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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묵 Jun 01. 2020

할아버지와 술

내 몸속의 유전자

제 몸속에는 할아버지의 유전자가 흐릅니다. 제가 저희 아버지의 친 아들이고, 저희 아버지 또한 할아버지의 친 아들이기 때문에 제가 할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건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제가 이렇게 거창하게 '흐른다'라고 표현하면서까지 유전자 얘기를 꺼낸 것은 할아버지와 저 사이에 공유된 대단한 유전적 특성을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면서부터 제법 오랜 시간을 같이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국민학교 5학년 때쯤 자리에 누우셨다가 중3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해 저는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당연히 어떤 점을 제가 할아버지와 닮았는지도 잘 모릅니다. 딱 한 가지만 빼놓고 말입니다. 


그 한 가지라는 것은 바로 술입니다. 할아버지도 저도 술을 참 좋아합니다. 그것도 제 몸을 망칠 만큼 좋아하고, 자기 몸이 견디지 못할 만큼 마시도록 술을 좋아합니다. 또한 할아버지도 저도 소주를 좋아합니다. 맥주나 막걸리는 너무 밍밍하고, 양주나 고량주는 맛이 없다고 하고 싶으나 실경은 몸이 그 알코올 농도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지나치게 독한 바람에 그 술맛을 잠깐이라도 입 안에서 음미하기 힘들기도 하고요.   


살아생전 할아버지께서 하신 말씀 중에 유일하게 제가 기억하는 것도 바로 술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집 남자라면 술 한 말을 지고 가지는 못해도 마시고는 갈 수는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허약한 양반 가문의 자제로서 노동이 익숙지 않아 무거운 짐을 들고 걷지는 못하지만, 남자라면 그 정도 무게의 술은 마시고 걸을 수 있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제가 뵌 늙으신 할아버지는 둘 다 못하셨습니다. 한 말을 들고 걷기도, 마시고 걷기도 못하셨지요.


제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다리 밑 판자촌에 살았던 때, 할아버지는 술에 취해 뚝방길을 걸어서 집으로 오시고는 했는데 맨 정신으로 돌아오신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해가 질 무렵이면 할머니가 '얘야! 할아버지 오시나 가봐라!' 하시면 동생과 함께 저는 할아버지가 오시는 방향으로 뚝방길을 거슬러 올라 할아버지 마중을 나갔습니다. 뚝방길을 조금 가다 보면 멀리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오시는 할아버지가 보였습니다. 설마 술 한 말을 드시지 않았을 텐데 넓지 않은 뚝방길을 갈지자로 아슬아슬 걸어오시는 할아버지를 보고 얼른 뛰어가 동생과 양쪽에서 부축해서 돌아오던 기억이 납니다.


할아버지가 아예 집까지 혼자 걸어오지 못하신 적도 많습니다. 한 번은 동네 친구가 저희 집에 찾아와서는 다급하게 저를 불렀습니다. '야! 뚝방 반대편에 할아버지 한 분이 누워계시는 데 니네 할아버지 같애'하는 겁니다. 이를 들으신 할머니는 하시던 저녁 준비마저 팽개치고 저와 동생을 데리고 제 친구가 알려준 장소로 같습니다. 역시 저희 할아버지가 맞았습니다. 정확히는 거꾸로 누워계셨지요. 걸어오시다 뚝방 위에서 강 쪽으로 굴러 떨어지셨는지 다리는 하늘로 항하고 머리는 강 쪽으로 향하고 코를 요란하게 골면서 참 태평한 얼굴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지나가던 동네 아저씨들의 도움을 받아 할아버지를 겨우 집으로 옮겨 드렸습니다. 저나 할머니나 동네 창피해서 얼마간 얼굴도 못 들고 다녔지요. 리어카에 실려 오신 적도 여러 번입니다. 무슨 짐짝도 아니고...


몇 년 후에는 뚝방 밑 판자촌을 벗어나 상도동 주택가로 이사를 했습니다. 뚝방 밑으로 굴러 떨어질 위험은 없어졌습니다만, 이제 할아버지는 술에 취하시면 집을 잘 찾아오지 못하셨습니다. 새 동네의 지리에 익숙지도 않으셨던 데다 연세로 술에 더 약해지셔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당시 할아버지는 주로 복덕방에서 다른 할아버지들과 술을 드셨는데, 날이 어두워지는데 안 오시면 제가 복덕방으로 모시러 갔었습니다. 손자가 모시러 왔으니 마나님이 무서워 집에는 가야겠는데, 남은 술이 아까워 미적대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제가 도착하기 전에 할아버지가 먼저 복덕방을 나서신 적도 있습니다. 넘어지지 않으시려고 담벼락을 한 손으로 짚어가면서 겨우겨우 걸으시는 할아버지를 보고는 차라리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아버지는 심한 알코올 중독이었던 것 같습니다. 농사를 끝내고 겨울을 맞으면 유유자적 명산을 유람하며 술을 즐기던 할아버지는, 외동아들이 모든 재산과 희망을 허공에 날리고 먼저 세상을 뜬 후에는 아예 세상살이를 외면하고 술에 의존하여 그저 돌아가시는 날만 기다리셨던 같습니다. 그런 할아버지를 보고 자라면서 저는 절대로 술을 안 마시기로 수 없이 다짐했습니다. 성공했냐고요? 이 글을 시작할 때 '유전자가 흐른다'라고 했으니 짐작하셨을 겁니다. 할아버지만큼은 아니겠지만, 저도 술 마시다 이런저런 망신을 당한 기억이 있고, 마누라한테 구박도 참 많이 받았는데도 아직 술을 끊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요란한 후폭풍이 기다리는 줄 뻔히 알면서도 멀리하지 못하는 술이란 존재는 참 신기합니다. 아니 그 망신에도, 그 구박에도 결코 술을 놓지 못하시던 할아버지나 지금의 제가 더 신기한 존재인가요?


2020년 6월 1일

묵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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