자리에 살며시 꽂는다. 이 다이어리는 내가 사랑하는 그녀의 다이어리이다. 몇번이나 망설이다, 호기심을 참지 못해 읽게된 다이어리. '2월 14일, 오빠에게 고백받은날, 꺄오~~', '3월 14일, 화이트데이, 정성스럽게 포장한 사탕을 건넸다. 너무 좋아하는 오빠에게 쪽~~' 4월 20일, 오빠랑 영화보러 간날, 맛있는 저녁도 사주고, 고마워. 한장, 한장을 넘길때마다 나와 그녀의 사랑이 적힌 그날의 기억들이 새록 새록 기억이 나다 마주한 7월의 그날, 24일.


그날 어디 갔다온다고 했던것 같다. 대학교 친구들과. 어디를 다녀온다고. 그날 나는 하루종일 부탁받은 아르바이트를 했다. 잠깐 도와달라고. 그래서. 전화를 했던것도 같다. 처음에 받았고, 두번째는 받지 않았다. 방해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가 끝날 시간에 다시 전화를 했다.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조금 늦게 도착한다고. 그래도 얼굴은 보자구 했다. 늦은 밤 10시. 그녀가 전화를 했고, 나는 그녀를 만났다. 피곤하다고 했다. 들어가서 편히 쉬라고, 잘 자라고 인사했다. 그녀는 가면서 한번 뒤돌아보고 나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달라붙은 바지를 입은 길죽한 다리를 주욱 펴고, 터벅 터벅, 다시 한번 뒤돌아보지 않고 그녀는 집으로 향했다. 나는 그런 그녀가모퉁이를 돌아 보이지 않을때까지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그때 나는 사랑스럽다고 했다. 그렇게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담배 한대를 피워물고 나도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가 바로 7월 24일 이었다. 그래 바로 그날이다.


'누굴까? 좋아하던 오빠? 그래, 첫사랑이라고 했지. 그래 그녀라면 첫사랑을 했겠다. 나도 그런 그녀에 반한 걸 보면, 누군가도 그녀를 좋아했겠지. 사랑했겠지. 그런데 왜? 갑자기 왜? 그놈을 보러 갔을까? 갑자기 왜?'


누군지도 모를, 그저 다이어리에 짧게 기록된 '첫사랑 성대오빠'라는 일곱글자만 가지고 나는 얼굴을 상상하고, 몸을 상상하고, 입은 옷과 헤어스타일, 목소리를 상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급기야 그날의 그녀와 그놈의 그런 장면들. 혹시 더 많은일들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그런일들이.  아니다. 그럴 그녀는 아니다. 아닐꺼다. 그럴리 없다. 보지도 않은 일들을 오직 일곱글자만 가지고, 나의 상상은 거의 비극에 달해간다. 그럴때마다 머리의 두 돌기가 느낌만으도 느껴질 만큼, 비오는날 대나무 숲의 어린 순들처럼 자란 느낌이 들었다. 간질 간질한 어께에는 가끔씩 등을 스다듬는 느낌이, 윈쪽으로 오른쪽으로 무언가, 누군가 부드러운 빗질은 하는 듯, 무언가 움직인다.


인기척이 느껴진다. 누군가 온다. 나는 긴장한다. 이곳은 그녀의 방이다. 집안에 따로 떨어진 방. 우리는 가끔 이곳에서 만남을 가진다. 사랑을 나눈다. 그 인기척이 그녀일지, 아니면 다른 가족일지 모른다. 조용히 나는 어둠속으로 숨어본다. 너무 어두워 그냥 방문을 열어도 나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불만 켜지 않는다면 말이다. 저 만치 나의 신발이 책상밑에 놓여져 있다. 아니 숨겨져 있다. 어둠에 몸을 숨긴 나처럼, 나의 또다른 존재도 몸을 숨기고 있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오빠"라고 조용히 부른다.


