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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로 Dec 14. 2023

우리 결혼식 할 수 있는 거 맞아?

결혼식 D-7, 연락도 없는 예비 시댁

"내가 병신 새끼를 낳아 키웠다."라는 시어머니의 말씀에 남자친구도 적잖게 가족들에게 상처를 받은 것 같았다. 그래서 결혼까지 2주 남았는데 그간 먼저 연락을 드리지는 않은 눈치였다. 그런데 시댁 또한 남자친구에게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결혼 준비는 잘 되어가냐는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하루, 이틀... 시간이 흘렀다.

주례를 시댁이 다니시는 교회 목사님께 부탁을 드린 상태고, 담임 목사님께서 예식 순서 관련 해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자고 연락이 왔다. 교회로 가서 목사님을 찾아 뵙게 되면 예비 시부모님과 마주칠텐데... 그간 있었던 일들을 어찌하고 불편함을 어찌 견뎌야 할지... 너무 걱정스러웠다. 사실 그냥 평범한 집에, 평범하게 결혼 준비가 되었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거리라 생각 들었다. 


아기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상태인데, 왜 이런 불필요한 걱정까지 안고 결혼을 해야하는 건지...

애당초 임신 먼저 하지 않았다면 뒤엎어버렸을 결혼.

주변에 애기 생겼다고 알리고 결혼한다고 알린 내 잘못이리라... 생각하며 매일 같이 후회했다.

남자친구가 생활비를 끊을 명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오른쪽 난소에 혹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마흔 살이 아니었더라면...

굳이 이렇게 속도위반을 계획하진 않았을텐데...라는 후회를 하루에 수백번씩 했지만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이미 엎지러진 물...


그렇게 결혼 날짜는 다가왔고

남자친구와 나 모두 일이 바빠 매일같이 야근을 하는 가운데 

스튜디오 사진 직접 포토샵하기, 청첩장 접기, 식권 도장 찍기 등 예식 준비 막바지에 다다랐다.

그 때까지도 예비 시어머니 시아버지는 아들에게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책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신해버린 주인공을 대하는 가족들의 태도에 대해 언급한 책이다.

나는 연애 시절, 남자친구에게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며 그 주인공 같다고 이야기 해왔건만,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하며 본인이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왔다고 했는데

이번 사건을 통해 본인이 '돈 벌어다 주는 기계' 취급을 받아 왔고, 그에 대한 보상처럼 가족들이 피곤해 잠든 그를 깨우지 않고 그냥 둔 것이 사랑과 배려가 아니었음이 입증된 셈이었다. 


결혼식 일주일 전.

남자친구 교회에 가서 목사님과 예식 순서에 대해 의논을 해야하는 날이 되었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교회에 찾아가 담임 목사님을 뵈었고 당연스레 예비 시부모님과도 마주쳤다.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고 목사님 방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려는데 시어머니가 따라 들어왔다. 자신이 했떤 모진 말들을 우리가 옮길까 걱정되어서 뒤 따라 들어온 것만 같았다.(그게 진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나는 목사님께 우리의 상황을 알리고자 했는데 어머님이 계시니 쉽사리 이야기 꺼낼 수가 없었다. 남자친구가 눈치껏 어머니를 모시고 밖으로 나갔고 이내 곧 들어와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목사님, 예식 순서를 정하기에 앞서 사실 저희가 결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저런 사건들이 있는 가운데(앞 서 기록한 에피소드들을 간략하게 설명해 드렸다.) 현재 예비 시댁에서는 남자친구에게 연락 한 번 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결혼식장에 누나들이며 부모님이 안오실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본식을 일주일 앞두고 부모님 없이 예식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중입니다."


목사님과 사모님께서는 깜짝 놀라신 눈치였지만 차분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부모님이 아들을 빼앗기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과(그치만 사실 여자쪽도 자식 하나 잃는 기분이 들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꾸리는 일은 축복받을만한 성스러운 일임에 두 사람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지 마음 단단히 먹고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며, 더불어 생활비는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이 내어 생활을 꾸려나가게 하는 것이니 독립하여 새 가정을 꾸리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생활비 지원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신다고... 부모님을 가끔 챙겨드리는 용돈의 개념 정도면 모를까 매 달 생활비로 몇 백씩 드리면 새 가정의 생활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하셨다. 구구절절 옳으신 말씀이었다. 덕분에 광분한 나의 마음도 살짝 누그러졌다. 우리 둘은 목사님 말씀에 힘을 입어 남은 일주일 용기 내어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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