그녀다. 좀전의 상상은 머릿속에 없다. 머리위의 돌기도, 등의 느낌도 느껴지지 않는다.


"어... 왔어"좀 전의 나의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조금은 더듬는다.


"많이 기다렸지? 아직 안자고들 있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네.."


"그래"


그런데 자꾸, 자꾸 생각이 난다. 그 일곱글자가... 궁금하다. 물어보고 싶다. 그 일곱글자에 대해서. 하지만 걱정이 든다. 두렵다. 마치 그것이 '작은 새장'처럼 느껴진다. 문을 열면 모두 날아가 버릴 것 같은. 그리고 보지말아야 할 것을 본 것에 대한 그녀에게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그런 걱정.


'이대로라면 우리는 여기서 끝이다. 나는 그녀에게 대답도 듣지 못하고 여기에서 쫓겨나듯 내보내게 될거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말할 것이다. 여기서 끝이라고. 모두 끝이라고. 나는 그녀에게 내게 용서를 구해라 말해보지도 못할 것이다. 오히려 어쩌면 내가,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게 될지 모른다. 내가 말이다. 용서를 해줘야 할 결정을 할 내가. 내가 말이다.' 속으로 생각해도 너무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그런 이상한 상황에 나를 방치하기 싫다. 억울하다. 화가난다. 다시 머리와 등에 느낌이 온다. 이전보다 더욱 커졌는지, 느낌이 제대로 났다.


"무슨 생각해?"


"아니, 그냥... 아무 생각안해."


"오빠" 하면 그녀가 두팔로 나의 목을 안는다. 내가 몸을 뒤로 쑥 뺀다. 그녀가 내앞에 살짝 고꾸라진다.


"왜 그래?"


"아니 팔이 아파서... 벽에 기대려고..."


그녀가 다시 침대위로 올라와 다시 나에게로 기어오더니 입을 맞춘다. 그녀가 눈을 감는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본다. 나의 얼굴은 반쯤 일그러 진다. 어차피 어둠으로 감추어진 얼굴이라 그녀는 나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나의 미간에 힘이 들어간다. 머리에 돌기가 '쑥'하며 다시한번 솟아오른다. 등의 날개가 살랑 살랑 날개짓을 한다. 일그러진 얼굴, 두 돌기, 두 날개. 맞은편 거울이 시야에 들어온다. 어둠으로 보이지 않지만, 내눈에는 선명하게 보인다. 악마의 얼굴. 그런 악마에게 키스하고 있는 한 여인. 거울속의 악마의 얼굴에서 번뜩이는 두눈. 그리고 서서히 웃는다. 악마의 미소가 방안에 번진다. 나도모르게 그 모습을 보고 놀란다.


"집중안해?" 그녀가 나를 질책한다.

"자꾸 이럼, 나 들어간다. 집에..."하며 노려보는 그녀. 달빛에 눈이 반짝인다.


그녀를 보고 있자니, 머릿속이 복잡하다. 화도나고, 걱정도 되고, 두려움도 있고, 슬프기도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씩 어두어져 간다. 핑크빛이던 마음이 색깔을 잃어가고 있다. 그리고 흰색으로 변하며 모든 색이 없어져 버렸다. 이내 그 색들이 회색으로 변해가며 짙어진다. 검게, 아주 검게, 그날밤 칠흑같은 어둠과 같이. 그 어둠에 숨어버린 나와 내신발. 그 때의 어둠과 같다. 마음의 형태는 사랑인데, 그 안은 '미움'으로 가득차 버렸다. 검은 미움으로 채어 버린 하트. 그게 사랑일까? 미움일까? 애증. 그래서 그 모순된 애증이라는 말이 생기는 것인가? 사랑이지만 미움으로 가득차 버린 사랑.


그 날 이후로 사랑이라는 감정에 미움이 가득차듯, 나도 두개의 내모습을 갖게 되었다. 그녀에게만. 그리고 그 두개의 모습으로 바뀌는 연결고리는 바로 '의심'이었다. 그녀에게는, 그녀의 모든말은 나에게 의심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 의심으로 두개의 뿔과 두개의 날개를 가진 악마로 변해간다. 그리고 그 의심이 나는 곳으로. 그녀가 있는 곳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가지고 날아간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의심의 장막이 걷히는 순간, 밤하늘의 구름이 달을 벗어나 내 눈앞의 시야가 밝아져 사물을 보는 순간. 나는 다시 나로 돌아간다. 그리고 나는 힘이 빠진채 다시 나의 삶으로 돌아온다.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그 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나와 있지 않은 모든 순간은 바로 '의심'이다.  


"오늘 뭐해?"라고 내가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오늘 친구들 만나기로 했는데.."

"어... 그래? 어디서 만나는데..."라고 내가 묻는다.

"집근처 술집에서..."

"누군데?"라고 내가 묻는다.

"오빤 몰라. 한번도 안 봤을 걸."

"끝나고 볼까?"라고 내가 묻는다.

"아냐 늦게 까지 볼거라 시간 안돼. 왜 뭐 있어?"

"아니... 그냥... 보고싶어서 그러지..."라고 내가 말한다.

"알았어..." 그녀가 전화를 끊는다.


다시 나는 '의심'으로 사로잡힌다. 괴로워한다. 갈등한다.

 '그래, 아닐거야, 아닐거라고'나는 안심한다. '아냐? 그냥 지나가다 봤다고 하면 되잖아. 그래 그냥 멀리서 보기만 해도 되고. 확인만 하면 되잖아.'라며 누군가 속삭인다. '그래. 확인만 하면 되잖아.'라고 나는 결정했다.

뿔이 돋았다. 날개가 돋았다. 날개가 펄럭 펄럭하며 나의 몸을 공중으로 띄운다. 그리고 집을 벗어나 날아간다. 누군가에 들킬세라. 돌아서 간다 멀리. 멀리. 그리고 저 멀리 그녀가 있다는 술집이 보인다. 내 모습을 누군가에게, 악마같은 내 모습을 들키기 싫어 건물뒤로 숨어 저멀리 그곳을 바라본다. 보이지않는다, 그녀가.

'기다리자, 확인만 하면 되잖아.'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 가보자.'그곳을 가본다. 마치 내가 만날 사람이 있듯, 약속이 있는듯, 그렇게 상상하고,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곳을 본다. 없다. 그녀가.

'분명히 이곳이라고 했는데...'뿔이 한 10센티 쯤 더 자랐다. 날개는 커다랗게, 더욱 커다랗게 펼쳐졌다.


"형님, 혹시 연희 안왔어요?"라고 사장 형님에게 물었다.

"아까 왔는데... 자리 없어서... 나갔어... 옆 가게로 가는 것 같던데..."

"아. 그래요?"뿔이 줄었다. 날개짓이 멈췄다.


나는 가벼워진 몸으로 옆가게로 간다. 처음 가보는 곳이다. 계단을 내려가고, 내려가자 바로 안이 보인다. 그리고 두번째 자리 그녀가 보인다. 그리고 그앞에 남자가 보인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안으로 들어서자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어... 어... 여긴 무슨일이야?"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는 듯하다. 그게 마음에 걸린다. 나에게 보이지 말아야할 것을 보였나? 하고 생각한다.

"누구야?" 이미 커다란 뿔과 날개가 펄럭이고 있는 나는. 일그러진 얼굴로, 악마로 변해있었다.

"친구... 친구 만난다고 했잖아..."그녀가 대답한다. 이번에도 떨리는 것 같다. 나를 의식하는 것 같다.

"글쎄... 아닌 것 같은데..."나는 무언가 확신을 가진듯 내뱉는다. 그리고 돌아서 온 힘을 다리에 주고, 건물이 울릴세라 힘껏 계단을 밟아 올라간다. '쿵, 쿵, 쿵' 발자욱소리도, '쿠쿵, 쿠쿵, 쿠쿵'나의 심장소리도. 온 사방에 울린다.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담배 한개피를 피워물고 최대한 깊게 빨아 삼키고 내뱉는다.


"왜그래? 화났어?"

"왜 말안했어?"

"뭘... 친구만난다고 했잖아. 친구."

"남자잖아..."

"아니 친구 맞는데... 오빠 싫어할까봐."

"그래도 말했어야지. 솔직하게. 그래야 나도 의심안하고, 그러지.."

"오빠, 나 지금 의심하는 거야? 그런거야? 그래서 화내고 있는거야 지금. 참 어이 없네." 그녀가 콧방귀소리로 헛웃음을 지우며 나를 쳐다본다.


나도 그녀를 본다. 나도 어이없다. 그녀의 귀에 걸린 저 반짝이는 귀걸이가. 어이없다. 그녀에 목에 걸린 내가 사준 백금 목걸이가. 어이없다. 가슴골이 파진 저 티셔츠가. 어이없다. 속옷이 비치는 그녀의 티셔츠가. 어이없다. 무릎위 10센티나 올라간 저 스커트가. 어이없다. 그녀의 헛웃음이. 어이없다. 지금 이상황이. 어이없다. 오히려 화를 내는 그녀가. 어이없다. 내 의심이. 그 의심으로 찾아온 이곳이. 지금 이장소, 지금 이상황이. 너무나 어이없다.


날개가 펄럭인다. 뿔이 돋는다. 속에서 무언가 올라온다. 끓어오른다. 처음 느끼는 분노로 가득찬 무언가 올라온다. 목구멍으로 가득차게 올라온다. 온몸이 타버릴 만큼 뜨거운 것이, 목을 모두 마르게 하고, 입으로 가득, 볼이 부풀어올라 터질듯 가득히. 그리고 입안에서 뿜어지는 불들. 주변의 모든 것들은 불길에 휩싸이고, 주변의 사람들은 검은 숯덩이가 되어 가루로 남는다. 오로지 그녀만이 그 불을 직접 받아 겨우 막고 있다. 건물들이 무너진다. 땅이 갈라진다. 옆 개울은 모두 말라 버린다. 다리가 무너진다. 전선이 스파크를 내며 바닥으로 끊어져 떨어진다. 그렇게 내 주변의 모든 것을 불태워 버렸다. 몸에서 힘이 빠진다. 뿔이 작아진다. 날개짓이 멈췄다. 바닥으로 주저앉는다. 몸에서 모든 것이 빠져나간 기분이다. 올라다 보니 그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어이없는듯 나를 바라보고 있다. 손에서 끈적임이 느껴졌다. 빠알간 끈적임이 손에서 팔로 번지고 있었다. 무얼 파는지 모를 작은 가게의 유리창이 예리하게 갈라져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 몸의 모든 감각을 잃었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웃음이 나왔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지금 이상황이. 나를 보고 있는 저사람들이. 그리고 그녀가. 아무말없이 집으로 향했다. '쿵 쿵 쿵' 뒤에선 그녀가 자신의 집으로 힘차게 걸어가고 있었다.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느낌이 그랬다. 피가 한방울씩 내가 걸은 발자욱 옆으로 '똑 똑 똑'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마음속 형태만남아있던 사랑이 뭉그러져 버려, 이것이 사랑인지 마름모꼴인지 모를 정도로 찌그러져 있었다. 그저 그 형태의 색깔이 이제 검은색이 아닌 빠알간 색인 걸 속으로 감사했다. 아니, 검지만 않은 것 만으로 감사했다.


의심이 만들어낸 사랑의 또 다른 모습. 일곱글자. 그 작은 것이 지금의 커다란 힘으로 커져 나갈수 있도록 에너지를 주고 길러준 의심. 그 의심을 사랑이라고 믿은 나. 그렇게 악마가 되버린 나. 악마의 사랑은 이제 끝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예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